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오랫동안 기도를 배웠다. 많이 기도하면 능력이 생기고, 오래 기도하면 응답이 오고, 간절히 부르짖으면 하늘이 열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요한복음 15장의 말씀 앞에서 기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한복음 15:5)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은 오래 흔들렸기 때문이 아니라 나무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기도 역시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성삼위 하나님과 생명을 나누는 관계다.
창조주 하나님은 나를 그분의 형상으로 지으셨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로 끊어진 생명의 관계를 회복하셨으며, 성령은 오늘도 내 안에 거하신다. 함께하심, 언제나 함께하심. “With, Always With!” 이 고백이 기도의 시작이다.
내가 주님을 붙잡기 전에 주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고, 내가 주님을 찾기 전에 주님은 이미 나를 찾아오셨다. 그러므로 기도의 깊이는 시간의 길이만으로 측량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얼마나 알고, 그 말씀 안에 얼마나 거하며, 그 사랑을 얼마나 누리는가에 있다.
주님을 떠난 열심은 메마르고, 주님 없는 성공은 허무하다. 생명의 근원을 떠난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만들 수 없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한복음 15:4)
이 말씀 앞에서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내게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인가. 축복을 주시는 분인가. 아니면 생명을 걸어도 아깝지 않은 나의 주, 나의 그리스도이신가.
바울은 자신이 자랑하던 것들을 내려놓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하게 여겼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 자신의 생명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의 삶을 움직이는 중심에 복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복음화도 내 삶과 연결된 하나님의 언약으로 받아들일 때 달라진다. 먼 나라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이며 후대에게 전할 믿음의 유산이 된다. 그 출발은 내 곁의 한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상에 있다.
복음을 아는 데서 복음과 하나 되는 자리로, 기도를 하는 데서 기도를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늘의 힘은 내가 만들어 내는 에너지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이다.
주님은 요한복음 15장 7절에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삶을 기도와 연결하신다. 말씀 안에 머물수록 우리의 소망과 간구도 주님의 뜻을 향해 자라간다.
그러므로 가지는 먼저 생명의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 열매를 걱정하며 몸부림치기보다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 그때 기도는 호흡이 되고, 말씀은 생명이 되며, 작은 일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현장이 된다.
나는 가지다.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이며, 성령은 나의 힘이다. 세계복음화는 내가 붙들고 살아갈 언약이다. 오늘도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이 흐르기를 기도한다. 내 힘으로 열매를 만들어 내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주님 안에 거함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원한다.
관계가 회복되면 생명이 흐른다. 그 생명 안에서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누릴 때 우리의 삶은 땅끝을 향한 복음의 통로가 된다.
나는 참포도나무에 붙은 작은 가지다. 그러나 내 안에 흐르는 생명은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열매를 맺는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