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이회영과 ‘가문의 영광’ 그리고 ‘빼앗긴 들에도’ 시인 이상화

영화 가문의 영광 포스터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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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을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접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시인, 이상화의 형수이자 조종사였던 권기옥, 이상화의 형으로 독립투사 이상정(왼쪽부터)

이상화(李相和)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전문이다. 1926년 <개벽>(開闢) 6월호에 발표할 당시 시인은 만 26살에 불과했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일제 침략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시로 꼽힌다. 이 시를 실은 잡지 <개벽>은 이 시를 실었다가 문을 닫게 되었다. 1901년 대구에서 출생한 이상화는 대구 교남학교 교사로 있을 당시 “나라 뺏긴 민족은 힘이라도 세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권투를 가르쳤다고 한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동시에 맞는 해. 이 시가 세상에 나온 것은 일제의 강압통치가 극에 달하던 때로 시인을 비롯한 선조들이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그의 시 한편에 2000만 조선민중은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깨닫고, 동시에 온몸으로 저항할 각오를 다졌다.

이 시는 해방 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젊은 피를 들끓게 했다. 조국과 민족을 품에 안고,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청년기에 누구나 한번쯤 읽었을 이 시를 2019년 한 여름에 다시 읽어본다.

100년 전, 누구는 글로, 누구는 망명으로, 그리고 누구는 삶의 터전에서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을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터다. 시인 이상화는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그리며 조국 광복을 시로 그려냈다. 이상화의 형은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한 이상정 장군이다. 이 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첫연 첫행의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구절이 아닌가 싶다. 일제하의 민족적 울분과 저항을 노래한 몇 안 되는 시다.

 10년 전 <경주이씨 중앙화수회 60년사>란 책 편집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상화가 우당 이회영과 같은 집안이란 걸 알았다. 당시 ‘가문을 빛낸 인물’ 편에 고려시대 익재 이제현을 필두로 이항복, 이완, 이존오, 이극정, 이회영, 이상설, 이상정, 이상화 등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이 가운데 이회영(위 사진) 이시영 가문은 우리나라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모델이라는 데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어느 가문이라고 비난받거나 칭송받는 후손은 나오기 마련이다. 한때 <가문의 영광>이란 영화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조폭 가정에 시집 간 검사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룬 말 그대로 오락영화다. 시리즈로 3번까지 나온 걸로 보면 그리 만만한 영화는 아닐 것이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가문’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가문(家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 집안 좋아. 형은 판사고, 동생은 의사고···” “둘째는 MIT에서 박사 하고 지금 대학교수라던데. 아버지는 전에 장관 지내신 누구래. 사촌은 청와대 있다 3선 국회의원이래.”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런 가문이면 더 좋지 않을까? “형은 판사 하다 나와서 변호사 하는데 얼마나 똑 부러지게 사건처리를 잘 하는지 의뢰인들이 줄을 선데요.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한다지. 동생은 지금 어디 무의촌 섬에서 의사를 한대요.” “둘째는 MIT에서 박사 하고 지금 최고 과학자 중 한명이라죠. 아버지는 전에 장관 지내신 누구인데, 기억나나요? 지금도 그분이 장관 때 세운 정책들이 정부 내 모델이 되고 있다잖아요. 사촌은 청와대 있다 3선 국회의원인데, 그렇게 겸손할 수가 없어요.”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다시 떠올린다. 일제 압제 치하 한 아들은 독립군(이상정)으로 다른 아들은 시인(이상화)으로 조국에 바친 그 가문이 진짜 ‘영광스런 가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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