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상기 칼럼] 김경문, 한화 떠나는 날…프로야구 통산 1078승과 ‘믿음의 야구’에 박수를

2025년 7월 20일 수원에서 KT전을 승리로 마친 김경문 한화 감독이 모자를 벗어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세 구단에서 감독 통산 1078승을 기록한 그는 2026년 10월 10일 한화와의 동행을 마쳤다. 사진 연합뉴스.

2025년 1월 3일 저녁, 김경문 감독에게 새해 인사를 보냈다. 하루하루 전날보다 조금이라도 전진하며, 검박하지만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내시길 응원한다고 썼다. 다른 사람의 가장 좋은 점을 발견하는 삶에 관한 구절도 덧붙였다. 이듬해 새해는 한화를 맡았던 첫해의 연말과는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 맞으시길 기원했다.

그날 밤 답장이 왔다. “새해는 한화 좀 더 높이 비상할 수 있도록 열심히 잘해보겠습니다.” 짧은 문장 끝에는 “김경문 배상”이 있었다.

그 약속은 그해 가을 상당 부분 현실이 됐다. 한화는 정규시즌 2위에 올랐고, 2006년 이후 1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우승까지 닿지는 못했지만, 오랫동안 기다린 팬들에게 다시 정상에 도전하는 기쁨을 안겼다.

2026년 10월 10일, 김경문 감독이 한화와의 동행을 마쳤다. 마지막 시즌의 성적은 9위였다. 손혁 단장도 함께 물러났다. 준우승의 이듬해에 받아든 성적표는 무거웠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마지막 한화 시즌을 보며, 그가 감독으로 걸어온 시간도 함께 돌아보고 싶었다.

김경문은 2004년 두산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2011년 6월까지 두산을 이끌었고, 그해 신생 NC의 초대 감독을 맡았다. NC가 퓨처스리그를 거쳐 2013년 1군에 들어온 뒤에는 2018년 6월까지 팀을 지휘했다. 2024년 6월 한화 사령탑으로 돌아와 올해까지 세 구단에서 17개 정규시즌을 보냈다. 이 가운데에는 시즌 도중 시작하거나 끝낸 해도 포함돼 있다.

정규시즌 통산 2075경기, 1078승 958패 39무. 지난해 8월 12일 롯데전에서는 김응용과 김성근에 이어 KBO 역대 세 번째로 감독 통산 1000승을 달성했다. 그날 그는 자신의 기록보다 순위 싸움과 남은 경기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코치와 현장 스태프, 끝까지 싸워준 선수들에게도 공을 돌렸다.

그의 한국시리즈 기록에는 다섯 번의 준우승이 있다. 두산에서 2005년과 2007년, 2008년, NC에서 2016년, 한화에서 2025년이다. 우승을 놓친 아쉬움과 함께, 서로 다른 세 구단을 모두 한국시리즈에 올린 성과가 그 기록에 담겨 있다.

우승은 프로 감독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마지막 승부를 넘지 못한 책임도 그의 경력에서 빼놓을 수 없다. 다만 다섯 번의 준우승을 읽을 때, 다섯 번이나 그 무대에 이르기까지 쌓은 승리와 선수들의 성장도 함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산 시절 김경문의 야구를 설명하는 말은 ‘화수분’이었다. 새로운 선수가 계속 나타나 주전으로 성장했다. 김현수, 손시헌, 이종욱, 고영민 등은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들이다. 김경문은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하고 신고선수로 입단한 김현수의 타격 가능성을 믿고 기회를 줬다.

선수를 발굴하는 일은 감독 한 사람의 공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스카우트와 코치, 구단의 지원이 있고, 무엇보다 선수 자신의 노력이 있다. 그 안에서 감독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은 출전 기회를 주고, 흔들리는 시기를 견딜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김경문은 그 일을 통해 자신의 야구를 만들었다.

두산은 그가 맡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일곱 시즌 가운데 여섯 시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한두 명의 스타에 기대는 팀을 넘어, 선수들이 자라며 경쟁력을 이어가는 팀을 만든 성과였다.

NC에서도 그의 안목은 드러났다. 투수로 입단한 나성범의 타자 전향을 이끌었고, 박민우에게 주전으로 성장할 기회를 줬다. 2013년 1군 첫 시즌을 9개 구단 중 7위로 마친 NC는 이듬해 정규시즌 3위로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정규시즌 2위에 올랐고, 2016년에는 창단 첫 한국시리즈를 치렀다.

두산에서 선수층을 두텁게 만드는 일이 중요했다면, NC에서는 새 팀의 경쟁력을 세우는 일이 중요했다. 한화에서는 오랫동안 쌓인 패배의 기억을 넘어 다시 상위권에 도전해야 했다. 조건은 달랐지만, 김경문은 세 팀에서 모두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결과를 남겼다.

2008년 8월 23일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에서 쿠바를 꺾고 금메달을 확정한 뒤 김경문 감독과 이승엽이 포옹하고 있다. 김 감독은 예선에서 부진했던 이승엽을 계속 기용했고, 이승엽은 준결승과 결승에서 홈런으로 화답했다.

그의 ‘믿음의 야구’가 가장 널리 기억되는 무대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다. 한국 대표팀은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땄다. 예선에서 부진했던 이승엽을 계속 기용했고, 이승엽은 일본과의 준결승, 쿠바와의 결승에서 홈런으로 응답했다.

그 믿음에는 위험도 있었다. 이승엽이 끝내 살아나지 못했다면 감독의 고집이라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선수에게 시간을 주는 결정에는 감독이 함께 져야 할 책임이 따른다. 베이징에서 김경문은 그 책임을 짊어지고 기다렸다.

류현진을 믿었던 장면도 있다. 캐나다전에서 한국은 1-0으로 앞선 9회 위기를 맞았다. 김경문은 투수를 바꾸지 않았고, 류현진은 완봉승으로 경기를 끝냈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그날의 류현진보다 더 자신 있게 막을 투수가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내가 읽은 그 판단은 막연한 낙관보다, 그날 마운드에 선 선수의 상태를 보고 내린 선택에 가까웠다.

베이징의 성공 이후에도 국가대표 감독으로 성과와 실패를 모두 경험했다. 2019년 프리미어12에서는 준우승했고, 2021년에 열린 도쿄올림픽에서는 4위로 메달을 얻지 못했다. 베이징의 금메달이 도쿄의 실패를 지워주지는 않는다. 선수 선발과 경기 운영을 둘러싼 비판 역시 그의 지도자 경력에 남아 있다.

믿음과 고집은 결과가 나온 뒤에야 뚜렷이 구별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도자에게는 ‘기다리는 지혜’와 함께 ‘판단을 고치는 용기’도 필요하다. 김경문이 남긴 성공과 실패는 그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하게 한다.

2024년 한화 취임 당시에도 그는 선수를 믿고 기회를 더 주며 기다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두산과 NC에서 해온 야구를 한화에서도 이어가겠다는 말이었다.

나는 야구 현장에서 그의 모든 결정을 지켜본 사람은 아니다. 그를 응원하는 마음과 감독의 경기 운영을 평가하는 일은 구별해야 한다. 다만 지난 두 해 주고받은 짧은 답장들에서 내가 느낀 그의 태도는 기록할 수 있다.

2025년 8월 13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김경문 감독 통산 1000승 기념촬영. 왼쪽부터 양상문 투수코치, 손혁 단장, 김경문 감독, 양승관 수석코치. 김 감독은 전날 롯데전에서 KBO 역대 세 번째 감독 통산 1000승을 달성했다. 사진 한화 이글스 제공

2025년 5월, 한화가 연승을 이어갈 때 아자뉴스바이트에 실린 한화 소식을 보냈다. 그는 “열심히 선수들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팀이 잘나가는 때에도 선수들과 함께하겠다는 말이 먼저였다.

지난해 한국시리즈를 마친 뒤에는 수고 많으셨다는 인사와 함께 다음 해 우승을 응원했다. 올해 2월 설 인사에는 한국시리즈 우승, 팀워크, 팬들의 지지, 건강을 두루 기원했다. 그의 답은 “후회 없이 잘해보겠습니다”였다.

그때 나는 감독님의 경쾌하면서도 신실한 점이 좋고, 앞으로도 응원하겠다고 썼다. 내가 받은 답장들은 대체로 짧았다. 감사의 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 자신의 이름으로 맺는 인사였다. 그것만으로 한 사람의 리더십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에게 응원을 이어간 이유의 한 부분은 된다.

올해 한화의 부진에 팬들이 실망하고 감독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외국인 투수와 불펜의 부진 등 여러 사정이 있었더라도, 팀을 지휘한 감독은 성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9위라는 결과는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10월 10일 김경문은 팬들에게 좋은 경기와 승리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데 대해 사과했다. 팀을 더 단단하게 만들지 못한 아쉬움을 전했고, 함께한 선수와 스태프, 프런트에 감사했다.

그 말을 읽으며 생각했다. 떠나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는 미풍을 우리도 더 넓혀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성적에 대한 평가는 분명히 하면서도, 그가 남긴 기여에는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마지막 한 해의 성적이 한 지도자의 경력 전체를 덮는 평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김경문이 선수들에게 줬던 기회, 신생 NC가 빠르게 경쟁력을 갖추던 과정, 한화 팬들이 19년 만에 한국시리즈를 기다리던 가을도 우리의 야구 역사다.

팬들에게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깊다. 하지만 그가 한화를 떠난 지금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승을 향해 다시 일어섰던 시간과, 선수들과 함께 쌓은 1078승, 한국 야구에 남긴 베이징의 금메달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가 한화 감독으로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시간은 끝났다. 앞으로 어떤 자리에서 야구와 만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지금은 함께한 시간의 의미를 돌아보고,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새해는 한화 좀더 높이 비상할 수 있도록 열심히 잘해보겠습니다.” 지난해 첫 답장을 다시 읽는다. 한화는 그해 높이 날았고, 올해는 다시 어려움을 겪었다. 그 두 해를 함께 기억하며 나는 인사한다.

“김경문 감독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수들을 믿고 기다렸던 시간, 팬들에게 안겨준 기쁨을 기억하겠습니다. 떠나는 지금,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
AI 에이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