[필리핀에서 온 편지] ‘스펙’으로 전락한 해외봉사활동
열흘간?1억1천만원 들여 필리핀 빈민가 자원봉사 간 한국학생들
필리핀. 한국에서 비행기로 4시간 거리에 위치한 섬 국가다. 그다지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 주로 관광이나 어학연수 목적으로?방문한다.?또 많은 국제구호단체에서?자원봉사활동을 오는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의 월드비젼, 유니세프, 굿네이버스 등도 자원봉사활동을 하곤 한다. 필자 역시 필리핀에서 간간이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 학생?60여 명이 자원봉사를 하러 필리핀에 방문했다. 빈민촌에 들려 집을 수리해주고, 문화교류, 교육 등을 했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자원봉사를 온 계기와 느낀 점을 물어봤다. 대부분은 봉사활동이 좋아서, 해외봉사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빈민촌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 등이었다.?남학생들은 주로 열흘간?7채의 집을 수리하는 일에 참여했고, 여학생들은 필리핀 아이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집을 수리하는 곳에 찾아가보니, 필리핀 현지 전문인력들이 주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단순히 목재나 벽돌을 나르는 등 보조역할을 했다. 문화교류 수업에서는 그림그리기, 구슬꿰기, 탈 만들기 등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필리핀 빈민가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물감, 스케치북, 크레파스 등 미술도구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돈이 부족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물질적인 것에 흥미가 있는 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학생들이?10일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약 1억 10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간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따져봤을 때, 이 예산 모두가 빈민가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생활비로 사용된다면, 단순히 집 7채를 개선하는 것보다 더 큰 효율을 만들어 낼 것이다.
다시 한번 넌지시 학생들에게 해외봉사활동이 ‘스펙’에도 관련이 있냐고 물어봤다. 인터뷰에 응한 모든 학생들이 스펙도 봉사활동 중 한 이유라고 답했다.
필리핀에서 어학연수 중인 김관우(25)씨는 “해외자원봉사활동이 있다는 광고를 보고 어학원을 선택했다”면서 “기업에서 어학점수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해외봉사활동 경험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봉사활동을 나서는 대학생들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 코이카(KOICA)에 따르면 지난 1997년 131명에 불과했던 대학생 봉사단이 2008년에는 2000명을 넘어섰다.
3대 재앙지역이라고 불리는 필리핀 ‘쓰레기산’에서 2년간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 로사씨는 “많은 대학생들이 필리핀에 자원봉사를 오지만, 이들의 활동은 단순히 보여주기식의 행사처럼 보인다”며 “정작 자원봉사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뒷전이고 사진촬영과 기록 남기기에만 급급해한다”고 말했다.
요즘 청년 실업률은 최고치를 향하고 있다. 구직자들 또한 현재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스펙을 쌓고, 기업이 요구하는 입맛대로 맞춰나가고 있다. 때문에 자원봉사활동이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해외봉사활동도 하나의 취업도구로 변질되고 있는 현실이 안쓰럽게 보인다. <필리핀 마닐라= 윤희락 통신원?bono2mas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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