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호국기념관에 들렀다. 전시실 한쪽에 낯익은 소총이 놓여 있었다. M1 개런드(Garand)였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그저 오래된 소총 한 자루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총을 실제로 들고, 쏘고, 분해하고, 다시 조립했다. 손으로 기억하는 총이다.
1976년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대학에는 교련이 있었다. 1학년 때부터 M1 소총을 다루었고, 1976년과 1977년에는 병영집체교육을 받으며 실제 사격도 했다. 의대 본과 1학년이던 1979년까지 교련 시간에는 M1을 들고 분해하고 조립했다.
M1은 무거웠다. 무게가 약 4.3kg이나 되는 소총이었다. 총의 크기도 컸고, 손에 잡히는 무게도 분명했다. 어린 대학생의 손에는 제법 버거운 물건이었다.
8발을 한 묶음으로 넣는 방식도 지금의 탄창식 소총과 달랐다. 당시에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가끔 친구들이 실탄을 장전하다가 엄지손가락을 다쳤다. 심한 손상이 아니어도 손톱 밑에 피가 고이면 며칠 동안 검붉게 변했다. 마치 매니큐어를 칠한 것 같았다. 훗날 미국에서는 이런 손상을 ‘Garand thumb’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이름보다 경험이 먼저였다.
총기 수입(手入)을 하다가 새끼손가락을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 마지막 단계에서 총구 안쪽을 확인하려고 손가락을 넣었다가 노리쇠가 전진하면서 손가락이 눌리는 것이다. 이때도 손톱 밑에 피가 고여 매니큐어를 칠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당시에는 군사훈련 중 생기는 작은 사고쯤으로 여겼다.
M1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군의 대표적인 소총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 미군정과 국방경비대를 거쳐 대한민국 국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미국의 무기 지원은 한국군의 무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M1 개런드와 M1 카빈(Carbine)은 한국군의 중요한 개인화기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무기는 계속 바뀌었다.
1970년대가 되면서 M16이 한국군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 역시 1983년 3사관학교에서 군의관 훈련을 받을 때에는 M1이 아니라 M16으로 사격했다.
M1의 8발 클립은 탈착식 탄창으로 바뀌었고, 총은 한결 가벼워졌다. M1의 4조 우선(右旋) 강선과 달리 M16은 6조 우선이었다. 내 손으로 느끼는 총의 시대가 달라지고 있었다.
대학생 때 M1을 들던 청년이 군의관이 되어 M16을 들었다. 몇 년 사이에 군용 소총의 세대교체를 직접 경험한 셈이다. 그 뒤 나는 군의관으로, 그리고 성형외과 의사로 오랫동안 군인의 손을 보게 되었다.
요즘도 손가락을 다쳐 병원에 오는 군인들은 적지 않다. 다만 손을 다치게 하는 원인은 예전과 달라졌다. 포병은 무거운 포탄을 나르다가 손가락을 다친다. 공병은 장비와 기계를 다루다가 다치고, 기갑부대에서는 차량과 포탑, 해치와 각종 장비 사이에서 손가락이 눌린다. 오히려 보병의 손가락 압궤손상은 상대적으로 적다. 개인화기가 그만큼 안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호국기념관에서 체험용으로 만든 M1 소총을 들어보니 너무 가벼웠다. 크기도 작게 느껴졌다. 관람객이 쉽게 다룰 수 있도록 만든 모형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내 손은 금방 알아차렸다. ‘이건 내가 알던 M1이 아니다.’ 나는 1976년의 M1을 기억한다. 무거웠다. 길었다. 어깨에 견착했을 때 총의 존재가 분명했다.
그 총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당시 젊은 대학생들에게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 군대의 역사와 한국전쟁의 기억, 냉전의 시대를 손으로 만지는 물건이었다.
얼마 전 연평도를 찾은 대통령이 K2 소총으로 영점사격을 해 모두 명중시킨 뒤 국방부 장관에게도 한번 쏴보라고 권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장관은 웃으며 자신은 ‘방위 출신’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나 역시 대학 시절 교련에서 총을 배웠고, 군의관이 되어 다시 총을 쐈다. M1에서 M16으로, 이제는 K2의 시대다.
어쩌면 장관이 쏘지 않은 것도 나름의 지혜였을지 모른다. 대통령이 방금 쏜 표적을 놓고 굳이 경쟁할 필요는 없으니까. 생각해보면 참 인간적인 장면이다.
총은 시대와 함께 변했다. M1에서 M16으로, 그리고 K2로. 무기는 점점 가벼워지고 정교해졌으며 안전해졌다.
그러나 군인의 손은 여전히 다친다. 예전에는 노리쇠가 손가락을 물었다면, 이제는 포탄과 기계, 장비가 손가락을 누른다. 무기가 바뀌어도 손은 여전히 가장 앞에서 위험을 만난다.
50년 전 내가 처음 M1을 잡았을 때는 그저 무거운 총이라고만 생각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 무게에는 총의 무게만 들어 있지 않았다.
그 시대의 무게, 군인의 무게, 그리고 한 사람의 젊음이 함께 들어 있었다. 호국기념관에 놓인 M1을 다시 바라본다. 사람들은 이제 화면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적을 맞힌다. 그러나 내 손은 아직도 그때의 무게를 기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