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의 사람읽기-고명진①] 6월항쟁의 결정적 순간을 찍다…‘아! 나의 조국’ 그 후

‘이상기의 사람읽기’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그가 살아온 시대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는 연재다. 이번에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던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 관장을 3회에 걸쳐 조명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결정적 순간을 기록한 사진기자에서 강원도 영월에 박물관을 세우고 어린이와 어르신들에게 사진과 기록의 가치를 전해온 그의 삶을 따라간다. 최근 병마와 싸우고 있는 고명진 관장이 걸어온 길을 되짚으며, 그가 지켜온 기록의 정신과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함께 나눈다. <편집자>
제1부 | 역사의 현장에 서다
1987년 6월 26일 오후, 부산 문현로터리. 최루탄 연기가 거리를 뒤덮었다. 국민평화대행진에 나선 시민들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이 대치하고 있었다. 그때 상의를 벗은 한 청년이 태극기 앞으로 뛰어나왔다. 두 팔을 높이 들고 경찰 쪽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은 사람이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 고명진이다.
훗날 ‘아! 나의 조국’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사진은 6월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1999년 AP통신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보도사진’에도 포함됐다.
고명진이 그날 촬영한 사진은 한 장이었다. 청년이 나타날 것을 미리 알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시위대 뒤편이 아니라 맞은편에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최루탄 연기 속에서 거리로 나선 시민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였다.
청년이 뛰쳐나오자 셔터를 눌렀다. 불과 몇 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진 속 청년이 누구인지는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언론사들이 수차례 찾으려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2026년 1월에는 사진 속 청년의 신원이 밝혀졌다는 영상까지 나돌았다. 고명진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여전히 그 청년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한다. 자신이 기록한 역사의 한순간을 살아낸 사람이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좋아했던 고등학생
고명진이 처음부터 사진기자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진이 좋았다. 1969년 서울 신일고등학교 3학년 때 신문반에서 사진을 맡았다. 국어교사 변인식은 학생의 관심을 인정하고 학교 밖 촬영도 허락했다.
고명진에게 그 기억은 오래 남았다. 사진을 좋아하는 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믿어준 선생님이 계셨다.
서라벌예술초급대학 사진과에 진학했지만 곧장 사진기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은행에서 일했고 주간지와 여성지 등 여러 매체를 거쳤다. 그가 바란 곳은 종합일간지 사진부였다. 사건이 일어나는 곳에 직접 가고 싶었다.
마침내 한국일보 사진기자가 됐다. 시위와 집회가 벌어지는 거리, 시대의 변화가 나타나는 현장을 찾아다녔다. 1980년 광주에 가지 못했던 일은 그에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자신이 보지 못하고 기록하지 못한 역사의 현장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중요한 현장이면 가능한 한 먼저 도착하고 마지막까지 남으려 했다. 기자가 현장에 오래 머물수록 다른 사람이 놓치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87년 6월 10일 서울의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 최루탄 파편에 다친 일도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신발을 벗었을 때 안에 피가 고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진기자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좋은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무엇을 겪었는지 남기는 일이 중요했다.

한 장의 사진과 그 뒤의 사람들
‘아! 나의 조국’은 사진기자 고명진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그는 그 사진만 찍은 사람이 아니다. 시위 현장에서 시민과 경찰을 찍었고, 그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찍었다. 역사를 기록하던 사람들의 모습 역시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한 시대의 보도사진 뒤에는 카메라를 든 기자가 있다. 그가 어디에서 어떤 위험을 감수하며 셔터를 눌렀는지 알지 못하면 사진이 만들어진 과정의 일부를 잃게 된다.
고명진은 카메라와 렌즈뿐 아니라 방독면, 취재 완장, 출입증 같은 물건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기자가 취재 현장에서 사용한 물건들은 그 시대 언론의 작업 환경을 설명해주는 자료였다.
기자가 남긴 사진은 신문에 실리지만, 기자들이 사용한 장비와 취재 과정의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기 쉽다. 그는 이런 기록을 한곳에 모으고 싶었다.
훗날 강원도 영월에 미디어기자박물관을 만들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사진기자에서 기록의 가치를 전하는 전도사로
고명진은 2007년 한 인터뷰에서 ‘아! 나의 조국’을 촬영하던 때를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 사진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순간이었는지, 사진 속 청년을 왜 찾고 싶은지도 설명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가 사진을 이야기하는 방식에는 또 다른 관심이 더해졌다.
사진을 잘 찍는 방법뿐 아니라 왜 찍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기록을 남기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2026년 청주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 보도사진 특강에서도 그는 사진의 사실성과 맥락을 강조했다. 기록하는 대상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 장의 사진이 오랜 세월 사실을 증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순간을 기록하지만, 그 기록은 시간이 지나 역사가 된다.”
그는 이제 전문 사진기자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도 기록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휴대전화로 찍은 일상사진이 훗날 지역의 역사를 설명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고명진의 카메라는 한때 한국 현대사의 격렬한 현장을 향했다. 지금은 농촌학교 학생과 마을 어르신, 자기 삶을 기록하려는 주민들을 향하고 있다.
촬영하는 대상은 달라졌지만 기록을 대하는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987년 부산 문현로터리에서 고명진은 이름 모를 청년의 순간을 남겼다. 지금 그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웃들의 삶을 남긴다.
그렇게 사진기자 고명진의 기록은 계속되고 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