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6일] 모로코왕 지구온난화 알리려 북극점 탐험

2009년 북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팀 추방

2009년 4월16일 북한 영변에 머물던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팀이 북한에서 추방됐다. 북한은 당시 6자회담을 거부하고 핵 개발 재개를 선언한 상황이었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에서 가동 정지 봉인 등의 핵 불능화 작업을 감시해온 4명의 IAEA팀 요원들은 전날 북한 정부로부터 추방령을 받고 영변을 떠나 평양의 한 호텔에 잠시 머문 뒤 중국 북경을 거쳐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났다. 6자회담 합의에 근거해 연변에서 핵불능화 작업을 돕던 미국측 전문가들도 16일 평양으로 이동한 뒤 며칠 사이에 떠났다.

북한은 앞서 자신들의 로켓 발사를 비난하는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이 채택되자 IAEA 검증팀과 미국 전문가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북한을 떠나라고 지시했다. 6자회담 불참은 물론 기존 합의 파기, 핵시설 원상복구 선언 등 강경책을 이어갔다.

검증요원들이 영변을 떠나기 전 북한 당국은 영변 핵 연료 제조 시설과 5 메가와트 원자로 그리고 재처리 시설 등 세 군데의 봉인을 제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핵 불능화의 핵심 작업인 폐연료봉 인출 작업도 중단됐다. 감시 카메라의 전원이 꺼지고 카메라 방향은 벽 쪽으로 돌려졌다.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로 33명 사망

2007년 4월16일 오전 7시15분~9시45분 사이(미국 현지 시간) 미국 버지니아 주 블랙스버그(Blacksburg)에 위치한 버지니아 공대 (Virginia Polytechnic Institute and State University, 약칭 Virginia Tech) 캠퍼스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 학교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기숙사(West Ambler Johnston Hall)와 노리스 홀(Norris Hall)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총격으로 32명이 죽고 29명이 부상을 입었다. 나머지 한 명은 살인자 자신이 자살한 것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살인 사건이었다. 범인은 범행 당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미국 영주권자 조승희 였다. 8세(만 7세) 때 미국에 이민을 간 이민 1.5세대였다. 사건 당시 버지니아 공대에서 영어를 전공하는 4학년생이었다.

사건 후 한국의 이태식 주미대사가 “미국에 사과한다”는 발언을 했고, 이명박 대통령도 사과에 준하는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조승희는 미국에서 영주권을 가진 이민자인데, 그가 출생한 나라 지도자들이 잇따라 사과를 하니 미국인들은 어리둥절했다. 미국의 정치인들도 곤혹스러워 했다. 사과를 받아들이면 자신들이 진상을 조사해 한국의 관련성을 확증하고 한국 정부에 책임도 추궁해야 했기 때문이다.

2006년 모나코 알베르 2세 북극점 밟다

2006년 4월16일 5시45분(현지 시간) 모나코 공국의 국가원수 알베르 2세가 개썰매를 타고 4일 동안 여행한 끝에 북극점에 도착했다. 국가원수가 북극점 탐험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즉위(2005년 7월)한지 1년도 채 안된 한 나라의 왕이 오지 탐험에 나선 이유는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4월13일 6마리의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북극점에서 91km 떨어진 러시아의 바르네오 기상관측소를 출발했다. 그 뒤 4일 만인 16일 북극점에 도달한 것이었다.

알베르 2세는 북극점 도착 직후 언론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북극 근처에도 얼지 않은 물길이 있었고, 얼음이 계속 북쪽으로 후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우리가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라며 “과학자는 물론이고, 보통 사람들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알베르 2세의 고조 할아버지이자 근대 해양학의 선구자인 알베르 1세 또한 1898년부터 1907년까지 북극에 가까운 노르웨이의 스피츠베르겐 지방을 네 차례나 여행했다. 알베르 2세는 “고조 할아버지의 노트에는 북위 81~82도부터 얼음이 얼어 있었다고 돼 있는데, 이번 탐사에선 86도 지점에 가서야 얼음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100년 동안 기후가 확실히 변했고, 지구온난화가 확실히 진행됐음을 강조한 것이다.

알베르2세 이외에 주치의와 영국 산악인 등 8명이 참가했고, 탐험 도중 2명이 물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지만 부상은 없었다. 탐험대는 북극점 근처에도 얼음이 녹아 있어 길을 우회해야 했다. 이들이 탐험한 거리는 150km가량이었다.

2003년 히말라야서 전설의 눈사람 찾아나서

2003년 지난 4월16일 다카하시 요시테루(당시 60세)를 비롯한 일본 산악인 6명이 히말라야에 산다는 전설의 눈사람 예티(Yeti)의 존재를 밝혀내기 위해 네팔의 카트만두를 출발했다. 이들은 네팔 중서부에 위치한 히말라야 산맥의 고봉인 다울라기리 산맥의 기슭에서 설인 찾기에 나선다.

다카하시는 1994년 탐험 때 눈 속에서 발자국들을 본 후 예티의 존재를 확신해왔고, 예티를 찾기 위해 강력하고 정교한 자동 적외선 카메라 6대와 여러 과학 장비들을 가지고 갔다.

카메라들은 24시간 작동되며 어떤 생명체가 지나가도 자동으로 촬영하는 첨단 장비였다. 예티는 다울라기리 인근에 사는 것으로 추정됐다.

1899년 처음으로 히말라야산맥의 6000m 고지 눈 속에서 그 발자국이 발견됐다. 예티는 하지만 실체가 아직 파악되지 않아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생명체로 원숭이와 비슷한 외형, 날카로운 이빨 등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인도-방글라데시 5일 전쟁

2001년 4월16일 새벽 인도-방글라데시 국경 분쟁이 시작됐다. 방글라데시 육군 부대가 인도와 분쟁중인 국경 마을을 공격하자 인도는 국경지역의 방글라데시군을 상대로 대대적인 보복 공격을 개시했다. 두 나라간의 무력 충돌이 격화됐지만, 4월20일 양국의 군 수뇌부가 정전에 합의하면서 전쟁이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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