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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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시인의 뜨락] 청록파 박두진의 ‘해’야 솟아라···해맑은 자연서 희망의 사회로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박두진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초기에는 자연을 노래하다가 차츰 사회현실의 긍정적 희망을 갈망하는 시를 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을 이끌어낸 촛불민심은 이제 적폐세력과 그들이 자행해 온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건설의 꿈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모처럼 찾아온 새로운 국가 건설의 꿈을 정치 광장에 남아 있는 구세력들(정치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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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시인의 뜨락] 부활절에 다시 읽는 ‘데미안’ 작가 헤르만 헤세의 ‘기도’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헤르만 헤세(1877~1962)는 독일 태생의 소설가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을 주로 썼으며, 동양 사상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우리는 헤르만 헤세를 소설가로만 생각하기 쉬우나 그는 시도 썼고 스위스 ‘테신’이라는 곳에서 2천여점의 그림을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헤세의 정신세계를 볼 때 그는 구도자였던 것 같다. “새는 알에서 깨어 나오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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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시인의 뜨락] 박기동의 ‘부용산’, 월북 작곡가 안성현 만나 ‘민중가요’ 되다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박기동은 1917년 여수의 섬 돌산 출신이다. 12살 때 가족을 따라 벌교로 이주하였다. 일제의 강압 통치 하에서 방황하다 영문학을 전공하게 되면서 우리나라 말과 글을 갈고 닦는 시인의 꿈을 꾸게 되었다. 해방 이후 몇몇 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좌파 계열의 남조선교육자협회에 가입해 교사직이 정직되기도 하였고, 그 후 정부의 탄압 속에서 평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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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시인의 뜨락] 이문재의 ‘오래된 기도’···”촛불 한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이문재는 시사저널 기자(1989~2005), 문학동네 편집주간(1998~1999)을 거쳐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필자는 간이식수술, 심장판막수술, 뇌수술을 받으면서 서울아산병원에 약 9개월 간 입원해 있었다. 그 때 성경 로마서 8장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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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김창수 시인의 뜨락] 고은 시인 ‘슬픔’에 겨워 세월호 참사에 울부짖다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고은은 초기에는 허무와 무상의 시를 쓰다가, ‘문의 마을에 가서’ 발표 이후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 의식과 역사성을 담은 시를 썼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있은지 3년이 되어 간다. 박근혜 정부 2년 차에 발생하여 304명이 수장당하는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구체제(앙시앵 레짐)를 지양하고 신체제를 만들어내야만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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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김창수 시인의 뜨락] 50살 늦깎이 등단 마경덕의 ‘가방, 혹은 여자’엔 뭐가 담겨있을까?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마경덕은 전남 여수 출생으로 50살이 돼서야 등단하였다.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시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고, 또 많은 시인들의 시를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시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남성에게 가방은 주로 밥벌이나 실용적 목적을 위해 들고 다니는 생활 도구다. 반면에 대부분의 여성에게 가방은 자신의 분신이면서 이미지다. 가방은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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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시인의 뜨락] 차옥혜 ‘성난 코끼리 모자’···저들의 초원을 빼앗은 자 누구?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차옥혜는 1945년 전주 출생으로 생명과 사랑, 상생과 평화를 노래한다. 인간과 자연이 공동체적인 운명임을 자각하고 생태적 평화라는 이상세계를 지향한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낚시하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산과 들과 강으로 쏘다니며 4년 반을 놀면서 간혹 낚시를 하였는데 소위 ‘손맛’이라는 것을 그 무렵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건너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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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시인의 뜨락] 김혜순 ‘지평선’···경계선 너머 그들의 삶에 사랑과 관심을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김혜순 시인은 경북 울진 출생으로 <또 다른 별에서>부터 <피어라 돼지> 등에 이르는 10권이 넘는 시집을 출간하였다. 기발하고 기괴하기도 한 상상력에 바탕을 둔 언어선택과 강렬한 이미지로 부담스러운 느낌을 주는 시를 썼으나, ‘김수영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낯설고 이색적이라는 그녀의 시세계가 문단의 공인을 받게 된다. 사실 지평선은 우리가 설정한 인위적인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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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시인의 뜨락] ‘섬진강 시인’ 김용택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지혜학교 교장 역임] 김용택은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살았다. 섬진강 시인이라 불린다. 혹자는 그를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이라고도 한다. 그의 시에는 주로 아이들과 자연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연과 아이는 순수성의 측면에서 그 속성이 비슷하다고 보며 그것들이 말라 비뚤어져 가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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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김창수 시인의 뜨락] ‘소설가 황순원’ 아들 시인 황동규의 ‘풍장’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황동규는 소설가인 황순원의 아들로 ‘국민 연애시’라고 칭할만한 ‘즐거운 편지’를 추천받아 문예지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현대인들이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전통 사회의 방식에 따라 죽음을 또 다른 삶으로 수용하는 종교적 방식, 두번째로는 죽음은 생명의 멸절이라고 하는 유물론적 이해 방식이 있다. 과학이 神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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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김창수 시인의 뜨락] 혁명가 체 게바라는 ‘먼 저편’ 위대한 시인이었다
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들에게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녹색대학 교수 역임] 체 게바라(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 1928~1967)는 의사로 출발하여 혁명가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서 쿠바혁명을 성공시키고 볼리비아 혁명운동에 참여하여 39살에 볼리비아 정부군에 사로잡혀 총살당했다. 게바라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에는 불가능한 꿈을 꾸자!”라는 말로 사회과학적 세계 인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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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시인의 뜨락] 유시화 ‘그대가 옆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녹색대학 교수 역임] 유시화는 시인이자 구도자로도 불린다.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었다. <성자가 된 청소부>, <티벳 사자의 서>, <장자, 도를 말하다> 등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서적들을 번역했다. 캔 윌버는 “인간에게 세 개의 눈이 있다”고 한다. 몸의 눈(육안), 마음의 눈(심안), 영의 눈(영안)이 그것이다. 몸의 눈은 경험되어지는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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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김창수 시인의 뜨락] ‘재기발랄’에서 ‘삶의 고통으로’···황인숙 ‘강가에서’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황인숙은 서울 출생으로 초기에는 가볍고 재기 발랄한 시를 주로 썼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삶의 무거움과 고통을 노래하는 시를 주로 쓴다. 2004년 여름 홍수로 전남 곡성군 압록강이 넘실대던 날, 때마침 가지고 갔던 시집에서 황인숙의 시 ‘강가에서’를 읽고 팔짝팔짝 뛰면서, 눈물을 찔끔찔끔 거리며, 요절복통을 하고 읽었던 생각이 난다. 시는 고립된 개체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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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창수 시인의 뜨락] 칠레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 ‘시가 내게로 왔다’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의 민중시인으로 레닌평화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맑시스트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였다. 바슐라르는 “시는 순간의 형이상학”이라고 하였다. 순간을 포착하는 것, 그것은 누구나 하고 살지만 그것이 경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말로 튀어나올 때 그것을 우리는 시라고 한다. 시는 어떤 극적 체험이나 전환의 경계 지점에서 불쑥불쑥 불을 토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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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시인의 뜨락] 80노모 빨리 죽으시라 기도한 친구에게 바치는 ‘기도’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1998년 가을, 간경화 합병증으로 요양 차 무주에서 담양으로 이사 갔다. 농가주택 평수 15평 정도 되는 집을 수리해서 살았는데 1년이 지나자 주인이 집을 팔겠다고 하였다. 4천만원을 달라고 하였다. 돈이 없어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친구가 우리 둘이서 반반씩 합하여 그 집을 사자고 하였다. 친구는 나를 위해서 그 집을 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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