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시드니 성 메리 대성당에서 만난 전사자…‘정복되지 않는 평화’

평화는 정복돼선 안된다…<사진 황건>

시드니의 St Mary’s Cathedral을 찾았다. Hyde Park 바로 옆에 자리한 이 성당은 웅장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그런데 성당 안에서 뜻밖의 작은 전사자 기념비 하나를 만났다.

성당 안은 비교적 어두웠다. 오후가 되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반대편에서 들어왔다. 그 어둠 속에 한 병사가 네모난 석판 위에 누워 있었다. 그는 서 있지도, 행진하고 있지도 않았다. 총은 손에 들려 있지 않고 곁에 놓여 있었다. 얼굴 한쪽에는 전쟁터에서 사용했을 법한 산소마스크와 연결 호스가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의 몸, 성시(聖屍)가 떠올랐다. 보통 전사자 기념비에서는 라이플을 땅에 거꾸로 꽂고 그 위에 철모를 올려놓거나 십자가를 세워 죽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조각상에서는 상징물이 아니라 죽은 병사의 몸 자체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성당의 어둠과 스테인드글라스의 빛 때문이었을까. 음악은 들리지 않았지만, 마치 진혼곡이 흐르는 듯했다.

성 메리 대성당에서 만난 전사자 <사진 황건>

기념비에는 몇 개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TO ALL AUSTRALIANS WHO DIED IN WAR. 전쟁에서 죽은 모든 호주인들에게.
THEIR NAME LIVES ON FOR ALL GENERATIONS. 그들의 이름은 모든 세대에 살아 있다.

그리고 라틴어가 있다. DEO ET PATRIAE. 하느님과 조국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PAX INVICTUS. 정복되지 않는 평화.

Pax는 평화, invictus는 정복되지 않은, ‘굴복하지 않은’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을 ‘불패의 평화’보다는 ‘정복되지 않는 평화’라고 읽고 싶다. 병사는 전쟁에서 쓰러졌다. 그러나 전쟁이 그의 평화까지 정복할 수는 없다는 뜻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며칠 전 Footscray에서 보았던 한국전쟁 호주군 전사자 340명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전사자들을 이름으로 만났다. 이곳에서는 한 사람의 몸으로 만났다. 그리고 기념비의 문구가 그 둘을 연결한다. TO ALL AUSTRALIANS WHO DIED IN WAR. 전쟁에서 죽은 모든 호주인. 그 안에는 한국전쟁에서 쓰러진 340명의 호주인도 포함될 것이다.

나는 세비야 대성당의 콜럼버스 묘를 떠올렸다. 그곳에서는 네 명의 왕이 콜럼버스의 관을 떠받치고 있다. 제국과 역사의 무게가 한 사람의 죽음을 감싸고 있다. St Mary’s의 기념비는 훨씬 작다. 왕도, 영웅적인 자세도 없다. 한 병사가 조용히 누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총은 곁에 놓여 있고, 산소마스크와 연결 호스는 얼굴 옆에 남아 있다. 오후의 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지나 어둠 속의 병사에게 닿는다.

그리고 그 앞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Rest in peace. 그 말은 기념비에 새겨져 있지 않다. 내가 그 병사를 바라보며 떠올린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작은 기념비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울림인지도 모른다.

국가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성당은 그의 죽음을 품고, 남겨진 사람은 그에게 마지막 말을 건넨다. 편히 쉬기를.

그리고 기념비에는 마지막으로 두 단어가 남아 있다. PAX INVICTUS. 정복되지 않는 평화.

성메리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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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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