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 풍림1차아이원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위탁관리업체 사이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엔은 주민대표의 권한, 외벽 도색공사, 장기수선충당금, 위탁관리업체와 행정기관의 책임 등을 다섯 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이번 6회에서는 주민 공동자금의 관리와 대규모 공사의 검증 문제를 살펴본다. <편집자>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 풍림1차아이원아파트에서 제기된 여러 논란 가운데 주민들의 생활과 직접 연결되는 문제는 돈이다. 2560세대가 납부한 장기수선충당금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가. 약 9억원 규모의 외벽 도색공사는 어떤 기준으로 추진해야 하는가.
주민대표와 관리사무소의 갈등은 법적 절차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이 낸 돈의 사용 내역과 공사비의 적정성은 장부와 계약서, 입찰자료를 통해 검증해야 한다.
누구의 말이 옳은가를 따지기에 앞서 기록이 무엇을 보여주는지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30억원과 16억원, 무엇이 문제인가
풍림1차의 장기수선충당금을 둘러싼 논란은 과거 적립액과 현재 잔액의 차이에서 시작됐다. 배정희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전임 회장으로부터 과거 약 30억원의 장기수선충당금이 다음 기수에 인계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진현기 관리사무소장은 아시아엔에 보낸 답변서에서 2026년 9월 14일 기준 장기수선충당금 잔액이 16억2895만2000원이라고 설명했다. 또 2024~2025년 승강기 교체 등 주요 사업에 30억7903만3650원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이 숫자들만으로 부정한 자금 집행이 있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장기수선충당금은 공동주택의 주요 시설을 보수하거나 교체하기 위해 적립하는 돈이다. 승강기와 배관, 옥상과 주차장 방수, 외벽 보수 등 필요한 공사에 사용하도록 마련된 자금이다.
따라서 적립액이 줄어든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필요한 공사에 사용됐는지 여부다.
과거 30억원이라는 금액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후 매년 얼마가 적립됐고 어떤 공사에 얼마가 집행됐는가. 현재 장부에 기재된 잔액과 금융기관 계좌의 실제 잔액은 일치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느 한 사람의 기억이나 설명이 아니라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장부와 통장, 계약서를 함께 봐야 한다
공동주택 관리 경험이 있는 김제완 세계로신문 대표는 아시아엔의 연재 초안을 검토하면서 장기수선충당금의 실제 흐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적립액이 얼마였다는 진술과 현재 잔액만 비교할 것이 아니라 연도별 결산서, 회계장부, 계좌 거래내역, 공사 관련 의결서와 계약서를 대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해 초 장기수선충당금 잔액이 20억원이고 그해 8억원을 새로 적립한 뒤 시설 교체에 10억원을 사용했다면 연말 잔액은 18억원이 된다. 잔액이 2억원 줄었다는 사실만으로 돈이 사라졌다고 주장할 수 없는 이유다.
반대로 장부에 기록된 공사비와 실제 지급액이 다르거나, 관련 의결과 계약 절차에 문제가 있거나, 회계장부의 잔액과 계좌 잔액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풍림1차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진 소장이 밝힌 2024~2025년 주요 공사 집행액 30억7903만3650원이 실제로 어떤 공사에 사용됐는지, 각 공사의 계약금액과 지급액이 일치하는지, 적법한 의결과 회계처리를 거쳤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필요한 자료가 확보된다면 공사별 집행 내역을 표로 정리해 주민에게 설명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공동주택의 회계는 복잡하지만 주민이 이해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얼마가 들어왔고, 어디에 썼으며, 얼마가 남았는가.
9억원 도색공사, 공사비는 적정한가
외벽 도색공사도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다. 풍림1차에서 추진된 도색공사의 예상 사업비는 약 9억원이다. 아시아엔의 앞선 보도 당시 공사는 시행되지 않았으며 시공업체도 선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공사를 앞두고 배 회장과 진 소장 사이에 오간 대화가 논란이 됐지만, 실제 금품이 오갔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진 소장은 특정 업체를 추천하거나 금품을 제안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공사 추진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관련 의혹에 대한 확인과 함께 공사 자체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일이다.
9억원이라는 금액은 어떤 공사 범위를 기준으로 산정됐는가. 도색 면적과 사용할 자재, 균열 보수 범위, 시공 방법은 어떻게 정해졌는가. 감리는 누가 맡으며 공사 완료 후 품질은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들이 동일한 조건으로 견적을 제출하도록 했는지도 중요하다. 시방서가 불명확하면 업체마다 서로 다른 기준으로 공사비를 산정할 수 있다. 최저가격을 제시한 업체가 반드시 가장 적절한 시공 능력을 갖췄다고 보기도 어렵다.
반대로 공사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계약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자재와 공법, 공사 범위와 품질보증 조건을 함께 비교해야 한다.
주민대표가 이러한 모든 사항을 독자적으로 검토하기는 쉽지 않다.
공사원가 검증,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나
김제완 대표는 약 10년 전부터 민간아파트 공사계약에 대한 원가심사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그가 제시한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수억원대 공사를 발주하면서 공사원가와 시방서를 전문적으로 검토할 장치가 부족하면 주민대표와 관리사무소의 판단만으로 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당시 서울 강남구에서 시행한 민간아파트 공사원가 검토 사례도 소개했다. 전문가의 사전 검토를 통해 공사비의 적정성을 확인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자는 취지였다. 공동주택 공사는 주민들이 부담하는 돈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공사비를 줄이는 일만큼 적정한 품질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를 추진할 때 지방자치단체나 독립된 전문가가 공사원가와 시방서, 입찰조건에 대한 검토를 지원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외부 검토를 의무화할 경우 추가 비용과 절차 지연이 발생할 수도 있다. 공사 규모와 기술적 난도, 이해충돌 가능성 등에 따라 검증 수준을 달리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전문가의 검토는 주민대표의 결정권을 빼앗는 일이 아니다. 주민대표가 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하도록 돕는 일이다.
정보 공개만으로 충분한가
정부는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을 통해 관리비와 회계감사 결과, 입찰 및 사업자 선정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K-apt에서는 입찰공고와 사업자 선정 결과를 확인할 수 있으며, 주요 사업과 유사 아파트의 계약금액 등을 비교하는 기능도 제공한다.
그러나 자료가 공개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민이 해당 공사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입찰공고와 낙찰금액을 확인하더라도 공사 범위와 자재, 시방서의 내용이 다르면 단순한 금액 비교에 한계가 있다.
장기수선충당금 역시 일정 기간의 적립과 집행 내역을 연결해 봐야 자금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자료 공개와 함께 주민이 그 내용을 검증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다.
대표회의 회의록, 공사 관련 의결서, 계약서, 회계자료 등을 법령상 공개 범위와 절차에 따라 주민이 쉽게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대규모 공사를 앞두고 주요 조건과 예상 사업비, 업체 선정 기준을 주민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주민 공동재산을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
풍림1차의 장기수선충당금과 외벽 도색공사 문제는 아직 관련 자료를 통해 확인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과거 적립액과 현재 잔액의 차이만으로 비리를 단정할 수 없고, 공사비가 수억원에 이른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의 부당성을 판단할 수도 없다.
그러나 주민들이 의문을 제기했을 때 관리주체가 기록으로 설명하고, 필요한 자료를 공개하며, 중요한 공사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검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하다.
관리사무소가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반대로 입주자대표회의가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잘못이 확인된 것도 아니다. 장부와 계약서, 의결자료가 판단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 회장도 바뀌고 관리소장도 바뀌며 위탁관리업체도 교체된다. 그러나 주민이 오랫동안 납부한 돈과 그 돈을 사용한 기록은 남아야 한다.
주민이 주인인 아파트라면 주민이 자신의 돈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돈을 맡긴 사람이 돈의 흐름을 확인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 그 관리제도는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