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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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 12.26] 동아일보 광고사태 시작(1974)·아베 총리 두번째 취임(2012)·모택동 탄생(1893)

    [아시아엔=손혁재 시사평론가] -1536(조선 중종 31) 율곡 이이 태어남 -1628(조선 인조 6) 실학자 이수광 세상 떠남 -1941 총독부, 조선임시보안법 공포 시행 -1974 동아일보, 광고 무더기 해약사태 발생. 이후 7개월간 계속 -1979 북한, 대한체육회에 모스크바올림픽 단일팀 구성 제의 -1990 국군보안사령부를 1991.1.1일부터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키로 결정 -1996 신한국당, 단독국회 열어 안기부법과 노동법 날치기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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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문화 첫걸음] 장개석과 모택동의 쟁투···‘민심은 천신’

    [아시아엔=강성현 <아시아엔> 선임기자, 중국연구가] “?事在人 成事在天”(M?ush? z?i r?n, ch?ngsh? z?i ti?n, 머우스짜이런, 청스짜이티엔) “일은 사람이 계획하고 추진하지만, 성사 여부는 하늘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전기 드라마 속 두 주인공, 장제스와 마오쩌둥이 천하를 건 쟁투를 벌인다. 1927년부터 1949년까지 무려 22년에 걸친 공방전이었다. 궁지에 몰리던 마오쩌둥은 곧잘 이 명구를 인용하였다. 마오 군대는 섬서성(陝西省) 연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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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중국은 주은래 밑그림에 등소평이 다듬고 색깔 입힌 것”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덩샤오핑(鄧小平)은 믿음이자 희망이었다. 덩은 저우의 기대에 보답했다. 오늘 중국의 실체와 미래는 저우가 그렸던 밑그림을 덩이 다듬고 빛깔을 얹힌 것이다. <신중국사>(新中國史, China A New History)의 저자 페어뱅크(John King Fairbank)는저우언라이의 중립성과 뛰어난 분별력을 높이 평가했다. 저우언라이는 위대한 능력을 지닌 매력적인 인물이다. 언제나 중립적인 위치를 지켰으며, 조직의 단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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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개혁개방 40년③] 모택동은 주은래 문병도, 추모식에도 참석치 않았다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를 한번도 문병 가지 않았다. 추모식에도 참석치 않았다. 인민들은 문병과 추모 등 마오의 가시적인 배려 같은 것을 바라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 두 사람이 손잡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소박한 인민들의 바램이었다. 그 작은 소망마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되었을 때, 인민은 분노했다. “4인방을 타도하자!”는 격한 시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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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개혁개방 40년②] “주은래 죽음은 모택동 시대의 종말 예고”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중화인민공화국 건설을 이끌던, 중국혁명 전설의 주인공 세 사람이 시간을 다투어 이승을 뜨고 말았다. 하나의 시대를 마감하는 요란한 진동이었다. 진동은 지각변동으로 이어졌다. 그해 10월 6일, 이른 바 ‘4인방’으로 불리던 장칭(江靑) 등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예상하기 어려웠던 반전(反轉)이었다. 저우언라이의 황포군관학교 시절 이래 평생의 전우였던 예젠잉(葉劍英)이 4인방 타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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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택동은 산, 주은래는 물, 등소평은 길”···이중 전 숭실대 총장 “반세기 한우물 판 3인방”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연변과기대 부총장 역임, <오늘의 중국에서 올제의 한국을 본다>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하다> 등 저자] 중국 현대사 인물 3인을 나는 이렇게 부른다. “모택동은 산이요, 주은래는 물이며, 등소평은 길이다.” 모택동은 어찌하여 산인가? 또 주은래는 왜 물이고, 등소평은 왜 또 길인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길을 만든 것이 오늘의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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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양회’서 장기집권 문턱 넘은 시진핑, 모택동 이래 최고 지도자?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모택동은 ‘불’이고, 주은래는 ‘물’이며, 등소평은 ‘길’이다.” 모택동은 왕조를 일으켰다.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민심을 잡아 왕조를 창건했다는 데서 한의 유방에 흡사하다. 모택동은 공산혁명을 “불씨 하나가 광야를 불태울 수 있다”고 비유하였다. 공산당은 불씨였다. 모택동은 이 불씨로 천하를 손에 넣었다. 중국 천하를 광란으로 몰아넣은 문화혁명도 광야를 불태운 불이었다. 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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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천하통일④] 모택동과 시진핑의 연결고리는?···법가사상의 ‘패자지도'(覇者之道)

    [아시아엔=강철근 국제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진나라에 들어온 건숙에게 목공이 물었다. “대부 백리해께서 여러 번 선생의 현명함을 말했습니다. 선생은 어떤 말로 저를 깨우쳐 주시겠습니까?” 건숙이 말하기 시작했다. “섬진은 강한데도 중원 제후들의 반열에 같이 서지 못하는 이유는, 섬진의 위엄과 덕이 그곳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위엄이 없으면 심복시킬 수 없으며, 덕이 없으면 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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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위원의 포토차이나] ‘마오쩌둥 미술품’ 불티나게 팔린다

    중국 수도 베이징을 방문하는?사람들 대부분이 가장 먼저 찾는 곳 중 하나가 천안문광장이다. 천안문광장에는 우리나라 국회에 해당하는 인민대회당 등 사회주의 양식의 건물이 있고, 서양식 건축물의 정수를 보여주는 오페라하우스, 중국적 건축물을 상징하는 천안문이 우뚝 서있으며 그?뒤로는 고궁이 자리잡고 있다. 필자는 처음 베이징을 방문했던 1990년부터 천안문에 걸려있는 모택동(毛澤東, M?o Z?d?ng)의 초상화를 보며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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