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라클오케이어학당, ‘기업 맞춤형 찾아가는 한국어 교육’ 종강…4년째 이어온 민관협력
공장에서 배우는 한국어, 외국인 근로자 넘어 동반 가족의 지역사회 정착까지 지원
방글라데시 출신 외국인 근로자 헉씨는 경기도 포천의 해성변압기에서 일한다. 매일 공장에서 일하는 그에게 한국어를 배우러 학원에 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선생님이 공장으로 찾아왔다. 일터가 곧 한국어 교실이 된 것이다.
그렇게 배운 한국어는 뜻밖의 순간에 큰 힘이 됐다. 동료가 갑자기 아팠을 때였다. 헉씨는 수업 시간에 배운 표현을 떠올려 119에 신고하고 출동한 구급대원에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17일 포천에서 열린 ‘기업 맞춤형 찾아가는 한국어 교육’ 종강식에서 헉씨가 전한 이야기다. 그의 경험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한국어 교육이 단순한 언어 습득을 넘어 일터의 안전과 일상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사단법인 미라클오케이 어학당(대표 김유순)은 이날 포천 어학당에서 종강식을 열고 한국어 교육 216시간과 심리상담 24시간의 교육과정을 마무리했다. 행사에는 교육을 수료한 외국인 학습자와 교사, 참여 기업 대표, 포천시의회 및 포천시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은 이 사업은 포천시와 미라클오케이 어학당이 함께 추진하는 민관협력 프로그램이다. 포천시가 참여 기업을 모집하면 어학당 교사들이 사업장을 직접 찾아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심리상담을 진행한다.
제조업이 중심인 포천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여러 산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장이 도심에서 떨어져 있거나 근무시간이 불규칙해 교육기관을 찾아가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찾아가는 한국어 교실은 이러한 현실에서 출발했다. 교사들이 기업의 업무 특성과 근로자의 근무시간을 고려해 현장에서 필요한 표현을 가르친다. 작업 지시를 이해하는 말, 동료와 소통하는 말, 긴급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말이 수업에 포함된다.
올해는 참여 기업이 지난해 5곳에서 6곳으로 늘었다. 교육 대상도 외국인 근로자뿐 아니라 함께 한국에 거주하는 배우자 등 동반 가족으로 확대됐다.

“직원들이 그냥 좋다고 합니다”…기업이 체감한 한국어 교육
해성변압기 박민수 과장은 한국어 교육을 받는 직원들의 반응부터 전했다. “직원들이 어학당이 그냥 좋다고 합니다.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학습자들을 아끼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박 과장은 이번 교육이 단순히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 머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이 작업 현장에서 안전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동료들과 소통하며 협력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기업이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외국인 근로자의 업무 적응이 주된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숙련된 근로자들이 가족과 함께 지역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돕는 문제까지 고민하고 있다.
거성금속 정은숙 대표의 이야기는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정 대표는 숙련된 외국인 근로자와 오랫동안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배우자의 한국 생활 적응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올해는 동반 배우자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신청했다.
“배우자들이 기본적인 한국어로 의사소통하고 혼자 택시도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사업장 기숙사까지 찾아와 가르쳐 주셨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아이들까지 돌봐주셨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이나 아내뿐 아니라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가족에게도 한국어가 필요하다. 택시를 타거나 물건을 사고, 병원을 찾고, 자녀의 학교생활을 챙기려면 최소한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일이 한 사람의 직장생활을 돕는 데서 가족 전체의 지역사회 적응을 지원하는 일로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 근로자 400여 건 체류자격 신청…가족 정착이 새로운 과제
포천시도 외국인 근로자의 장기 체류와 가족 동반에 따른 교육 수요에 주목하고 있다. 김길훈 포천시 외국인주민팀장은 이날 종강식에서 “E-7-4R 신청이 지난해 300여 건에서 올해 400여 건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E-7-4R은 법무부가 2025년 2월 신설한 지역특화 숙련기능인력 체류자격으로, 숙련된 외국인 근로자의 지역 내 장기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다.
외국인 근로자가 지역에서 장기간 생활하게 되면 배우자와 자녀의 정착 문제도 함께 떠오른다. 배우자에게는 일상생활을 위한 한국어 교육이 필요하고, 성장기에 한국으로 들어온 중도입국 자녀에게는 학교생활과 학습을 위한 별도의 지원이 요구된다.
김 팀장은 동반 배우자의 한국어 교육과 중도입국 자녀의 학습 지원 등 가족의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종강식은 수료증을 전달하는 행사에 그치지 않았다. 어학당과 포천시, 기업 관계자들이 각 사업장에서 겪는 어려움과 교육 수요를 공유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방인의 친구가 되겠다”…4년째 지켜온 약속
김유순 미라클오케이 어학당 대표는 종강식에서 어학당을 시작할 때의 마음을 다시 꺼냈다. “이방인의 친구가 되어 주겠다는 처음 마음으로 학습자들의 꿈을 응원하고 새로운 시작을 돕겠습니다.”
김 대표는 평일 저녁과 주말에도 수업을 이어온 교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교육사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한 포천시와 근로자들의 교육을 위해 사업장을 개방한 기업 관계자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서과석 포천시의회 의장은 “외국인 주민들이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겪는 어려움을 덜고, 포천에서 좋은 추억을 쌓으며 건강하게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장을 직접 찾아가 한국어 교육을 지속해 온 어학당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현규 포천시의회 부의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은 산업 현장에서 포천을 함께 이끌어가는 소중한 구성원이자 지역사회의 든든한 이웃”이라며 “종강식이 배움의 끝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연제창 더불어민주당 포천시·가평군 지역위원장은 “학습자들을 향한 어학당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며 “한국어의 다채로운 표현이 가진 매력을 즐겁게 배우고 고국에도 널리 알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포천에서 김포·서초까지…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한국어 교실
미라클오케이 어학당은 포천뿐 아니라 지역별 교육 수요에 따라 프로그램을 달리 운영하고 있다. 김포 어학당은 김포시 청소년재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이주 가정과 자녀를 대상으로 상호문화교류 프로그램인 ‘시소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같이 놀래?’, ‘같이 볼래?’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주민과 청소년들이 교류하도록 돕는다.
서초 어학당에서는 유학생을 중심으로 전문교육과 취업 관련 교육을 진행한다. 오는 27일에는 전북대학교에서 국내 기업 취업을 희망하는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유학생 맞춤형 비즈니스 한국어 특강’을 열 예정이다.
포천의 공장과 기숙사, 김포의 이주 가정, 서초의 유학생 교실은 교육 대상과 장소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생활 현장과 필요에 맞춰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17일 종강식에서 헉씨가 들려준 119 신고 경험은 그 의미를 잘 보여준다. 일터에서 배운 한국어가 동료의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데 사용됐다.
어학당의 올해 수업은 끝났지만 학습자들이 배운 한국어는 공장과 거리, 가정에서 계속 사용된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도 단지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동료와 이야기하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자신이 머무는 지역에서 이웃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