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논란’ 드라마 2011 톱뉴스 선정
“슐레이만에 대한 모독” vs. “왕도 한 인간일 뿐”
터키 지한통신사(Cihan News Agency)는 2011년 주요 뉴스 중 하나로 ‘터키 사극?<Muhtesem Yuzyil(위대한 세기)>에 대한 논란 소식’을 선정했다. 황금 시간대에 방영된 이 드라마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도 시청자들의 항의와 고소부터 고위층의 우려 표명까지 이런 저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슐레이만 대제, 그리고 나중에 왕비에 오르는 한 노예 여성이 등장하는 이 드라마에는 대체 어떤 사연이 있던 걸까?
슐레이만 1세는 1520년에 즉위해 1566년 사망할 때까지 무려 46년 동안이나 오스만?제국을 가장 오래 통치한 술탄이면서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지도자이다. 일반적으로 슐레이만 대제(Suleiman the Magnificent)라고 불리며 터키에서는 특별히 ‘법을 만든 황제’라는 뜻의 ‘카누니(Kanuni)’라고도 부른다. 재임 기간 중 봉건제도를 완성하고 교육과 법 제도를 완비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세기’는 왕실 구성원들의 관계, 특히 왕궁 안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암투를 담았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가 “슐레이만 대제의 위업보다는?대제를 그저 쾌락이나 쫓는 인물로 잘못 묘사했다”며?분노했다. “슐레이만 대제는 유럽의 절반을 포함해 아프리카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대제국을 건설한 가장 위대한 술탄인데 드라마에서는 전쟁 장면이나 역사적 사건 같은 것은 없고 오로지 하렘에서 여자들에 둘러싸여 술이나 마시는 슐레이만 1세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과 극우주의자들은 터키에서 가장 큰 방송사인 Show TV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코란 구절을 암송하며 신은 위대하다(Allahu Akbar)를 외치고 길을 막아 선 뒤 방송국 건물에 계란을 던지는가 하면 방송국 광고 포스터를 찢고 광고에 나오는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 벌이겠다고 협박하는 등 과격한 시위가 이어졌다. 터키방송심의위원회는 드라마의 예고편이 방영된 뒤 25일 만에 7만 5000건의 고소장을 접수했다. 위원회가 9개월 동안 접수하는 고소장이 통상 6만 4000건인 데 비해 이?드라마가 얼마나 큰 논란을 일으켰는지를 알 수 있다.?
터키의 부총리인 Bulent Arinc는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욕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징벌이 있어야 한다” 며 방송 담당자를 협박하기도 했다. 집권여당의 원내 부대표인 Suat Kilic도 “600년 역사의 오스만 제국이 하렘 위에서 건설된 것이 아니다” 며 비판 여론을 거들었다. 국무총리인 Recep Tayyip Erdogan조차 드라마를 무례하다고 평하며 “우리의 과거를 무시하는 행위이자 우리의 역사를 잘못 조명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언급했다.?
한편 드라마를 집필한 메랄 오카이 작가는 로이터 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처음 드라마를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픽션일 뿐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신분이 높은 캐릭터건 낮은 캐릭터건 역사 속 인물들이 실제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각색한 것이다.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려움도 느끼고 분노도 느끼고 열정적인 사랑도 했던 인간이었다.”
터키 언론에 종교와 정치 관련 글을 자주 쓰는 칼럼니스트인 Mustafa Akyol 역시 드라마에 너무 흥분하는 것을 경계했다. “가장 큰 문제는 오스만 제국을 너무 이상화시키는 것이다. 오스만 제국이 이슬람 역사의 찬란한 부분인 것은 맞지만 그 시대 사람들 역시 죄도 짓고 유혹도 느꼈던 인간이다. 술을 즐겼던 오스만 제국 술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렘이라는 곳이 꼭 쾌락과 방탕의 장소는 아니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섹스가 전혀 없는 수도원도 아니었다.”
‘위대한 세기’ 드라마는 논란 중에서도 24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시즌 1을 작년에 무사히 마치고 현재 시즌 2를 방영 중이다. 드라마를 둘러싼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소동에도?‘위대한 세기’는 계속해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슬로바키아, 체코,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등에 수출됐다.????
이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