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 예배] 임종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창세기 49장 1-33절)
오늘 말씀은 야곱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깨달아 알 수 있길 바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다.
1부예배(10.25) 링크 및 정리
1. 야곱의 축복은 열두 아들에게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이루게 될 열두 지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2. 축복의 순서는 레아의 여섯 아들, 실바와 빌하의 네 아들, 라헬의 두 아들의 순서로 이어지고 있다. 축복의 중간에 있는 야곱의 짧은 고백 (18절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앞뒤에는 유다, 요셉이 중심에 서있다.
3. 야곱의 축복에는 과거, 현재, 미래 모두가 담겨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을 통해 야곱의 열두 아들들에게 과거의 일들을 확인하고 있다. 축복이란 옳지 않은 일을 덮어두고 그저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야곱이 르우벤, 시므온, 레위가 범했던 일로 처음 시작을 한 이유는 우리로 다시는 그 길로 살기를 원하지 않으셨고, 죽는 길에서 돌이켜 사는 길로 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4. 죽는 길에서 돌이키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고 그것이 복이다(출애굽기 32장 25-29절).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우리가 힘들고 아프더라도 징책하시고 우리가 부끄러워할 일들을 하나님은 폭로하신다. 그 때 우리가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 아들들의 과거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신다.
5. 그 뒤로 하나님은 유다를 통해 미래에 대해서 얘기해주신다. 야곱이 유다를 축복하는 모습 속에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헤아림의 크기가 모든 역사를 완성하시는 구원자에게 이른다는 뜻이 서려있다. 작은 인생의 헤아림 가운데 어떻게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품을 수 있는 헤아림이 가능한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그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6. 주의 구원이라는 단어는 히브리말로 예수와 띠이다. 이는 구원자가 행할 일을 말한다. 우리는 주 오시는 완성되는 과정 가운데에 있다. 유다를 향한 축복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어떻게 온 민족을 구원해 가실 것인가라는 미래를 향한 축복이었다.
7. 요셉을 향한 축복에는 현재의 풍성함, 넘치는 풍성함이 있다. 그가 야곱의 열두 아들을 돌볼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넘치는 복을 주시는 이유는 누군가를 돌보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 누군가를 축복할 때는 야곱의 복에 대한 간증과 같이 축복해야 한다.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에서 비롯된 복을 받지 않았다면 그것은 간증(사실), 확신이 아니다.
8. 잘못된 과거로부터 결정적으로 돌이켜 오늘 내 삶을 풍성케 하신 하나님의 풍성함을 사실로 현재 누려야한다.(에베소서 3장 14-21) 에베소서 1장 15-23 말씀이 우리의 현재여야 한다.
9. 세상은 유다와 요셉만 기억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뤄가는 하나님의 나라을 이뤄가는데 요셉과 유다만 사용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이 정하신 기뻐하시는 분량대로 그들을 불러 그들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게 하신다.
10.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I am about to be gathered to my people) 야곱은 언약에 따라 낳고 언약에 따라 살고 언약에 따라 죽었다. 언약 백성의 삶은 외로운 목소리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세상을 충만케 하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모았다. 언약의 눈을 열어 언약의 세상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증언하게 하신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각각 분량대로 부르심을 주셨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기뻐하시는 분량에 따라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주신다.
11. 하나님의 그 부르심 앞에 신실하게 과거로부터 돌이켜 영광의 미래를 바라보며 오늘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의 작은 목소리를 낼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 영광의 놀랍고 크신 언약의 목소리로 세상 가운데 충만하게 하신다.
12. 과거에 죄인이었지만 예수님과 더불어 죽었기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고 그 영광에 오늘 우리가 산다.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현재밖에 살 수 없지만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사는 사람, 즉 하늘의 시간을 사는 사람이다. 언약의 백성으로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나의 찬송일세”가 우리의 외침이 되길 바란다.2부예배(10.25) 링크
3부예배(10.25)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