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농부칼럼]개인 투자자는 대주주를 믿지 못한다
기업이 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자리가 늘어야 소비가 살아난다. 기업이 장사를 잘하고 국민 개개인의 소득이 늘어나면 세수도 증가한다. 그러면 복지, 문화, 의료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더 많은 예산을 집행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경기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그림이다. 경제라는 생물이 이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 보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여기에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국민 개개인이 기대할 수 있는 소득은 노동소득뿐이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삼성전자는 자기자본이 1.1배 증가하면서 주가는 2.08배 상승했다. 현대자동차는 자기자본이 1.13배 증가했고 주가는 5.2배 상승했다. 네이버는 자기자본 1.6배 증가에 주가는 5.2배 상승했다. 이 기간 동안 해당 기업에서 일하면서 연봉이 주가만큼 상승한 노동자는 없을 것 같다. 물론 기업의 가치가 상승하는 비율로 연봉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 대한 논의는 많지만 그에 비해 ‘서민들이 투자하기 좋은 나라’에 대한 논의는 적다는 것이다. 기업이 잘되고 일자리가 늘어나면 국민 개개인의 소득도 늘어난다. 그러나 그 소득의 증가율이 기업의 성장률에 비해 턱없이 낮다면 우리 국민들은 기업의 성장, 크게는 국가 경제의 성장에서 소외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2000~2010년, 기업의 소득증가율은 16.5%였다. 반면 가계소득은 2.3%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꾸준히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그 성장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주식소유현황을 보면 외국인이 32.4%, 일반법인 24.5%, 기관투자자 15.8%, 개인은 24.0%로 나타난다.(2012년말 기준) 개인이 차지하고 있는 24% 중 대주주의 지분을 제외한 일반 투자자들의 비율은 10%정도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 주요기업의 실질적인 주인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삼성전자의 49.66%, 현대차의 45.15%, 네이버의 57.82%를 외국인들이 소유하고 있다.(2013년말 기준)
우리나라 국민들은 왜 우리 기업들을 외면하고 있을까? 혹은 왜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을까? 그 원인 중 한 가지는 가계자산의 대부분이 단기유동자금과 부동산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투자할 자금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주식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더 ‘정직하게’ 돌아간다면 더 많은 국민들이 기업에 투자를 할 것이라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주식투자를 통해 손실을 봤다. 또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모은 돈을 날리는 이웃을 보았다. 뇌동매매, 정보매매, 투기적 매매 등 개인투자자들의 잘못된 투자 행태가 손실의 주된 원인이긴 하다. 그러나 잘못된 투자문화의 원인을 오로지 개인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 왜 이런 투자문화가 뿌리내렸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개인투자자들은 기업을 믿지 못한다. 정확히는 대주주에 대한 신뢰가 없다. 소액투자자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대주주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막대한 유보금을 쌓아두면서 배당은 하지 않고 온갖 방법으로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자신의 몫으로 챙기는 대주주가 적지 않다. 사외이사, 감사 등의 제도가 있지만 대주주가 선임한 그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리 없다. 그러다보니 기업의 성장을 보면서 장기적인 투자를 하기보다 단기적인 매매로 시세차익만을 노리는 투자문화가 성행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나 자본시장을 통해 부자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믿으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기업투자를 통해 기업의 성과를 공유하면서 행복한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이는 국가 경제의 차원에서 봐도 긍정적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한 나라의 경제가 외국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한시라도 빨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은 자본시장을 통해 사업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고 서민은 기업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다. 짧은 글에서 개선이 필요한 모든 제도를 말할 수 없다. 여기서는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그러면서 개선이 시급한 제도 몇 가지만 다루겠다.
첫째는 배당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우리나라 기업들의 평균 시가 배당수익률은 1.0%로 영국(3.5%), 프랑스(3.2%), 독일, 캐나다(이상 2.9%), 미국(1.9%), 일본(1.7%) 등과 큰 차이를 보였다. 심지어 중국(3.1%), 대만(2.8%), 인도(1.4%)보다도 낮다. 배당수익률은 투자를 했을 때 얼마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배당수익률이 낮다면 투자자들이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시세차익밖에 없다. 주식투자를 기업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매매 게임으로 인식하게 하는 요인이다.
해결책은 있다. 미국, 일본, 대만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적정유보초과세를 도입하면 된다. 적정유보초과세란 기업이 필요 이상의 돈을 쌓아두고 있을 때 여기에 법인세를 추가하여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대주주들은 배당으로 인한 소득세를 내지 않기 위해 쥐꼬리 배당을 하곤 한다. 배당이 없어도 충분히 호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으므로 굳이 배당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애꿎은 투자자들만 골탕을 먹는다.
둘째, 소액주주의 참여와 권리를 높여야 한다.
기업의 경영은 주주들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주주만의 이익에 복무할 때가 많다. 불법이 아닌 한 소액주주들은 주주총회에서 항의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으려면 소액주주들의 참여와 권한을 높여야 하는데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가 그 대안이다. 집중투표제는 도입된 지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100대 기업 중 단 4곳만이 시행하고 있다. 강제규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자투표제 역시 2009년에 도입되었지만 상장기업 중 45개만이 시행하고 있다. 주주는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의 권리를 행사할 통로가 없다. 권력이 어느 한 쪽에 집중되어 있을 때 신뢰는 설 자리가 없다. 견제와 감시를 위한 제도는 의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뢰하기 위한 제도라는 점이 중요하다.
셋째, 상속이나 증여를 할 때 시가평가제를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 상속증여세법(이하 상증법)은 “상속 및 증여재산은 상속을 개시한 때의 시가에 따라 평가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일견 당연해 보이나 커다란 허점이 있다. 현행 제도에서 대주주는 얼마든지 주가를 조정할 수 있다. ‘합법적인 경영’을 통해 이익을 줄일 수도 있고 배당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주가는 낮아진다. 기업의 실제 가치보다 한참 낮게 형성된 주가를 기준으로 상속을 하게 되면 막대한 상속세를 아낄 수 있다. ‘절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을 실행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는 개인의 도덕심에 맡겨 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상증세의 과표기준인 주가(시가)평가제를 바꿔야 한다. 예들 들어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 이하인 회사의 경우, 시가총액이 순자산가액보다 낮으면 순자산가액을 과세표준으로 삼자는 것이다. 그래야 적어도 회사의 가치가 순자산가액 이상이 돼 어느 정도 주가가 정상화되지 않겠는가. 또한 상증세 과표의 현실화로 세입이 증가하게 되면 최근의 부족한 재정수지 개선에도 일조를 할 것이다.
넷째, 장기투자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주식투자자의 단기투자 현상은 심각하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주식 보유기간이 수일에서 수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6개월 이상 수년을 보유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손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배당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을 포함해 3년 이상 주식 장기보유자에게 배당 소득세를 감면해준다면 기업의 성장을 보고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날 것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금이 주식시장에 투입된다면 자본시장도 튼튼해진다.
간접 펀드시장을 키우기 위한 세제지원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간접 투자비중이 많게는 50%P에서 적게는 25%P 가량 낮다. 개인성향이 강한 탓도 있지만 간접시장을 키우기 위한 정부정책도 미진했다. 간접투자 시장의 강점은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소규모 완전개방 시장은 국제 외환거래 움직임에 따라 충격이 클 수 있으므로 간접투자 시장 규모가 크면 클수록 좋다. 정부도 고민이 많겠지만 전향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제안들은 대주주보다는 투자자들에게 유리한 제도다. 대주주가 이 글을 본다면 달갑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이러한 제도의 개선이 모두에게 좋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본시장은 기업이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창구다. 대주주에게만 좋은 자본시장이라면 투자자들은 자본시장을 떠날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이 돌지 않는다는 것은 재앙이다. 기업가는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사업을 일으키고 그 과실을 투자자들과 공유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 그래야 기업가에게도, 서민에게도 희망이 되는 자본시장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