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군의 날 아침이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의 헌신을 생각한다. 전방의 경계초소와 바다 위 함정, 하늘과 후방의 각 부대에서 오늘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있다.
나는 우리 삶의 기초를 지탱하는 직업 가운데 선생님과 의료진, 군인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우리의 미래를 준비한다. 의료진은 건강과 생명을 지킨다. 군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지킨다.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일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일상의 터전을 지키는 일이다. 국민이 평안히 쉴 수 있도록 자기 자리를 지키고, 위험한 순간에는 앞으로 나서야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현대사에는 군을 바라보는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기억이 있다. 군 출신 대통령들의 장기 집권과 권위주의 통치, 군의 정치 개입이 남긴 상처다. 그 역사는 분명하게 평가하고 잘못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 책임을 오늘 전후방에서 복무하는 장병들에게까지 씌울 수는 없다.
의무복무로 입대한 청년도, 군을 평생의 직업으로 선택한 간부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집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 자녀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부모, 배우자의 근무지를 따라 생활의 터전을 옮기는 가족,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견디는 아이들이 있다. 군인을 존중한다는 말에는 그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도 포함되어야 한다.
나는 1993년 초 문민정부 출범부터 1994년 6월 말까지 약 17개월간 국방부를 출입했다. 하나회 숙정과 군 인사, 율곡사업 비리 수사로 군이 크게 흔들리던 때였다. 당시 취재 경험은 훗날 <일요신문> 연재와 김성걸 기자와 함께 쓴 <신한국군 리포트>로 이어졌다. 특히 학연과 지연, 정치권에 줄을 대는 인사 관행을 지적했다. 장병들의 사기를 좌우하는 지휘관을 어떤 기준으로 뽑느냐는 문제였다.
그 시절 군을 취재하며 내게 깊이 남은 말이 있다. “강장 밑에 약졸 없고, 약장 밑에 강졸 없다.” 여기서 강장이란 목소리가 크거나 부하를 거칠게 몰아붙이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임무를 정확히 이해하고, 부하를 살피며,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는 지휘관이다.
반대로 자신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여기는 지휘관도 있다. 전임자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앞서 쌓아놓은 경험과 체계를 밀어낸다. 조직은 지휘관이 바뀔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출발할 수 없다. 잘한 것은 이어받고 부족한 것은 보완해야 한다. 전임자의 공을 인정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지휘관의 능력이다.
군인에게 삶과 죽음은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다. 임무에 따라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지휘관의 판단은 부하의 생명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군인의 사생관은 투철해야 한다. 동시에 부하의 생명을 함부로 쓰지 않겠다는 책임감도 그만큼 투철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기억하는 일에도 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찾고,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며, 다친 이들의 치료와 이후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국가는 위험한 임무를 요구한 만큼 그 결과에 대해서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군을 존중하는 문화와 군을 제대로 감시하는 태도는 함께 가야 한다. 잘못을 조사하고 책임을 묻는 일이 군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책임을 분명히 가리는 것은 성실하게 복무하는 다수의 장병을 보호하고 군의 신뢰를 지키는 데도 필요하다. 정치권 역시 군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 군이 헌법에 따라 국민을 지키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 문민통제의 책임이다.
평화를 지키려면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을 기르는 일과 외교를 통해 갈등을 줄이는 일은 함께 가야 한다. K-방산의 성과를 말할 때도 수출액과 기술력뿐 아니라 장비를 운용하는 장병의 안전과 국민과 국가를 지킨다는 본래의 목적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군과 인연이 닿은 사람이 많다. 자신이 복무했거나 자녀와 형제, 배우자가 군에 있다. 군인의 수고는 우리 가족과 이웃의 일이기도 하다.
오늘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전후방에서 복무하는 장병들에게,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이들에게,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기억하는 가족들에게.
그 박수가 하루의 행사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군인은 존중받고, 지휘관은 부하를 책임지며, 국가는 헌신한 사람을 끝까지 기억하는 나라. 국군의 날 아침, 내가 바라는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