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을 찾았다. 예약을 하지 않아 학예사의 해설을 들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얼마 전 유엔기념공원을 다녀와 쓴 글을 보여드렸다. 글 속에 내가 1977년 대학생이었다는 대목을 읽은 학예사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선생님보다 두 살 아래예요.”
짧은 인사였지만, 곧 이어진 설명은 내게 처음 듣는 역사의 한 장면을 선물했다. 1950년 9월 1일부터 15일까지 북한군은 남아 있던 13개 사단을 모두 투입해 대구, 영천, 경주, 창녕, 마산을 향한 이른바 9월 공세를 감행했다. 그 중에서도 영천이 돌파될 위기에 놓이자 미국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비상계획을 검토했다.
미 합동참모본부가 승인한 계획의 이름은 ‘New Korea Plan(신한국 건설계획)’. 만일 부산 교두보가 무너지면 대한민국 정부와 군대, 그리고 약 62만 명을 미국령 사모아로 이주시켜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운다는 계획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만약 영천이 무너졌다면 우리는 공산 치하에서 살았을 수도 있다. 운이 좋았다면 노아의 방주처럼 사모아에서 망명정부를 세우고, 오늘날의 대만처럼 언젠가 본토 수복을 꿈꾸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그렇게 한 도시, 한 고개, 한 전투에서 갈리기도 한다.

며칠 전 분당에서 부산으로 내려오며 낙동강을 건널 때였다. 나는 일행에게 “이 강이 없었다면 부산 교두보를 지키기는 훨씬 어려웠을 것입니다. 낙동강이 참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학예사는 내게 다시 물었다. “낙동강 발원지가 어디인지 아세요?” 모른다고 하자 그녀는 “강원도 태백입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언젠가 태백에 다시 가게 된다면 학도병기념관뿐 아니라 낙동강의 발원지도 꼭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강도 처음에는 이름 없는 작은 물줄기였을 것이다. 문득 만해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가 떠올랐다.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강에도 발원지가 있듯,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역사에도 보이지 않는 발원지가 있다. 영천의 방어선도, 낙동강도, 그리고 이름 없는 병사들의 희생도 모두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발원지였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Plan B는 결코 비겁함이 아니다. 외과의사가 수술 전 최악의 합병증을 준비하듯, 국가는 패배의 가능성까지 준비해야 한다.
위나라 무제 조조는 말했다. “치세에 살더라도 난세를 대비하라.” 다행히 ‘신한국 건설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영원히 접혀 있는 한 장의 계획서로 남았다. 그러나 그 계획서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말해 준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가 끝내 지켜낸 낙동강 방어선 위에 세워진 역사라는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