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 이 기사] 해고노동자들도 환한 얼굴 되찾을 수 있도록
사진 14장의 인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검정색을 배경으로 입을 다문 채 눈을 감고 있다. 마치 주어진 어떤 운명을 기다릴 수밖에는 없는 듯. 초점인 듯한 얼굴을 비추는 한 가닥 빛줄기마저 없다면 이들 사진 14장은 그야말로 모두 칠흑일 터이다.?
8.5cm × 11cm 사진으로 가로 × 세로 4장씩 16장을 단순 배치하면 딱 맞을 것 같은 지면인데, 두 번째 사진 열의 중앙 사진 2장이 들어갈 만한 공간은
“그날 이후로
살았지만 죽었습니다
나는, 해고노동자입니다”
라는 세 줄의 제목과 그 아래 여섯 줄의 기사로 대신했다.?
면 머리에는 ‘이 순간’이라는 28면의 주제 아래 ‘내일 노동자의 날’이라는 작은 부제가 이 사진들을 동원해 지면을 꾸리게 된 동기를 시사할 뿐이다. 그 넓은 지면 전체는, 다른 때의 여느 화보와는 딴판으로, 사진 크기에 변화를 준다든지, 아무 기교도 장식도 없다. 그러기에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뜻도 복잡하지 않고 단순 명쾌하다.?
깜깜한 배경 속에서 입을 다문 굳은 표정의 해고노동자 사진들은 희망이 없는 이들의 현실을 한 데 모아 놓은 듯하다. 너무 암울한 분위기에 비장함이 묻어나온다. ‘살았지만 죽었다’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상황은 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들의 손을 부여잡고, 함께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올 차례이다”라는 기사의 메시지는 이를 대하는 이들의 가슴속으로 더욱 다가올 것이다.?
노동자의 날을 하루 앞둔 4월30일 한겨레신문은 28면 전체를 해고노동자들의 인물사진 14장과 노동자를 해고한 기업들을 나열하고, 노동자해고가 낳은 비극 그리고 우리의 과제를 밝힌, 짧지만 가슴에 새겨야 할 글로 채우고 있다.?
2009년 6월 쌍용자동차는 희망퇴직 2026명, 무급휴직 461명, 정리해고 159명 등 모두 2646명의 노동자를 일터에서 쫓아내 길거리로 내몰았는데 이후 회사가 이들의 삶터로 복귀시킨 노동자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오히려 생활고를 겪다 목숨을 끊거나 해고 충격에 따른 지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나 그 가족은, 현재 알려진 사람만 해도, 지금까지 22명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11명은 삶에 대한 기력마저 상실한 나머지 제대로 유서조차 남기지도 못한 채 스스로 삶을 접었다. 이 정도면 ‘해고는 곧 살인이다’는 주장이 지나친 것만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듯 노동자 해고는 한 개인과 그 가정의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사회를 제대로 된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해고노동자들의 고통과 불행에 행복해할 수 있을까? 이제 해고노동자들이 그 고통을 더 이상 혼자 겪지 않도록 모른 척하거나 내버려두지 말자. 이러한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불행이다.
해고노동자들이 다시 설 수 있도록, 그래서 그들이 환한 얼굴을 되찾고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해질 수 있도록, 화보 사진 하나하나의 해고노동자 얼굴을 비추는 한 가닥 빛줄기가 되어, 문제 해결에 나도 너도 우리도 기업도 사회도 국가도 함께하면 좋겠다.
The AsiaN 편집국 news@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