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조종사와 외과의사의 ‘출격일지’와 ‘수술기록지’

출격일지는 조종사의 수술기록지이고, 수술기록지는 외과의의 출격일지다.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간다. 비행기도, 폭탄도, 총탄도, 피도 지나간다. 그 순간의 판단은 몇 초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나간 순간을 다시 들여다보고 적는 일은 다르다. 기록하는 동안 사람은 자신이 본 것을 다시 배열한다. 혼란스러운 현장을 하나의 구조로 바꾼다. 내가 연구했던 손정주 군의관의 수술기록지가 바로 그랬다. 전쟁 중에도 그는 환자의 몸을 해부학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 기록은 단순한 행정문서가 아니라, 한 외과의가 전쟁 속에서 어떻게 보고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었다.-본문에서

전쟁기념관에 갔다. 아내는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인상파의 밤: 파리 1874’를 보러 가고, 나는 6·25전쟁실 2로 향했다. 그곳에는 국군의 반격과 북진에 관한 전시가 이어지고 있었다.

공군 코너 입구에서 유용석 준장의 흉상을 만났다.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낡은 비행일지 한 권에 눈길이 멈췄다. 1951년의 기록이었다.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출격 날짜와 목표 좌표가 적혀 있었고, 목표물의 모습이 손으로 그려져 있었다.

supply shelter, gun position, bunker 같은 영어도 눈에 들어왔다. 비행이 끝난 뒤 자신의 비행을 돌아보며 적은 짧은 메모도 있었다. formation, miss, rocket, trim tab.

잘한 것만 적은 것은 아니었다. 기어를 너무 빨리 넣었다거나, 목표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거나 하는 자기반성도 있었다. 다음 비행에서 더 나아지기 위한 생각이 이어졌다.

나는 그 글씨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다른 기록 하나를 떠올렸다. 같은 해인 1951년, 6·25전쟁 중 한 군의관이 남긴 수술기록지였다.

손정주 군의관의 기록에는 환자의 진단과 수술 소견, 수술 과정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내 눈을 끈 것은 글보다 그림이었다. 복부를 열었을 때 보았던 장기와 혈관의 위치, 손상된 부위를 직접 손으로 그려놓았다. 전쟁 중 이동하는 야전수술부대에서 남긴 기록이었다.

두 기록은 전혀 다른 사람이, 전혀 다른 장소에서 썼다. 한 사람은 하늘에서 적의 진지를 내려다보았고, 다른 사람은 수술대 위에서 다친 병사의 몸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닮아 있었다.

조종사는 전장의 지형을 그렸다. 외과의는 몸속의 장기를 그렸다. 조종사는 목표를 어떻게 찾아갔고 무엇을 놓쳤는지 기록했다. 외과의는 손상된 구조가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록했다. 둘 다 단순한 결과 보고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남긴 기록이었다. 조종사의 메모에는 다음 비행에서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할지도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출격일지는 조종사의 수술기록지이고, 수술기록지는 외과의의 출격일지다.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간다. 비행기도, 폭탄도, 총탄도, 피도 지나간다. 그 순간의 판단은 몇 초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나간 순간을 다시 들여다보고 적는 일은 다르다. 기록하는 동안 사람은 자신이 본 것을 다시 배열한다. 혼란스러운 현장을 하나의 구조로 바꾼다. 내가 연구했던 손정주 군의관의 수술기록지가 바로 그랬다. 전쟁 중에도 그는 환자의 몸을 해부학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 기록은 단순한 행정문서가 아니라, 한 외과의가 전쟁 속에서 어떻게 보고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었다.

어제 본 비행일지도 그랬다. 1951년의 조종사가 자신의 비행을 복기하며 남긴 몇 장의 기록. 그것은 한 사람의 출격 기록이면서 동시에 한 조종사가 전쟁을 배우던 기록이었을 것이다.

전쟁기념관을 나오면서 다시 생각했다. 전쟁은 거대한 전투와 작전의 이름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전쟁을 실제로 살아낸 사람들은 때로 이렇게 작은 노트에 자신의 전쟁을 남긴다. 하늘에서 본 전쟁과 사람의 몸에서 본 전쟁. 하나는 출격일지로, 다른 하나는 수술기록지로.

그리고 세월이 지난 뒤, 누군가 그 작은 글씨와 그림 앞에 다시 선다. 그때 비로소 한 사람의 전쟁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쟁의 역사는 거대한 작전도 사이사이에 남은 이런 작은 기록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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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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