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 1세대’ 최열 70년 회고···미세먼지·양승태·10월유신·공해책 250권
[아시아엔=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오늘(1월19일)로 나는 꼭 70년을 살았다. 생일이다. 돌이켜보면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나는 신석기시대부터 4차산업혁명시대까지 살아본 지구상 유일한 세대이다.
6.25전쟁 직전에 태어나 전쟁 중에 완전히 폐허가 된 우리나라는 70%이상이 농민이었고 아무런 농기구 없이 농사를 지었고 지게로 물건을 날랐다.
호롱불에 나무를 땔감으로 썼고 백성들 많이들 굶었다.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 6.25때 피난은 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때 4.19혁명이 났고 대학생 데모에 많이 따라다녔다.
중1때 5.16쿠데타가 나서 혁명공약을 외워야했고 여섯번째로 우리의 과업이 완수되면 민정 이양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박정희 장군은 대선에 당선되었고 두차례 대통령을 했다.
그런데 1969년, 대통령 3선개헌을 하겠다고 해서 정국이 시끄러웠고 당시 대학 2학년때 3선개헌 반대 단식투쟁에 참석했지만 9월14일 새벽(4.19의 거꾸로 날) 여당 국회의원만이 몰래 모여 국회 제3별관에서 헌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엄청난 충격이었고 그날부터 나는 오락을 다 끊었다. 이후 대학에 현역군인이 학생에게 군사교육을 시켰고 나는 ROTC 신분으로 교련반대에 앞장섰다.
박정희후보는 대선전날 남산유세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눈물을 흘렀다. 그는 릴레이 투표라는 부정선거를 통해 김대중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1971년 일이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강제 입영되어 철책근무를 했다. 그게 71동지회다.
이듬해 박정희-김일성이 7.4공동성명을 발표해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몇 달 후 10월유신을 선포하고 국회와 대학에 탱크가 들어섰고 헌법기능은 정지되고 국보위가 구성되어 유신헌법을 제정해 통과시켰다.
그때부터 대통령직선제가 없어지고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박수로 뽑았다. 내가 제대한 74년 8.15에 지하철 1호선이 통과되었고 그날 경축사에서 박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총에 맞아 숨졌다.
대학생이 중심이 되어 유신반대 준비를 하다가 민청학련사건으로 수천명이 잡혀가고 나는 친구 이철, 유인태 등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동료를 살리기 위해 구속자 석방, 유신헌법철폐 운동에 참여해 명동성당 사건으로 구속됐다.
동료 23명은 재판을 거부했고 나는 6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때 배석판사가 다음 주 구속영장 심사를 받는 앙승태 전대법원장이다.
나는 옥중에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공해추방, 환경운동을 한평생 해보겠다고 다짐했고 일본 공해책 250권을 읽었다. 4년만에 석방되었다.
미세먼지 자욱한 하늘을 보면서 43년전 내가 환경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을 때 안양교도소에 있는 동료들이 “공해라도 배불리 먹고 싶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남은 생애, 하늘과 땅과 강과 바다를 살리는데 힘을 쏟을 생각이다. 옛날 같으면 70년 많이도 살았다. 그동안 나를 격려해주고 도와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