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서 베어 문 사과 한 입의 깨달음 ‘비건라이프’

“You eat the yellowtail, I’ma eat the plant based. (넌 물고기를 먹고, 난 야채를 먹지) Got a new attitude, gotta stay elevated”(삶의 방식을 바꿀거야. 계속 유지할거야) – Black Eyed Peas ‘Vibration’ (2018.10)

블랙아이드피스(Black Eyed Peas)는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에서 8개 부문에서 수상한 힙합그룹이다. 이 곡은 “You eat the yellowtail, I’ma eat the plant based” 가사에서 알 수 있듯, 플렉스(Flex, 돈을 쓰며 과시하다)를 중시하는 일반적인 힙합의 작법과는 거리가 있다. 블랙아이드피스의 리더 Will.i.am (William James Adam)는 채식주의자가 되고 나서의 기분을 노래로 표현했다. 뮤직비디오 속 그는 편한 옷에 사과를 입에 물고 거리를 거닌다. 이 노래를 통해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인지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된다. 비건 라이프스타일은 이처럼 유명 뮤지션, 할리우드 스타들 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유행에 민감한 한국에서도 비거니즘(Veganism)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채식연합(KVU)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채식 인구는 약 150만명, 비건(완전 채식주의자) 인구는 50만명으로 추산되며, 채식인구의 경우 2008년 15만명에서 2018년 150만명으로 10배 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MZ세대(1980년대 초 ~ 2000년대 초 출생자)가 환경 보호와 윤리적 소비에 관심을 두면서 가치관에 맞는 제품을 선택해 소비하는 ‘가치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로 정착했고, 그 중 하나가 비거니즘이다.

Vegetable Oil Painting = Unsplash

비거니즘은 동물 착취와 학대를 최대한 배제하고 동물과 인간, 환경이 공존할 수 있는 대안을 추구하는 철학이자 삶의 방식이다. 현대인들은 윤리, 환경, 그리고 건강 등 다양한 이유로 비거니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 그동안 일부 식음료에 한정됐던 비건 관련 산업도 패션, 뷰티, 생활용품을 비롯해 제조업까지 확대되며, 비건에 경제(economics)를 합친 ‘비거노믹스’라는 비즈니스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아시아엔>은 산업의 카테고리로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비거니즘과 우리 삶에서 접할 수 있는 비거니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한다.

비건이라 포기했던 맥주와 와인이…

이전까진 식물성 고기 등의 가공제품군이 비건 식품시장의 주류였으나, 주류·음료 시장에서도 비건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맥주는 곡물 맥아, 와인은 포도를 발효해 만들기 때문에 비건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조 과정에서 동물성 성분이 부자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비건이라서 맥주와 와인을 포기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비건 인증을 받은 주류들이 출시되고 있으며, 관련 제품을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Barnivore: your vegan wine, beer, and liquor guide)도 있다.

비건 주류 검색 사이트 Barnivore

이처럼 비건을 위한 식음료 제품들은 현재 다양한 유통망을 통해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채식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유통업계에서도 채식주의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마트’는 전국 21개 매장에 냉장식품 코너에 ‘채식주의 존’을 마련했다. ‘배달의 민족’은 고객들이 채식메뉴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자사 앱에 채식 전용 카테고리를 신설했다. ‘GS25’ ‘CU’ 등 편의점들도 비건 인증 받은 재료를 활용해 만든 비건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Bompas & Parr가 기획한 자연친화적인 공간

동화가 아닌 현실세계에서 마주하는 친환경 공간

자동차의 버섯 시트 위에 올라타 퇴근하고 파인애플 침대 위에서 메밀 이불을 덮으면서 하루의 피로를 달랜다?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자동차는 버섯 등을 활용한 식물성 인조가죽 등의 내장재를 탑재한 제품을 출시했다. 친환경 디자인이 가미된 공간도 소비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작품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아닌, 음식 디자인 그룹 봄파스&파르(Bompas& Parr)가 기획했다. 이들은 “비건 인테리어는 편의와 아름다움, 환경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며 비거니즘이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도 차용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가죽, 실크, 모피 대신 친환경 소재로 이루어진 자연 친화적인 공간은 동화가 아닌 현실세계에서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다.

윤스테이 방송 캡쳐 <사진=tvN>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비거니즘

앞서 살펴봤듯, 비건 시장은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제품 너머의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비건 인구 역시 더욱 증가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비거니즘을 접하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최근 종영된 tvN ‘윤스테이’는 한옥스테이를 테마로 외국인들이 한국 전통의 의식주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 중 눈길을 끈 것은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들이었다. 한국은 비건에 그리 친절하진 않은 관광지였기에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윤스테이’가 제공한 채식 메뉴는 국내에서 채식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볼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다.

물론 채식을 통한 건강한 삶이 채식주의자만의 것은 아니다. MBC ‘나혼자산다’에 출연한 배우 곽도원은 제주도에서 직접 채집한 나물로 차린 자연주의 밥상을 소개했다. 채식주의자가 아닐지라도 건강한 식단을 챙기는 모습은 현대인들 사이에선 익숙한 풍경이다.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소셜미디어에서 #비건, #채식 등의 관련 키워드로 검색하면 80만건 이상의 이색적인 비건 음식들을 구경할 수 있다. 이는 비거니즘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고 있다는 반증이다.

현실 가능한 범위에서 모든 형태의 동물 착취를 지양하는 삶

‘비건’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만든 영국의 왓슨 부부(Donald and Dorothy Watson)는 ‘비거니즘’에 대해 ‘최대한 현실 가능한 범위에서 모든 형태의 동물 착취를 지양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철학을 갖고 학생들에게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가르치는 학교도 있다.

MUSE school 프로그램

미국의 뮤즈 스쿨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건학이념 하에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 칼라바사스(Calabasas) 지역에 설립된 사립학교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씨앗에서 식탁으로’(Seed to table)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200여 종의 식물을 직접 키우고 수확하며 채식 위주의 식사를 즐긴다. 뮤즈 스쿨은 또한 ‘노 플라스틱’(No plastic) 등의 친환경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하게 행동하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지닐 수 있도록 육성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체득한 가치관과 철학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고스란히 이어질 것이다.

21세기 현대인은 가득 찬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위적인 무언가를 덜어내고 자연과 공존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비거니즘 라이프스타일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서두에 소개했던 뮤직비디오 ‘Vibration’ 속 윌아이엠이 자연을 거닐며 베어 문 사과가 유독 맛있어 보인다. 흔히 볼 수 있는 과일 중 하나인 사과(沙果)지만, 적을 ‘사’에 아름다울 ‘과’를 더한 사과(些姱)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면 덜어내는 아름다움 또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Black Eyed Peas ‘Vibration’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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