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그룹 반세기 발자취 2] 가장 큰 박수 받을 때 떠난 김재철 회장
동원그룹이 4월 16일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동원리더스아카데미’에서 창립 50주년을 맞이해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선 1969년 원양어선 1척을 보유한 작은 수산회사에서 수산?식품?패키징?물류 등 식품 중심의 4대 사업 영역을 축으로 하는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으로 자라난 그룹사를 되짚어 보는 한편, 반세기 동안 지금의 동원그룹을 만들어온 주역 김재철 회장의 퇴진 선언도 있었다. ‘아시아엔’은 동원그룹의 반세기 발자취와 ‘가장 큰 박수를 받을 때 떠난’ 김재철 회장을 2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
[아시아엔=이주형 기자] 동원그룹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동원그룹의 김재철(85) 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했다. 1969년 동원산업을 창업하고 회사를 이끌어 온지 50년 만의 일이다.
김 회장은 4월 16일 오전 경기 이천의 ‘동원리더스아카데미’에서 열린 ‘동원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여러분의 역량을 믿고 회장에서 물러서서 활약상을 지켜보며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의 퇴진 선언은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오랫동안 고민하다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창업 세대로서 소임을 다했고, 후배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물러서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평소 “기업은 환경적응업이다”라는 소신을 밝히며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온 김 회장은 동원의 변화와 혁신을 새로운 세대가 이끌어야 한다고 판단했기에 퇴진을 결심할 수 있었다.
회장에서 물러난 후 김 회장은 그룹 경영과 관련해 필요한 경우에만 그간 쌓아온 경륜을 살려 조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재계 원로로서 한국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방안도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김 회장은 “그간 하지 못했던 일,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일도 해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 퇴진하더라도 동원그룹 경영은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지주회사인 엔터프라이즈가 그룹 의 전략과 방향을 잡고 각 계열사는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독립경영을 하는 기존 경영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체제 관련해서도 차남인 김남정 부회장이 중심이 돼 경영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도경영 추구해온 재계의 신사
한국의 최초 원양어선 ‘지남호’의 유일한 실습항해사였던 한 청년은 약 3년 만에 한국의 최연소 선장이 되었고, 약 50년 후 그는 세계 수산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를 이끌게 됐다. 성공신화의 주인공은 동원그룹의 창업주 김재철 회장이다.
그는 원칙을 철저히 하며 정도경영을 추구한 기업인이었기에 ‘재계의 신사’라고도 불린다. 김 회장이 50년 전 창업 당시 직접 만든 사시에도 나와있듯, ‘성실한 기업활동으로 사회정의의 실현’은 그가 50년동안 지켜온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였다. 김 회장은 ‘기업인이라면 흑자경영을 통해 국가에 세금을 내고 고용창출로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기업인의 성실과 책임을 강조해 왔다. 김 회장은 이를 지키기 위해 1984년 기업 공채를 도입한 이후 한 해도 쉬지 않고 채용을 실시해왔다. 1998년의 IMF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도 그의 신념을 꺾진 못했다.
김재철 회장의 정도경영 원칙을 잘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는 ‘1991년 증여세 최대금액 자진납부’다. 김 회장은 1991년 장남 김남구 부회장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62억 3,800만원의 증여세를 자진 납부했다. 당시 국세청이 ‘세무조사로 추징하지 않고 자진 신고한 증여세로는 김재철의 62억 원이 사상 처음’이라고 언론에 밝히며 주요신문들에서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김 회장의 정도경영과 원칙은 자녀교육에도 마찬가지였다. 김 회장은 두 아들이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1주일에 적어도 한 권의 책을 읽고 A4 4~5장 분량의 독후감을 쓰도록 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통찰력이 생기고, 잘못된 정보에 속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어릴적부터 경영수업을 시킨 것이다. 장남인 김남구 부회장의 경우, 대학을 마치자 북태평양 명태잡이 어선을 약 6개월 정도 탄 적이 있다. 또 차남인 김남정 부회장은 입사 후 창원의 참치캔 제조공장에서 생산직과 청량리지역 영업사원 등 가장 바쁜 현장부터 경험시켰다. 두 아들 모두 현장을 두루 경험한 후 11년이 넘어 임원으로 승진했다. 경영자가 현장을 모르면 안되며, 경험을 해봐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마음과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김재철 회장은 동원그룹의 50주년을 기념하는 가장 기쁜 순간, 생에 가장 어려웠을 결정을 내리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동원의 창업정신은 ‘성실한 기업 활동으로 사회정의의 실현’이었고, 기업 비전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회필요기업’이다. 앞으로도 이 다짐을 잊지 말고 정도(正道)로 가는 것이 승자의 길이라는 것을 늘 유념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선 창업주가 명예롭게 자진 퇴진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큰 박수를 받을 때 떠나는 김재철 회장, 그의 뒷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