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 수교 60년①] 태국군 6·25참전···하늘 위 ‘백의의 천사’ 맹활약

태국 공군 수송부대가 제374비행전대에 도착한 뒤 촬영한 사진.

2018년은 한국과 태국이 수교를 맺은 지 60주년 되는 해다. 태국은 6·25전쟁 중 군대를 파견해 대한민국을 지켜준 나라다. 1970년 12월 태국은 직전 1966년 대회에 이어 아시안게임을 다시 개최했다. 애초 한국에서 치르기로 결정됐으나 한국의 경제력이 이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우방, 태국 군대의 어제와 오늘을 <공군>지가 찾아갔다. <아시아엔>은 <공군>의 협조로 이를 독자들께 소개한다. (편집자)

[아시아엔=이준건 공군중위] 1951년 6월 13일, 태국 공군은 C-47 수송기 3대를 미 제315공수비행단 제374비행전대 제21비행대대에 배속하면서 6·25전쟁에 참전한다. 6월 18일 돈 무앙(Don Muang) 공항에서 페라못 푸티판(Peramote Puthipan) 소령(당시 계급)의 지휘 하에 4,000마일(약 6,500km)에 이르는 기나긴 한국행을 시작한다.

 

한-일 간 공수 경로. 태국 공군은 주로 다치카와 기지에 주둔했으며, 한국에서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은 일본 후쿠오카로 후송됐다.

<UN공군사>에서는 태국 공군 수송부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이 부대들은 특별 공중임무 및 전방의 거친 비행장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빈번한 이동을 하였다. 예를 들어 1951년 중 제21공수대대는 이타즈케, 다치카와, 대구, 김포, 그리고 아시야 기지를 전전하면서 작전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전쟁 기간 총 400소티 출격, 1,043명의 병력 수송, 360명의 환자 후송, 157,500파운드의 인원과 물자 공수라는 전과를 올렸다.

그렇다면 태국 공군 수송부대는 어떻게 놀라운 활약을 할 수 있었을까? 해답은 태국 공군의 수송기, C-47에 있다. 태국 공군이 참전한 1951년 무렵에 지상군은 소강국면에 접어든 상태였으나, 격렬한 지상전투가 벌어진 곳에는 어김없이 긴급한 후송 작전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미 공군이 보유한 C-47 수송기에는 병상 또는 의료설비가 없었고, 후송작전에 주로 이용되었던 C-54 수송기는 대형기였기 때문에 활주로가 짧은 한국 내 비행장에서 운용에 어려움이 많았다. 따라서 소형이며 의료설비가 구비된 태국 수송기들이 긴급후송임무를 전담하게 된 것이다.

한편, 태국 공군은 의료부대도 파견했다. 이들의 임무는 공중수송 중 부상자를 돌보며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었다. 공군의료부대는 트라쿤 타원왯 소령을 포함한 의사 3명과 간호사 3명으로 구성됐으며, 도쿄의 UN병원과 미국의 MATS 비행부대에서 환자의 치료 임무를 맡았다.

“2년간 어떠한 항공기도 사고를 당하지 않았던 그들의 인상적인 비행기록은 그들의 성공을 증명해주는 증명서였다.” <6·25전쟁 UN공군의 전투수송작전사>에서 태국 공군을 묘사한 문장이다. 그들은 전쟁 기간 천사처럼 자애롭고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자신들의 수송임무를 완수했다.

 

태국 공군의 물자 수송 장면을 촬영한 사진.

 

태국 공군은 의료부대 또한 파견했다. 사진은 공중수송 중 환자치료에 관해 교육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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