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 미르지요예프 대통령③] 총리 때부터 한국과 인연···양국 15차례 정상회담
[아시아엔=조철현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저자] 우즈벡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13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하며 한국 정가와도 친숙한 인연을 이어갔다. 총리 재임 시절 양국간 외교관계가 지난 시기보다 많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그 처음은 2005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국빈방문이었다. 당시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yev) 총리는 공항까지 마중 나와 1994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의 방문 이후 11년 만에 우즈베키스탄을 다시 찾는 한국의 국가원수를 극진하게 영접했다.
이어 이듬해 3월에는 카리모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서울 정상회담을 통해 두 나라 대통령은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 문건’에 서명했다. 이를 계기로 양국 정상은 중앙아시아 최대 가스 플랜트 개발사업이라 불리는 ‘수르길(Surgil) 프로젝트’ 물꼬까지 텄다.
한국형 자원개발 패키지의 교과서로 평가받는 수르길 프로젝트는 타슈켄트 서쪽 1300km 지점의 아랄해 가스전에서 매년 30억㎥의 천연가스를 생산해내는 일로 시작됐다. 전체 투자비만도 36억달러(약 4조원)에 이르는 이 대형 사업은 한국가스공사(22.5%), 롯데케미칼(24.5%), GS E&R(3%) 등의 한국기업들과 우즈베키스탄의 국영석유가스공사(UNG)가 공동 출자했다. UNG는 50%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수르길 프로젝트는 현재 2단계 사업까지 발전했다. 가스전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110km 가량 떨어진 우스튜르트 가스화학 플랜트로 송출해 폴리머 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수출해 사업 개시 10년만인 2017년 9월 마침내 첫 수익 배당도 실현했다. 첫 수확은 43만톤 가량의 폴리머와 305만톤 가량의 천연가스였다. 그리고 이를 통한 매출액은 6억달러에 이른다.
이후 양국 간 교류는 더욱 활발하게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네 차례, 박근혜 정부에서도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경제 교류를 확대했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노무현 시절부터 깊은 인연
양국간 의원 외교 역시 적극적 행보로 이어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의회에서는 고려인 출신의 빅토르 박 하원의원이 양국 의원외교의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내 고려인문화협회장이기도 한 빅토르 박은 고려인으로서는 최초로 2015년 선출직으로 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한국측은 국회 내 한-우즈베키스탄 의원친선협회가 양국 간 의원외교의 공식 창구다. 이 협회 회장은 4선의 변재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이다. 변 의원은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의 국빈 방한을 앞둔 2017년 9월 인터뷰에서 총리 시절의 미르지요예프를 떠올리며 이런 말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카리모프 대통령이 만나 전략적 동반자 시대를 열었을 때 미르지요예프는 우즈베키스탄의 총리였고, 문 대통령은 비서실장이었다. 두 사람 모두 양국 정권의 중심축이었다. 그랬던 두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 곧 만나게 된다. 한 사람은 카리모프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다른 한 사람은 전임자의 갑작스런 탄핵으로 대통령이 됐다. 참 공교로운 일이다. 두 사람 모두 운명적 만남이란 생각을 갖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이 아주 성공적일 것 같다.”
미르지요예프와 한국 정가의 인연은 그밖에도 많다. 총리 재임 시절 그는 양국 간 총리회담만도 4차례나 이어갔다. 2006년 9월 한명숙 총리를 시작으로, 2008년 5월 한승수 총리, 2014년 11월 정홍원 총리, 그리고 카리모프의 별세 직전이던 2016년 5월엔 황교안 총리와 각각 만나 양국 간 현안 문제들을 점검하고, 발전적 협력 관계를 논의했다.
우리나라와의 관계뿐 아니라 그는 오랜 총리 시절을 거치며 러시아와 중국,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와 튼튼한 외교 채널을 구축했다. 게다가 풍부한 행정경험은 물론, 구소련 시절의 라시도프(Sharof Rashidov, 1917~1983) 체제 이후 정치적 텃밭 싸움까지 사라져 전국적인 지지 기반 또한 확실해졌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