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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 Me’…손수건을 펼치는 순간, 나도 무대 위의 이방인이 되었다

10월 15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 2026 월드오케스트라페스티벌에서 ‘아트하우스 17(Ārt House 17)’의 공연을 보았다. 2부의 제목은 ‘Remember Me’였다.

이 음악극은 아드리안 슈바르츠슈타인(Adrian Schvarzstein), 미하엘 헬(Michael Hell), 토마스 회프트(Thomas Höft)가 공동 작업한 ‘Musica Fugit’의 핵심을 추린 작품이다. 고음악을 통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작은 2016년 쾰른 고음악 페스티벌과 2017년 위트레흐트 고음악 페스티벌 등에서 공연되었다.

무대는 1920년대 폴란드의 비아위스토크(Białystok)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들은 박해와 불안 속에서 고향을 떠나 남미와 팔레스타인 등 낯선 땅으로 향했다. 그들 가운데는 훗날 유럽을 휩쓴 홀로코스트를 피할 수 있었던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살아남았다는 결과만으로 그 여정을 설명할 수는 없다. 고향과 이웃, 익숙한 언어와 일상을 뒤로하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삶에도 역사의 기록이 미처 담지 못한 슬픔이 있었을 것이다.

무대에는 열한 명의 챔버오케스트라 단원과 두 명의 성악가, 세 명의 연출가가 등장한다. 모두 외투를 입고 모자를 썼으며 여행 가방을 들고 있었다. 한 명씩, 두 명씩 무대에 들어온 이들은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존 다울랜드의 「Now, O Now I Needs Must Part」와 「Come Again」, 로베르트 슈톨츠의 「Frag nicht, warum ich gehe」, 헨델의 「The Trumpet Shall Sound」 등이 이어졌다.

그러나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에도 연극은 멈추지 않았다. 연주에 참여하지 않는 단원들은 낡은 사각 가방에서 사진을 꺼냈다. 아이들의 사진, 가족사진, 결혼 5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도 있었다. 그들은 사진을 바라보며 눈물을 지었다. 빨랫줄을 걸고 집게로 사진을 하나씩 매달았다. 확대된 사진이 무대 뒤 화면에 비쳤다. 관객은 그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을 함께 바라보았다.

가방에서는 또 다른 물건이 나왔다. 손수건에 싼 빵이었다.

한 사람이 손수건을 펼쳐 빵을 꺼내자 이웃이 자기 손수건을 펼쳐 빵을 받아 나누어 먹었다. 타악기를 연주하던 여성도 빵을 들고 무대 건너편의 성악가에게 다가갔다. 성악가 역시 손수건을 펼쳐 빵을 받아 조금 먹고는 다시 손수건을 접었다.

나는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펼쳤다.

배우는 나를 보지 못했다. 보았더라도 내 손수건에 빵을 나누어 주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 나도 손수건을 펼치고 싶었다. 무대 위의 사람들이 빵을 나누고 있었고, 객석의 나도 그 나눔에 참여하고 싶었던 것이다.

연극과 현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다. 배우와 관객은 그 경계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나 손수건 하나를 펼치는 순간, 그 경계는 잠시 의미를 잃었다.

무대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났다. 가방 하나가 열리고 편지가 배달되었다. 편지를 펼쳐 본 부부는 도장이 찍힌 증명서를 확인하고 기뻐했다. 입국 허가를 알리는 서류였을까. 그들은 외투를 다시 입고 가방을 들었다. 서로 팔짱을 낀 채 무대 밖으로 사라졌다.

연주를 마친 사람들도 하나씩, 둘씩 외투를 입고 가방을 들고 퇴장했다. 마지막에는 오르간 연주자만 남았다. 오르간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마침내 불이 꺼졌고, 그도 사라졌다.

나는 “브라비!”를 외치며 박수를 쳤다.

연주자들이 다시 무대에 나왔다. 이번에는 바리톤 가수가 우리말로 「고향의 봄」을 불렀다. 2절에서는 관객에게 함께 부르라는 손짓을 했다. 나도 조용히 따라 불렀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객석에 앉아 있던 나도 어느새 그들과 하나가 된 듯했다.

고향을 떠나온 이들의 이야기를 보던 내가 어느 순간 내 고향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오래전 보았던 영화 「애수(Waterloo Bridge)」가 떠올랐다.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언 리가 촛불 아래에서 춤을 추던 장면이다. 「Auld Lang Syne」이 흐르는 동안 악단원들은 연주를 마칠 때마다 자기 앞의 촛불을 하나씩 끈다. 마침내 무대가 어둠에 잠기고 음악도 끝난다. 두 사람의 춤과 이별의 정서를 음악과 빛의 소멸로 표현한 장면이었다.

대구에서 본 음악극에서도 사람들은 음악을 마칠 때마다 하나씩 사라졌다. 외투를 입고 가방을 들고 무대를 떠나는 모습은 공연의 끝을 알리는 동시에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을 보여주는 듯했다. 마지막 오르간 소리마저 사라진 뒤에는 그들이 떠난 자리만 남았다.

사람은 떠나고 음악은 끝난다. 사진 속 얼굴들을 기억하는 이들도 언젠가는 줄어들 것이다. 그렇지만 누군가 사진을 꺼내어 바라보고, 누군가 그 이름을 불러 주고, 누군가 그들의 노래를 다시 부른다면 완전한 소멸은 조금 미뤄질 수 있을 것이다.

Remember Me. 나를 기억해 주세요.

그 말은 무대 위에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관객에게만 건네는 부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낡은 가방에 사진을 넣어 간직한 사람, 손수건에 싼 빵을 이웃과 나눈 사람, 입국 허가를 받고 팔짱을 낀 채 떠난 부부에게도 그 말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이야기를 잠시 바라보고 손수건을 펼쳤던 우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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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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