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람

아흔여섯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며…다시 떠올린 ‘노래당’

필자 황건 교수의 모친 김경선 여사

6년 전 이맘때, 어머니를 모시고 화성행궁에 간 적이 있다. 당시 어머니는 아흔이었다. 아내와 딸아이도 함께한 나들이였다. 봉수당에 차려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진찬상을 한참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음식의 모양과 높이까지 살펴보셨다. 한옥의 구조와 주련도 눈여겨보셨다.

나는 그곳에서 노래당(老來堂)을 보았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으로 행차해 봉수당에서 잔치를 열었던 이야기를 읽었다. 노래당에는 정조가 왕위를 물려준 뒤 화성에서 노년을 보내려 했던 뜻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이름에서 효자 노래자(老萊子)를 떠올렸다. 노래자는 나이 칠십이 넘어서도 색동옷을 입고 부모 앞에서 춤을 추며 즐겁게 해드렸다고 한다. 그날 나는 글의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다가오는 어머니 생신에는 이왕이면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부릴 수 있는 장소로 골라야겠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며칠 있으면 어머니는 만 아흔여섯이 되신다.

얼마 전 아내와 북경에 다녀왔다. 나흘 동안 요양보호사와 딸이 어머니를 돌봐드렸다. 여행 중 경산공원에 올라 자금성을 내려다보았는데, 그곳에서 가이드가 건륭제와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건륭제는 어머니 숭경황태후에게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생전에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금으로 만든 탑에 봉안했다고 했다. 나는 그 금탑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귀국한 지 며칠 뒤, 날이 좋아 어머니를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 특별히 갈 곳이나 살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날씨가 더 추워지면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나가기도 어려울 것 같아 바람이라도 쐬어드리고 싶었다.

롯데몰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편하게 입으실 만한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다. 허리 부분이 잘 늘어나는 바지도 하나 골랐다. 어머니가 입으시면 좋겠다 싶어 두 벌을 샀다.

6년 전에는 딸이 할머니를 부축해 화성행궁의 난로문(難老門)을 나왔다. 이번에는 내가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었다. 정조는 어머니를 모시고 화성으로 길을 나섰고, 건륭제는 어머니가 남긴 머리카락을 금탑에 모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예순여덟의 아들로서 아흔여섯을 앞둔 어머니의 휠체어를 민다.

황제도 왕도 아닌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소박하다. 날이 좋으면 바람을 쐬어드리고, 편하게 입으실 옷을 골라드리는 일이다. 6년 전에는 색동옷을 입고 부모 앞에서 춤추던 노래자를 생각했다. 이번에는 색동옷 대신 어머니가 편하게 입으실 원피스와 바지를 골랐다.

노래당에 다시 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번에도 어머니와 노래당에 다녀온 셈이다. 예순여덟의 나는 이제 어머니에게 노래자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경선(96)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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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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