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게임 결산①] 금메달·총순위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의대 교수, 뉴패러다이머]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4개로?5위를 차지했으나?1966년 태국 아시안게임에서는 일본에 이어 태국을 물리치고?2위에 올랐다.?이에 힘입어?1970년 아시안게임을 서울에 유치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세계최빈국 처지는 벗어났지만 아직도 북한에 비해 경제력이 열세인 상황이었다.?경기장을 지을만한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아시안게임을 반납해서 태국에서?1970년?2번 연속 아시안게임이 열리기고 했다.?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이다.?이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도 베트남이 경제적 이유로 반납하는 바람에 자카르타에서 다시 열리게 되었다.

필자는 아시안게임 축구?8강전과?4강전이 열릴 때 일본에 있었다.?한국에서는?3개의 공중파?TV?방송국이 모두 한국의 경기를 중계했다.?하지만 일본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어떤 방송국에서도 일본의?8강과?4강전은 중계하지 않았다. NHK에서 이번 대회에서 일본이 강점을 보인 육상만을 중계하고 있었다.

이번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금메달과 총 메달순위에 밀려서?3위에 그쳤다.?처음에는 아시안게임에서 태국을 이기는 것이 목표였고,?북한이 참가한 후에는 북한을 이기는 것이 목표였으며,?중국이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후에는 일본을 이기는 것이 목표였다.?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목표했던?2위를 달성하지 못하고?3위를 차지했다.?아시안게임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일본은 오랜만에?2위를 차지하였다.

한국은?2위를 일본에 뺏긴 걸 매우 아쉬워 했지만 일본은 어떤 메달 목표도 없었다. 더욱이 한국과 경쟁하는 마음도 없었다.?단지?2020년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결과는 한국은 일본에 금메달과 총 메달에서 뒤졌다.?일본은 중국에 밀리던 육상과 수영에서 강세를 보이면서 한국을 가볍게 누르고?2위를 차지하였으며 도쿄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이번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주목 받은 경기는 남자축구와 남자야구였다.?두 경기 모두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대한민국 남성으로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병역문제가 걸려있어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야구의 경우 기량이 별로 뛰어나지 않아 보이는 몇 선수가 대표팀에 포함되어 논란이 되었다. 축구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의 병역문제가 걸려있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손흥민의 경우 고등학교 재학 중 독일로 축구 유학을 갔기 때문에 만약 우승하지 못할 경우 상무팀에서 선수생활을 하지 못하고 축구경력이?2년간 완전히 중단될 수밖에 없다.?물론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손흥민의 경우는?1000억원 이상의 몸값이 예상되는 ‘월드 클라스’의 선수이기 때문에 군 문제는 모두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은 축구·야구에서 모두 최고의 선수들을 선발했다.?축구의 경우 올림픽과 같이?23세 이하의 선수를 주축으로 손흥민,?황의조,?조현우 세명의 와일드카드 선수를 선발해 최고의 진영을 만들었다.?하지만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에 뛸 수 있는 21세 이하의 선수로 팀을 구성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말레이시아에 일격을 당해서 국민의 비난을 잠시 받았지만, 16강전에서 강호 이란을?2대0으로 이기고, 8강에서는 한국과 함께 대회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우즈베키스탄에게 힘들게 연장전까지 치르며?4대3으로 역전승했다. 준결승전에서 이번 대회 돌풍을 일으킨 베트남을?3대1로 이긴 데 이어?결승에서는 비록 격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숙명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을 연장전에서 힘들게 이겨 우승을 차지했다.

선발과정에서 논란이 있던 황의조는 바레인과 첫 경기부터 대활약을 해 논란을 종식시켰을 뿐 아니라 기대하는 스트라이커로 등극한 셈이다.?나이가 차서 이번 대회가 마지막 기회인 손흥민,?황의조,?조현우뿐 아니라, 22세의 황희찬, 20세인 이승우를 비롯해 많은 젊은 선수들이 병역면제를 받았다.?기분 좋은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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