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교회 설교문 요약] “인간 조건과 인생 조건”

들라크로아가 그린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출처 위키피디아>

본문 창세기 35장 1-15절

누구나 어릴 때 꿈이 있다. 어디론가 가고 싶고,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싶고, 누군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인생 살아보면 돌고 돌아서 결국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렇게 나 자신이 되도록 돕는 분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야곱은 나 아닌 형 에서가 되려다가 밧단아람으로 가야 했다. 외삼촌 라반처럼 부자가 되려다가 헤어져야 했고, 세겜 땅에서 그 사람들처럼 되려다가 또 다시 큰 위기를 만났다.

하나님은 왜 야곱이 안주하고자 하는 곳마다 흔들어 깨우실까? 그 의도가 무엇일까?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무엇이건 움켜쥐는 야곱의 손을 펴서 이웃을 축복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딸 디나가 수치를 당하고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을 살육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사건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신다.

하나님의 집은 관광지가 아니다.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곳이고, 예배 드리는 곳이고, 하나님과 함께 머무르는 곳이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곳이다. 아무리 화려한 곳이라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과 아무리 초라해도 하나님이 함께 계신 곳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시야에 가득한 곳으로 가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르는 곳에 머물러야 한다.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붙들면 차라리 우상 하나 붙들고 사는 사람보다 더 불안하다. 신앙의 첫 자리는 언제나 모든 우상을 다 버리는 것이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끊어져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시작된다.

우상을 버리면 정결해진다. 왜냐하면 우상을 버려야 내가 정결해져야 할 죄인이라는 사실에 눈이 뜨이기 때문이다. 비로소 내 죄가 눈에 들어온다. 나의 추한 모습이 보인다. 나의 역겨운 냄새에 내가 코를 막는다. 그리고 정결함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우상을 버려야 하나? 왜 정결해져야 하나? 왜 옷을 바꿔 입어야 하나? 그 모든 것이 나 아닌 것을 추구할 때 나타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왜 나 아닌 나를 추구하나? 그것들이 내 인생을 바꿔주리라고 기대하는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의 조건을 바꿈으로써 섬기는 자가 아니라 섬김 받는 자가 되고자 인생의 목표를 세운다. 자녀들을 놓고 기도할 때도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무슨 일을 시작하건 시작은 미약하나 끝이 창대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제대로 하나님을 만났다, 내 목숨을 다해 예수님을 따르겠다 결단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내 인생의 조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되는가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잠시 잠시 목마름을 해결해줄 수 있다. 그러나 영원한 해갈은 불가능하다. 왜 예수님은 종교가 아닐까? 그분은 우리의 선행 마일리지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은 내 열심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과의 관계에 달렸다. 그 관계가 분명하면 누구도 더 이상 인생의 조건에 매달리지 않는다.

다위니즘과 커뮤니즘은 인간의 조건을 파괴하고도 인생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생각이다. 다윈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패러다임이 인간 조건으로 규정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명패를 내세운 전체주의 이념은 전체의 이름을 빌어 궁극적으로 신앙과 사상의 자유를 말살하려 드는 집요한 노력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인생의 조건을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인간의 조건을 파괴한다. 인간을 점점 더 짐승 쪽으로 끌고 간다.

크고 은밀한 일은 우리의 존재 자체가 변하는 일이다. 우리가 더 이상 인생의 조건에 묶이지 않는 삶이다. 더 이상 자연을 신음하게 하고 더 이상 인간을 착취하고 더 이상 하나님을 모독하지 않는 삶이다. 화해의 삶, 화평의 삶, 참된 구원의 삶이다.

하나님의 집을 크게 지었는데 하나님이 안 계시면 무슨 소용인가? 하나님의 이름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정작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인생 최대의 복은 내 인생의 조건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뀌는 것이다. 나 아닌 누군가로 살겠다고 몸부림치다가 비로소 나 자신으로 살겠다고 결단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야곱의 축복은 양떼를 더 늘리는 것도 아니고 세겜에서 더 많은 땅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니고 세겜 족장과 사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야곱 인생 최대의 축복은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조건이 아니라 인간의 조건이 바뀌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생 부족함에 시달리던 내가 비로소 더 이상 목마르지 않는 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녀들을 통해 원하시는 마지막 목적은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먼저 우리를 바꾸시는 일이다. 내 인생 조건의 변화를 꿈꾸는 나를 바꾸시는 일이다.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길은 오직 인간의 조건이 바뀌는 구원 외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언제나 인생의 조건에 관심을 쏟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조건을 주목하신다. 그리고 모든 자녀들이 환경의 변화에 앞서 존재의 변화를 꿈꾸도록 하신다. 중요한 것은 존재가 바뀌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베이직교회 주일(5.17) 예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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