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

  •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주원장, 장제스, 전두환의 닮은꼴은?

    주원장의 금의위(?衣?), 장제스의 남의사(?衣社) 그리고 전두환의 보안사 역사에 출몰한 무수한 특무조직의 속성은 대체로 강철 같은 규율, 그릇된 충성심, 흉악, 잔혹, 음모, 감시 및 상호감시, 호가호위, 탐욕 등으로 요약된다. 특무조직은 독재자의 최후가 그렇듯, 그 속성상 사회에 온갖 해악을 끼치다 결국 종막을 고하고 만다. 봉건시대 황제들이나 히틀러, 장제스를 비롯한 동서고금의 독재자들은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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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공자의 부활

    <한중수교 20주년 특집> 중국의 빛과 그림자②?’미국 공자학원의 의미’?? “공자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오직 영원히 존재할 뿐이다.” 맥아더가 남긴 유명한 말,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를 좀 비틀어 보았다. 공자가 남긴『논어』는 오늘날에도 중국 서점가에서 홍루몽, 서유기, 삼국지, 수호지 등과 더불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한다.『논어』에 나오는 주옥같은 표현들은 지식인들뿐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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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명문 여대생의 매란(賣卵), 그 충격적 현장

    <한중수교 20주년 특집> 중국의 빛과 그림자① ‘중국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한 일간지에, 등록금이 비싸기로 유명한 국내 모 사립 대학을 졸업한 한 남성(25세)이 대출금으로 갚아야 할 돈이 무려 4500만원에 이른다고 하였다. 그는 1학년 2학기부터 7학기 동안 대출을 받아 왔다. 그가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의식주를 해결하고 나면 한 2~3년은 꼬박 갚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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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강성현 교수 “큰 소리 통화하고 보니 중국인 다 됐네요”

    <인터뷰> 강성현 칼럼…중국을 보는?또 하나의 ‘창(窓)’ “한국에 와서도 시내버스 안에서 큰소리로 통화하고 택시 타면 안전벨트 안 매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인이 다 됐구나 싶어요. 하하” 매주 생생한 중국 소식을 전하고 있는 강성현 중국 웨이난사범대 교수가 9일 아시아엔(The AsiaN) 사무실을 방문해 그간의 중국 생활을 들려줬다. 강 교수는 아시아엔 창립시기부터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코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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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윈난인이 기리는 ‘철기 이범석 장군’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2009년 여름의 얘기다. 상하이의 여름은 찌는 듯이 더웠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가슴 사이로 땀이 줄줄 흘러 내린다. 더위를 피해 윈난성 쿤밍(昆明)으로 발길을 돌렸다. 상하이에서 쿤밍까지 기차로 장장 33시간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쿤밍에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전형적인 천고마비(天高?肥)의 날씨였다. 아침에는 냉기를 느끼기까지 했다. 쿤밍은 사시사철 온도가 봄날처럼 온화하여 ‘춘성(春城)’이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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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소황제(小皇帝)들의 대학입시

    중국에서는 농촌을 제외하고 집집마다 아들이든 딸이든 한 자녀 밖에 둘 수 없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들을 바오베이(??)라고 부른다. 이 귀염둥이들이 온갖 응석을 다 부린다. 조부모나 부모들이 이들을 황제처럼 받든다하여 ‘샤오황띠(小皇帝)’라는 말이 생겨났다. 부모는 아이들이 자라 큰 인물(望子成龍)이 되기를 꿈꾼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앞은 늘 북새통을 이룬다. 가장들이 소황제들을 ‘모시고’ 등굣길에 오른다.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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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중국 대학생들의 ‘내무 생활’

    중국 대학생들은 캠퍼스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것 같다. 베이징 대학의 아름다운 웨이밍후(未名湖)를 비롯하여 칭화대, 상하이의 화동사범대, 난징 사범대 등 대부분의 대학들은 크건 작건 간에 인공 호수나 아담한 연못 등이 있다. 이곳에서 낚시를 하는 ‘백수’ 아저씨들도 종종 보인다. 벚꽃이 만개한 캠퍼스 호숫가의 밤은 절경, 그 자체다. 호숫가 벤치, 잔디, 운동장 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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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레이펑은 누구인가

    “나의 삶은 유한하나, 인민을 향해 봉사하려는 나의 마음은 무한하다.” “나는 국가와 인민을 위해 영원히 녹슬지 않는 작은 나사못(螺??)이 되겠다.” 레이펑(雷?, 1940~1962)의 일기에 보이는 글이다. 레이펑, 그는 누구인가. 레이펑은 후난(湖南)성 창사(長沙) 출신으로 본명은 레이정싱(雷正?)이다. 빈농의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7세에 부모를 여의고 삼촌 밑에서 자라났다. 1957년 공청단(共靑團)에 가입했다. 1960년에 키 154cm, 몸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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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원자바오의 일갈 “공산당 최대 위기는 부정부패”

    “공금으로 담배를 사고 술을 마시며, 선물을 구입하는 행위를 엄격히 규제한다.” 지난 3월26일 국무원 제5차 청렴행정 추진회의에서 원자바오(?家?) 국무원 총리가 강조한 말이다. 언론에 보도된?그 연설문의 골자를 간추리면 이렇다. “밀실 행정은 부패의 온상이다. 행정 업무를 상당 부분 공개해야 한다. 국민이 정부를 감독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 부패현상은 행정 기구, 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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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호사다마(好事多魔)와 호사다마(好事多磨)

    강의 중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용어를 칠판에 쓸 기회가 생겼다. 그러자 중국 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선생님! ‘마(魔)’자가 틀렸어요. 그렇게 쓰면 안돼요.”라고 요란스레 떠들어댄다. 순간, 영문을 몰라 당황하였다. 한 학생을 지명하여 앞으로 나와서 ‘마’ 자를 직접 칠판에 써 보라고 하였더니, ‘갈 마(磨)’ 자를 쓰는 것이었다. 중국 성어사전을 찾아보니 동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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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한중수교 20년 성과와 반성

    겉으로 보기에는 등을 돌린 것 같지만 끈끈하고도 질긴 남녀 간의 애정관계를 연근(藕根)에 비유하여 ‘어우뚜완쓰렌(藕???)’이라고 한다. 한중 양국도 이와 비슷한 사이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시간 내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교류의 불길이 활활 타오를 수 있을까? 1992년 8월24일 한국과 중국 간에 역사적 수교가 이뤄졌다. 그리고 올해로 만 20년을 맞이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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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돈에 목숨 건’ 장자제 가마꾼

    장자제(張家界) 정상에서 왼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암벽에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은 채 공중에서 ‘괴성’을 지르며 곡예를 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바위와 허공을 벗 삼아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고 수직의 바위를 뛰어오르기도 한다. 참으로 아찔한 광경이다. 이 사람을 현지인들은 ‘즈주런(蜘蛛人, 거미 인간)’이라 부른다. 소수민족의 일파인 이들 ‘산족(山族)’ 사람들을 고용하여 눈길을 끄는 중국인의 상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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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장안의 달’이 보고 싶거든 달려오라

    장안일편월(長安一片月) 만호도의성(萬戶搗衣聲) 이백의 자야오가(子夜吳歌)라는 시의 일부이다. 사랑하는 낭군을 전쟁터에 보내고 잠 못 이루는 밤, 방망이질 하며 남편이 돌아오기만 학수고대(鶴首苦待)했던 장안의 여인네들. 독수공방, 젊은 아녀자의 애끓는 한(恨)이 방망이 소리와 함께 짙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장안(섬서(陝西)성 성도, 서안의 옛 지명)의 달은 변함이 없으리라. 천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 다듬이돌을 두드리던 여인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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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다이아몬드급 ‘식모’

    1960년대~1970년대 우리나라에는 가정부가 존재하였다. 이들은 ‘식모(食母)’라는 이름으로도 불려졌다. 한 때 귀에 익숙했던 식모라는 이름이 지금은 왠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당시 사회를 되돌아보면 참으로 처량하였다. 집집마다 형제자매들은 많고 먹을 것은 귀했다. 5남매, 6남매 이상은 기본이었다. 한 입이라도 덜기 위해 남의 집이나 먼 친척 집에서 ‘식모살이’를 해야 했다. 우리의 가난한 집 딸들은 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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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현의 중국이야기] 조선족 ‘붕어빵 사장’ 한광석 이야기

    한광석(韓廣石)은 조선족이다. 흑룡강성 칭안현(慶安)출신으로 나이는 마흔 네 살이다. 1996년 처음 한국에 들어온 이후 지금은 안방 드나들 듯한다. 그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한국은 어머니의 품같은 따뜻한 곳이다. 고등학생 딸을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내외를 비롯하여 누나 등 온 집안 식구들이 한국 전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아내는 뷔페에서 먹고 자며 한 달에 17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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