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4일] “사이코패스와 같은 이름 싫다”…14명 개명

2010년 한국 부산 여중생, 사이코패스에게 살해

2010년 2월24일 인사성이 좋기로 소문났던 이양은 밤 9시가 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 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청순하고 발랄한 아이. 밤 9시쯤 귀가한 오빠(당시 15)는 이양이 보이지 않자 어머니 홍모(당시 38세)씨에게 연락했다. 홍씨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양의 가족들은 “뭔 일이야” 정도로 걱정했다고 한다.

▲2월27일 경찰 공개수사 착수 = 이양의 신변 보호를 위해 비공개 수사를 하던 경찰이 사건 발생 3일 만에 이양의 인상착의가 담긴 전단 2만장을 전국에 배포하는 등 공개수사 착수

▲3월1일 용의자 추적 = 경찰, 관내 우범자 및 성폭력 전과자 60여명 중 아동 성폭력 전과가 있는 김길태(33)를 유력한 용의자 선상에 올려놓고 행방 추적 시작 ▲3월2일 용의자 인적사항 공개 = 경찰, 용의자 김길태의 인적사항 등을 담은 수배전단 배포

▲3월3일 용의자 검거 실패 = 3일 오전 5시께 이양이 살던 다세대주택 인근 빈집을 수색하던 중 형사 3명이 김길태로 추정되는 남자 발견했으나 검거에 실패

▲3월3일 경찰 수사인력 보강 = 부산 13개 경찰서 실종전담팀 1개 팀씩을 차출해 주야간 수색작업에 투입하는 한편 강력팀 13개 팀을 동원해 밤샘 수색 및 잠복근무 돌입

▲3월4일 신고 포상금 인상 = 여중생 실종사건의 신고 포상금을 500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높임

▲3월6일 시신 발견 = 사건 발생 11일 만인 이날 오후 9시20분께 이양의 집에서100m가량 떨어진 권모(66)씨 집 보일러실 위에 놓인 물탱크 안에서 이양의 시신을 발견

▲3월8일 경찰 비상근무 돌입 = 부산지방경찰청 산하 전 경찰관 비상근무 돌입

수사본부장을 기존 서장에서 경찰청 차장으로 격상하고, 전 경찰관에 갑호 비상에 준하는 근무 결정

▲3월10일 김길태 검거 = 사건 발생 15일 만인 이날 오후 3시 부산 사상구 덕포시장 인근 빌라에서 김길태 검거

부산 여중생 살해범 김길태는 측두엽(옆쪽 뇌) 간질을 앓았다고 했다. 1심 사형선고 후 항소, 정신감정을 했는데 1차 정신감정에서 반사회적 인격 장애(사이코패스), 2차 정신감정?검사결과?측두엽 간질과 망상장애가?나온 것이다.

▲김길태의 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왼쪽)과 중학교 졸업앨범사진(오른쪽)

이 결과에 신뢰할 수 없다는 검찰 측은 재판부에 재감정을 요청, 3차 정신감정이 실시됐다. 3차 정신감정에서는 2차 때보다 이틀 더 긴 5일 동안 입원해 감정을 받았다. 감정 결과 측두엽 간질과 망상장애가 나타나지 않았다.

재판부는 “계획적 범행으로 단정짓기 힘들고 한 사람만 살해했다”는 점을 들어 무기징역으로 감형, 김길태는 2012년 2월 현재 경북 북부 제1교도소(옛 청송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이양의 어머니 홍씨는 “당연히 사형판결이 날 줄 알았다. 재판부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며 “지금 내가 이렇게 분한데 하늘에 있는 우리 딸은 어떤 심정이겠냐”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사건 이후 살인자 김길태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 중 14명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름을 바꿨다.

2006년 일본 아라카와, 아시아 사상 첫 ‘은반여왕’ 등극

일본의 피겨요정 아라카와 시즈카(당시 25세)가 2006년 2월24일 당시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사상 첫 ‘은반의 여왕’에 올랐다.

아라카와는 이날 오전 이탈리아 토리노 시내 팔라벨라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피겨 여자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펼쳐 가장 높은 점수인 116.63을 기록, 합계 191.34점으로 우승했다.

아시아 선수가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따기는 지난 1924년 제1회 샤모니대회 이후 82년 만에 처음이다.


1998년 캄타이 시판돈 총리, 라오스 대통령에 선출

라오스의회가 1998년 2월 24일 캄타이 시판돈(Khamtay Siphandone, 당시 74, 사진) 총리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시판돈 신임 라오스대통령은 1975년 이후 군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양지만 골라 밟은 군출신 인사이다.

시판돈은 총리로 재직 중 지난 1992년부터 집권당인 라오스 인민혁명당(LPRP) 중앙위원장을 겸임했으며 당총재를 맡아 왔다. 당­정­군 국정 전반에서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1924년 라오스 남부 참파삭주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23세때부터 프랑스 식민통치에 대항해 무장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시판돈은 지난 1956년 라오스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지 2년 뒤 라오스 인민혁명당(LPRP)에 입당했다.

1959년 당선전국장을 거쳐 1975년 인민혁명당이 집권한 이후 23년 간 국방장관, 군총사령관, 부총리 등 정부 요직을 거치면서 착실히 기반을 닦았다.

시판돈 대통령은 2006년 6월8일 촘말리 싸야손(Choummaly Sayasone) 현 대통령(당시 라오스 부총리)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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