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해부학자의 가슴과 시인의 가슴…수성못에서 만난 이상화의 ‘수밀도’

상화와 경상도 출신 시인들

며칠 전 대구 수성못 근처에서 학회가 열렸다. 학회장과 숙소에서는 수성못이 내려다보였다. 나는 「From Pectus to Breast: Anatomical and Semantic Gendering of the Thorax」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고대 라틴어 pectus는 성별을 특정하지 않는 앞가슴을 가리켰지만, 현대 영어의 breast는 주로 여성의 유방을 뜻한다. 그리스어에서도 가슴 전체를 가리키는 stēthos와 유방을 뜻하는 mastos를 구별했다. 해부학적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을 부르는 말에는 시대에 따른 의미의 변화가 쌓였다. 내 발표는 그 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숙소에서 식사 장소로 가려면 수성못의 데크를 따라 걸어야 했다. 해가 기울고 땅거미가 깔리자 조명이 하나둘 켜졌다. 무명 가수의 노래가 흐르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곳에 ‘상화공원’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배웠던 시인 이상화(李相和)가 떠올랐다. 상화(尙火)는 그의 호였다.

공원 안쪽에는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새겨져 있었지만, 내 발길을 붙든 것은 길가 철판에 새겨진 「나의 침실로」였다. 어스름한 빛 속에 중절모를 쓴 시인의 입상이 서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기억나는 대목을 더듬어 외워 보았다.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히도록 달려오너라.”

성형외과 의사로서 유방 수술을 하기도 했지만, 여성의 가슴을 이보다 관능적으로 표현한 문장을 나는 알지 못한다.

낮에 나는 해부학적 가슴을 이야기했다. 흉벽과 유방을 구별하고, pectus가 breast로 옮겨 가면서 언어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시인의 ‘수밀도’는 해부학적 구조를 구분하지 않는다. 한 단어가 둥근 형태와 촉감, 생명력과 욕망을 한꺼번에 불러낸다. 그 가슴에 맺히는 이슬은 신체의 일부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다림과 관능을 머금는다.

그때 문득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가 떠올랐다. 날이 저물고 종이 울린다. 세월은 흐르고, 나는 그 속에 취한다. 시 속의 종소리는 공원에 울려 퍼지는 가수의 노래와 묘하게 대비되었다. 하나는 흐르는 세월을 일깨우는 듯했고, 다른 하나는 저녁 공기를 채우며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객지에서 보낸 며칠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학회에서 발표를 마치고 낯선 도시의 연못가를 걸으며, 오래전 교과서에서 만났던 시인을 다시 만났다. 중절모를 쓴 상화는 말이 없었다. 나는 그 앞에 서 있는 나그네였다.

낮에는 해부학자의 언어로 가슴을 구분했다. 저녁에는 시인의 언어 앞에서 잠시 말을 잃었다. 수성못에 어둠이 내리고 노래가 흐르는 동안, 상화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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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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