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 아시아엔 발행인은 10월 6일 영월 동네방네 기자단 특강 ‘내 삶을 다시 비추다’에서 참석자들과 옛사진을 보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녹취와 참석자가 준비한 회고글을 바탕으로 김남수 전 교장, 박봉주 대한노인회 영월군지회 수석부회장, 김흥식씨의 이야기를 전한다. 구술은 뜻을 살려 읽기 쉽게 다듬었다. <편집자>

“그렇게 결혼해서 지독하게도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박봉주(85) 대한노인회 영월군지회 수석부회장이 결혼사진을 설명하자 웃음이 터졌다. 사진 속 신부는 스무 살, 신랑은 스물두 살이었다. 두 사람은 어느덧 6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부부가 됐다. 10월 6일 영월 동네방네 기자단 특강 ‘내 삶을 다시 비추다’에서 박 부회장은 설명할 사진이 별로 없다고 먼저 말했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카메라가 없었다. 사진 찍는 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고명진 관장이 집을 찾아와 함께 사진을 찾아본 뒤에야 몇 장을 꺼낼 수 있었다.
첫 사진은 아버지 회갑 때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아버지는 자신보다 서른여섯 살 많다고 했다. 올해 여든다섯이라는 박 부회장은 “더하시면 계산이 나옵니다”라며 청중에게 산수를 맡겼다. 몇 마디 만에 자리가 한결 편안해졌다.

다음은 결혼사진이었다. 박 부회장은 1963년 1월 군에 입대했고, 그해 11월 첫 휴가를 나왔다. 그런데 집에서는 뜻밖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님이 결혼을 권한 것이다. 군복을 입고 집을 떠났던 청년은 첫 휴가 중 신랑이 됐다.
사진 속 얼굴이 부어 있는 데도 사연이 있었다. 그는 당시 군에서 늘 배가 고팠다고 회상했다. 훈련 중 산딸기를 따 먹은 뒤 밤새 설사를 했고, 몸이 지친 상태에서 휴가를 나왔다. 집에 돌아오자 결혼 이야기가 나왔고 열까지 났다고 했다. 그때의 고단함이 결혼사진에 남았다.
진행을 맡은 필자가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해도 괜찮겠냐”며 “오늘 저녁에는 아들 집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하자 박 부회장도 웃으며 말을 받았다. 오래된 사진 한 장이 군 생활과 혼사 이야기를 불러내고, 다시 오늘의 부부 이야기로 이어졌다.
웃음 뒤에 그는 자신의 삶에 다섯 가지 행운이 있었다고 했다.
첫 번째는 부모였다. 자신을 낳아주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 누리는 모든 일의 시작에 부모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두 번째는 아내였다. 조금 전까지 “지독하게도” 함께 살았다고 농담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우리 집사람을 만난 게 두 번째 행운입니다. 재산이 많지는 않아도 잘 살아왔어요.”
세 번째는 아들 둘과 딸 둘이었다. 자녀들이 크게 속을 썩이지 않고 자라준 것이 고마웠다.
네 번째는 건강이다. 지금도 자신의 두 발로 걸어 사람을 만나고 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꼽았다.
마지막은 자기 형편 안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큰 재산을 모았다는 자랑이 아니었다. 남에게 돈을 빌리지 않고 자신이 쓸 것을 마련할 수 있다는 데 만족했다.
박 부회장이 꼽은 행운은 멀리 있지 않았다. 부모와 아내, 자녀와 건강, 오늘의 생활이었다. 사진이 몇 장 없다고 했지만 그 안에서 꺼낸 이야기는 넉넉했다.
이날 박 부회장과 아내는 다시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첫 결혼사진을 남겼던 젊은 부부가 백발이 되어 카메라 앞에 섰다. 두 사람 사이에는 60여 년의 생활이 쌓여 있었다.
“지독하게도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웃음을 불렀던 말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다르게 들렸다. 아내를 인생의 행운으로 꼽은 남편이, 오래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 건네는 익숙하고도 다정한 농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