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도자전’ 연파 신현철의 작품세계···’혼’과 ‘기’의 결정체

초벌 달항아리를 점검하고 있는 연파 신현철 작가
연파 신현철 초대전 ‘달항아리 도자展’이 2일 서울 종로구 운니동 장은선갤러리에서 막을 올려 17일까지 계속된다. 장작가마에서 구워지는 달항아리는 자연의 빛을 띠고 있다. 연파(連波) 신현철(申鉉哲) 작가는 독창적이고 고전적인 조형미로 국내외 공감을 아우르는 작품을 만드는 도예가다. 신현철 작가의 달항아리는 전통적이면서도 독특한 그만의 작품세계를 표현하고 있으며, 한국적인 토양에서만 생산될 수 있는 그런 특질의 강한 성격을 지닌 도예를 추구한다. <아시아엔>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연파 도예가의 예술세계를 살펴본다. <편집자> 
명장의 미소

신현철 작가의 도자의 재료는 유약도 천연재료만 쓰고 귀한 재료로 남들이 쓰지 않는 재료인 육송유약을 사용하는 등 자신의 혼을 불어넣어 작품을 만든다. 자신의 작품을 한마디로 ‘예술에 대한 정신과 혼’이라고 표현하는 신현철은 작품에 ‘혼’과 함께 ‘한국적 문화’를 작품에 담아 대중에게 전달하려 한다. 그는 박물관을 찾아다니고 고증과 검증을 거쳐 3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끝에 지금의 달항아리를 만들었다.


달을 응용해서 만드는 작가의 작품세계에는 ‘나라’와 ‘역사’의 의미가 담겨있다.

찬란했던 과거의 도예작품들을 현재에 구현해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연파 신현철은 자부심과 역사를 이어간다는 사명감으로 작품에 몰입하고 있다. 작업을 할 때 무념무상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는 그는 작품에 기(氣)를 불어넣어 비로소 기의 결정체가 바로 작품이 된다.

신현철 도예가의 달항아리를 삼성미술관 리움의 전 관장 홍나희 여사가 소장하여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2일 종로구 운니동 장은선갤러리에서 막을 올린 전시회 첫날 연파 신현철 선생(왼쪽 세번째)와 부인 박수인씨가 박경식 한백문화재연구원 이사장(단국대 사학과 명예교수, 맨왼쪽) 등 관람객들과 나란히 서있다. 

이번 전시에는 장작가마에서 나온 달항아리 작품 15점과 흑유항아리 그리고 다완도 여러 점 장은선갤러리에서 선보인다.

2022 대한민국 문화경영대상을 수상하는 등 중국 국립다엽박물관 초대전, 일본 가와무라기념미술관에 도자기 전시로는 최초로 초대받았다. 그는 중국 의홍 국제도예전에서 한국인으로서 1등을 수상하였다. 미국, 일본, 중국, 핀란드 등 해외에서도 수많은 전시와 수상을 하였다. 도예 공모전 심사위원, 명인 선정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연파 신현철 작가의 섬세한 손놀림


신현철 ‘보석을 만드는 손’

연파는 한국의 차인들에게 흔히 ‘보석을 만드는 손’으로 불린다. 여러 종류의 다구(茶具)와 달항아리를 비롯하여 그가 만든 작품들은 확실히 누구나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선미(禪味)를 찾던 수련생 시절

연파는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옛날 청자에 물을 담아두면 썩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옛날 도자기를 처음 만났다. 대구에서 열린 고미술품 전시회장에서였다. 주최측의 배려로 그날 고려백자에 살짝 입술을 대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부드럽고 따뜻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자신이 평생 매진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흙을 고르는 연파 신현철 작가 

이후 신현철은 윤광조 선생을 찾아가 본격적으로 도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만 1년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흙을 밟고 민 후에야 물레에 앉을 수 있었다. 이후 2년을 더 도자 수업에 매달렸다. 윤광조 선생은 월요일마다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며 이를 따라하게 했는데, 한번도 그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전체를 직접 보여주지 않았다. 혼자 분석하고 연구하고 깨우치도록 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자정까지 <육조단경> 등 불조(佛祖)에 관한 책을 많이 읽게 했다. 연파가 불교의 상징인 연꽃과 관련된 다구를 여러 종 창안하고, 작품을 만들 때마다 선미(禪味)를 우선하게 된 것은 모두 이 시절 공부의 영향이다.

연잎다기


‘연잎 다기 세트’와 신현철의 등장

신현철이 도자기 수업에 몰두하던 1980년대 중반은 한국에서 막 다도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역시 선방의 스님들이 있었는데, 바랑에서 커다란 일본식 다관을 꺼내어 작설차를 우려 들곤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스님들의 바랑에 들어가기 딱 알맞은 크기에, 한국적 아름다움을 담은 새로운 다기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왕실요의 고장인 경기도 광주에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도예작업을 시작했다. ‘불교’, ‘차’, ‘선’(禪), ‘스님의 바랑’, ‘전통’, ‘창작’ 등의 화두(話頭)를 들고 새로운 작품 구상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봉은사 연못가에 앉아 있다가 연잎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우치게 되었고, 거기서 새로운 작품의 모티프 하나를 발견한다. 이후 3년의 연구, 실패와 성공이 교차하는 다양한 시험을 통해 완성된 것이 ‘연잎 다기 세트’다. 차 전문지인 <다담>(茶談)지 1987년 11월호에 이 작품이 표지사진으로 소개되었다.

달항아리를 보듬는 연파 신현철 작가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그를 찾았다. 그만큼 당시 한국의 차인들은 새롭고 한국적인 다구, 전통과 현대가 하나로 어우러진 다구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열렬한 반응은 국내에서만 일었던 게 아니다. 이 새롭고 독창적이며 아름답고 실용적인 다기는 일본과 중국에서도 크게 호평을 받았다. 1988년 인사동에서 열린 개인전 때 일본의 차인들에게 처음 소개되어 인기를 끌었다. 이어 2001년에는 중국 의흥에서 열린 국제도예전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이후 그의 작품은 중국의 4대 차박물관에 소장되었으며, 2008년에는 중국 사천성에 있는 중국관에 중국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의 작품이 최초로 소장되는 영광을 누렸다.

연꽃다관 


‘연지’와 한국 차문화의 부흥

그렇게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 신현철은 이후에도 쉬지 않고 매년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작품들은 기존에 존재하던 작품에서 변형되고 발전한 것이 아니다. 아예 세상에 없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연잎 다기 세트’도 그렇지만, ‘연지’(蓮池) 역시 마찬가지다.

연지에 연꽃을 얹은 모양새. 작가의 특허품이다.

연지는 ‘연꽃이 핀 못’이라는 뜻으로, 신현철이 처음 만들고 이름을 붙였다. 신현철 이전에는 세상에 아예 없던 다구다. 연꽃으로 연차를 할 수 있게 만든 이 다구는 1993년 처음 선을 보였고, 이후 대중적인 차 행사가 열리는 곳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베스트셀러 다구가 되었다. 특히 무더운 여름철 열리는 차 행사에 제격이고, 행사의 멋과 품위 자체를 높여주기 때문에 이제는 외국에서까지 인기를 얻고 있다.

신현철은 연지를 활용하여 많은 대중을 동시에 접대하는 다법(茶法)도 개발하여 보급했다. 차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1990년대 중반의 일이고, 연지를 활용한 대중적 찻자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국 전통 차문화의 멋과 아름다움을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실물 사례가 되었다. 이로써 한국 차문화의 부흥도 한결 빠르게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참새다기


‘참새 다관’과 ‘연밥 찻상’

신현철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대담한 창의성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그가 만든 ‘참새 다관’은 아이디어 자체의 참신함에 미적 아름다움과 실용성까지 더해진 경우다. “작설차(雀舌茶)를 마시다가 떠오른 아이디어를 형상화했다”는 ‘참새 다관’은 1987년 첫 작품이 나왔고, 이후 국내외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이것은 특히 중국 의흥의 ‘자사호박물관’에 소장, 전시되었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복제품이 나도는 등 작가의 입장에서 큰 아픔을 경험한 작품이기도 했다.

‘연밥 찻상’ 역시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논하기 전에 그 아이디어 자체의 탁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역시 전에는 세상에 없던 그릇이다. 1988년 연구를 시작해 5년 후인 1993년에야 완성작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만큼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각종 실험과 연구를 거쳐 완성된 지난한 노력의 산물이다. 한국 전통의 좌식문화 대신 입식문화가 보편화되는 추세에 맞추어 개발함으로써 역시 한국 차문화의 확산에 크게 기여한 작품이다.

가마의 상태를 살피는 연파 신현철 도예가


파격적인 창의성과 섬세한 기술의 조화

신현철은 작은 다기 하나도 의미 없이 만들지 않는다. 창의성이 부족하다거나 기능이 떨어지는 작품은 아예 찾을 수 없다. 여기에 아름다움까지 겸비했으니 그의 다기가 전문가들로부터 더욱 큰 찬사를 받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연꽃 다기 세트’와 ‘무궁화 다기 세트’를 보면 신현철의 섬세함과 끈기가 얼마나 집요한지 알 수 있다. 또 실제로 이들 다기를 직접 써보면 그가 작품의 예술성에 더하여 그 기능성에 대해서도 얼마나 고심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꽃잎 하나하나를 수도하는 마음으로 붙이고, 예술성 위에 기능성까지 완벽하게 살려 놓았다. 조형미가 돋보이는 ‘참새 다관’은 색상이 실제 참새 깃털의 색상과 닮아있고, 물대 끝은 참새 부리의 미묘함까지 그대로 표현하고 있을 정도다.

무궁화다기 


정화와 탈속을 꿈꾸는 도예 명장

도예가 신현철은 도(道)를 닦는 심정으로 찻그릇을 만든다. 다기를 비롯한 도자는 흙과 불의 조화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예술혼이 빚어낸 살아있는 결정체인 것이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는 하루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헛되이 보내지 않고 오늘도 혼신의 힘을 다한다.

신현철은 2013년 9월, ‘경기도 광주 왕실도자기 명장’으로 지정되면서 그간의 노력과 공로에 대해 국가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하여 의흥(중국)의 자사호박물관, 샌프란시스코(미국)의 자연사박물관 등 세계 각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연파 신현철 작가 주요 전시회

△한·일 도자문화교류 400년전(1997 후쿠오카) △가와무라 기념미술관 개인 초대전(1999 일본 지바현) △한·중 다구도예 명품전(2001 중국 상해) △의흥 국제도예전 1등상 수상(2001 중국 의흥) △한·중 미술도예 국제교류전(2006 부산시립미술관) △국립문학박물관 초대전(2007 핀란드) △디자인박물관 차도구초대전(2008 핀란드) △명인도예 연파 신현철 초대전(2013 KNN방송국 월석아트홀) △제12회 대한민국 도예공모전 심사위원)(2015) △국립 항주다엽박물관 초대 개인전(2018 중국 항주)

연파 신현철 도예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한국) | 국립국악원 (한국) | 샌프란시스코 자연사 박물관 (미국) | 지바현 가와무라미술관 (일본) | 산동성 치박시 중국 도자박물관 (중국) | 항주 다엽 박물관 (중국) | 의흥 자사호 박물관 (중국) | 서안 법무사 박물관 (중국) | 사천성 세계 차 박물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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