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의 방에서 만난 50년 선배, 외과의사가 발견한 뜻밖의 공통점

박물관이나 미술관, 기념관에 가면 인물이 생전에 사용하던 작업실이나 서재를 재현해 놓은 곳이 있다. 화가가 쓰던 붓, 문인의 펜, 과학자의 실험도구, 훈장과 육필 원고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육필 원고의 필체나 작은 삽화라도 들여다보고 있으면 고인의 곁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수년 전 런던 국립초상화갤러리에서 브론테 자매 특별전을 관람했을 때가 그랬다. 학창 시절의 노트와 그림을 보면서, 훗날 훌륭한 작품을 남긴 꿈 많고 주근깨가 있던 영국 소녀들이 흰 손으로 한 자씩 필기체 글자를 적어 나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며칠 전 해부학회 참석차 대구에 갔을 때였다. 학회 마지막 날 점심 무렵, 한 교수가 말했다. “요즘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겸재 정선 전시회가 열리니 들렀다 가세요.” 여러 해 전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특별전을 관람한 적이 있었다. 마곡동 겸재정선미술관의 초대 관장으로 일한 지인도 있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오후 2시에 시작하는 해설사의 설명을 30여 분 들었다. 그중 귀에 들어온 것은 ‘간송의 방’에 관한 이야기였다. 수집가가 혼자 머물며 일하던 공간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곳부터 찾아갔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방이었다.

입구에는 간송이 꼭 100년 전인 1926년 3월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제18회 졸업생이었고, 학창 시절에는 야구 선수이기도 했다. 나는 1976년 2월 같은 학교를 졸업한 제68회 졸업생이다. 간송은 나의 꼭 50년 선배였다. 학창 시절 기라성 같은 선배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들었던 희미한 기억도 되살아났다.
서재의 책꽂이에는 그가 수집한 고서와 옛 그림들이 화면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 눈길을 붙잡은 것은 유리판 아래 놓인 육필 기록이었다.
대학 노트에 세로로 줄을 그어 여러 칸을 만들었다. 맨 왼쪽에는 월일을, 오른쪽에는 구입 가격을 적었다. 가운데의 넓은 칸에는 구입한 골동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직접 그린 그림을 넣었다. 오늘날 엑셀이나 스프레드시트에 사진을 붙여 정리하는 방식과 비슷했다. 어느 해 12월 1일에는 화로와 도자기 병 등 일곱 점을 구입한 기록도 있었다.
물건의 이름과 가격만 적은 장부가 아니었다. 글로 설명하고 그림으로 형태를 남겼다. 작은 칸 안에 들어간 스케치들은 물건의 특징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섬세했다.

나는 그 기록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꼭 수술 후 환자가 수술실을 나가기 전에 작성하는 ‘간략수술보고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에는 수술실에서 전산으로 간략수술보고서와 수술기록지를 작성하고 수술 중 촬영한 사진도 첨부한다. 간략수술보고서가 작성되어야 수술 후 투약 등의 처방도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와 별도로 난도가 높은 수술을 마치면 연구실로 돌아와 작은 노트에 수술 과정을 다시 그려 보는 습관이 있다. ‘Op Record’라고 부르는 노트다. 수술을 재현하며 당시의 판단과 술기를 되짚어 본다. 일종의 반성문인 셈이다. 그림과 기록은 훗날 비슷한 수술을 앞두고 다시 펼쳐 보는 자료가 된다.
한국전쟁 당시 군의관 손정주가 남긴 수술기록지를 보고 감동하여 그에 관한 논문을 쓴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다른 시대에 살았던 의사가 남긴 기록을 통해 그가 마주했던 수술 현장을 상상하고, 기록이 오늘날에도 전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간송의 노트를 보면서는 또 다른 놀라움이 있었다. 그는 학창 시절 야구 선수였고, 1루수를 맡았다고 한다. 내야에서 날아오는 송구를 받아야 하는 1루수라면 공을 잘 잡는 손과 듬직한 체격이 먼저 떠오른다. 실제 간송의 풍채에서는 1루수였던 김응용 감독의 모습까지 겹쳐 보였다. 그런데 그런 체격의 선배가 좁은 노트의 칸마다 물건의 모양을 섬세하게 그려 넣었다니, 새삼 놀라웠다.
일반적으로 외과의사는 손이 작은 편이 유리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외과의사들이 서양인보다 손이 작아 섬세한 수술에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련 시절 한 교수님은 수술은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손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대상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능력일 것이다.
간송의 방에서 나는 50년 선배의 육필과 작은 그림들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문화재를 수집한 사람의 이름과 업적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날 내게 새롭게 다가온 것은 기록하는 사람의 손이었다. 야구부 1루수였던 선배가 골동품 하나하나의 형태를 살펴보고 글과 그림으로 남겨 놓은 흔적이었다.
그 방을 나설 때 나는 고등학교 50년 선배에게 한 수 배운 기분이었다. 나 역시 수술을 기록하고 그림으로 재현하지만, 다른 시대에 살았던 선배의 노트 앞에서 기록을 남기는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