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4년 김인겸의 절세미인, 2026년 나고야의 큐레이터

도요토미 히데요시 특별전과 리투아니아 특별전을 보러 나고야시박물관에 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박물관으로 걸어가려는데, 지하철 벽에 거대한 해골이 사람들을 위협하는 그림이 붙어 있었다. 걸음을 멈추었다. 해부학자인 내 눈에는 다른 무엇보다 해골이 먼저 들어왔다.
‘상설전시품인가?’ 진품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림은 우타가와 구니요시(歌川国芳)의 ‘상마의 고내리(相馬の古内裏)’였다. 1840년대에 제작된 우키요에로, 다이라노 마사카도의 딸 다키야샤가 폐허가 된 소마의 궁에서 주문을 외워 거대한 해골을 불러내는 장면이다. 원래 이야기에서는 여러 해골이 등장하지만, 구니요시는 그것을 하나의 거대한 해골로 바꾸었다. 세 장의 판화가 이어진 화면의 두 장을 거의 가득 채우는 해골은 찢어진 발을 걷어내며 아래의 무사들을 내려다본다.
나는 해골의 두개골과 척추, 갈비뼈, 어깨뼈과 상지의 뼈를 유심히 보았다. 괴물인데도 우리와 같은 사람의 골격을 하고 있었다. 다만 크기는 현실을 벗어날 만큼 과장되어 있었다. 정확한 해부학과 상상력이 한 화면에서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 무렵 일본에는 이미 서양 해부학의 지식도 들어와 있었다. 1774년에는 네덜란드어로 번역된 서양 해부학서를 다시 일본어로 옮긴 <해체신서>가 출간되었다. 구니요시의 그림이 <해체신서>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1774년과 이 그림 사이에는 약 70년의 시간이 놓여 있다. 나는 이 해골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그런데 박물관에 들어가 보니 사정이 달랐다. 리노베이션 중이어서 2층과 3층의 상설전시는 관람할 수 없었다. 표를 파는 곳 옆에 있던 통역사에게 지하철에서 찍어 온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을 볼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도록이라도 구입할 수 있을까요?”
잠시 후 한 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다. 2019년에 열렸던 전시의 브로셔와 도록 한 권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큐레이터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 도록은 자신이 7년 전 만들었다고 했다. 책을 펼쳐 내가 찾던 페이지를 보여주었다. 얼마나 많이 펼쳐 보았던 책인지, 그 페이지를 열자 책이 그만 반으로 갈라졌다.
나는 해부학자라고 소개하고, 아시안게임에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 팀닥터로 왔다고 했다. 그 도록을 사고 싶다고 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시에 인쇄된 도록은 모두 팔렸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신의 마지막 소장본이라 팔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일본어로 된 박물관 웹사이트에 들어가 작품번호를 입력했다. 그리고 내가 휴대전화로 작품 정보를 내려받을 수 있도록 직접 도와주었다. “You can use it free with citation.”
그리고 자신이 만든 도록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펼쳤다. 작품 해설이 있는 페이지였다. “이것도 찍으세요.” 나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Hope your team’s victory, and enjoy Nagoya!” 돌아보니 그 큐레이터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걸어오는데 문득 1764년 조선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왔던 김인겸이 떠올랐다. 그는 <일동장유가>에서 일본 여성들의 모습을 보고 ‘모두 절세미인’이라고 기록했다.
나는 그 기록을 떠올리며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오늘 내가 만난 그 여성은 처음부터 특별히 아름다운 외모로 내 눈에 들어온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낯선 외국인 한 사람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주었다.
팔 수 없는 마지막 소장본은 팔지 않았다. 대신 인터넷에서 작품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자신이 만든 도록을 펼쳐 해설까지 찾아주었다. 그리고 돌아서는 외국인에게 자기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당신 팀의 승리를 빕니다. 그리고 나고야를 즐기세요.”
어쩌면 아름다움은 얼굴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자신이 맡은 일을 정성껏 해내는 사람의 태도에는 외모와는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 있다.
1764년 김인겸이 일본 여성들에게서 절세미인을 보았다면, 250여 년 뒤 나고야를 찾은 나는 한 큐레이터의 직업전문성(프로페셔널리즘)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처음 나를 그곳으로 이끈 것은 거대한 해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