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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의 사람읽기] 김명자, AI가 지운 주름 너머…과학과 사람 사이를 잇다

‘이상기의 사람읽기’는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서 착안해 한 사람의 생애와 행적, 일상의 언어를 함께 살피는 연재다. 이번에는 교수, 환경부 장관, 국회의원을 지내고 과학기술계를 이끌어온 김명자 국민통합위원회 고문을 소개한다. 공개 인터뷰와 활동 기록, 필자가 직접 주고받은 메시지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편집자>

김명자 장관은 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썼다. “처음 버전을 다른 후배가 바꿔서 다섯 개를 더 보내줬더라고요. 그중 하나가 이런 제스츄어입니다. 희한한 세상입니다.”

AI가 지운 주름, 원로의 유머

지난 9월 25일 아침,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이 보내온 추석 카드에 나는 인사를 건넸다. “장관님 고운 모습 오래오래 지속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뒤 답이 왔다. “후배가 보내준 카드를 돌렸습니다. AI 덕분에 주름살이 싹 없어졌네요.ㅎㅎ”

그의 이력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짧은 답에서 뜻밖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과학자, 교수, 환경부 장관, 국회의원, 과학기술계 대표를 거친 원로가 자신의 사진을 두고 AI 덕에 주름살이 사라졌다며 웃는다. 새로운 기술은 이미 그의 일상에 들어와 있었다.

그로부터 약 2주 뒤인 10월 8일, 그는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했다. 제목에는 ‘AI가 IQ 맡는 시대’와 ‘인간다움’이라는 말이 나란히 놓여 있다. 사진 속 주름을 지우는 기술을 가볍게 즐기면서도, 그 기술이 인간과 사회를 어디로 데려갈지 묻는 사람. 내가 가까이서 읽어온 김명자의 한 모습이다.

화학에서 과학사로, 실험실에서 문명으로

김명자의 출발점은 화학이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숙명여대 등을 거쳐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관심은 화학의 지식과 실험실 밖으로 뻗어 있었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생각과 사회의 질서를 어떻게 바꾸는지 함께 살폈다. 그가 홍성욱과 번역한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그 관심을 보여준다. 과학의 역사를 새로운 발견이 차곡차곡 쌓이는 과정으로만 볼 수 있을까. 과학자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틀 자체가 바뀌는 순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김명자는 이런 질문을 한국 독자들에게 전해왔다.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도 그의 번역 활동에 포함된다.

숙명여대 화학과 교수 시절이던 1992년 MBC 인터뷰

이후 <산업혁명으로 세계사를 읽다>, <팬데믹과 문명>으로 이어진 저술에서도 기술과 인간 사회의 관계를 다뤘다. 최근 AI에 관한 발언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는 성능과 가능성을 살피고, 그 변화 속에서 사람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묻는다.

환경부 장관 3년 8개월, 갈등의 현장을 듣다

1999년 6월, 대학 교수였던 그는 환경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환경 행정은 개발 부처와의 협의, 지역 주민의 이해관계, 기업의 부담, 환경단체의 요구가 맞물리는 현장이었다.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과 그 근거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일이 함께 필요했다. 그의 재임은 2003년 2월까지 약 3년 8개월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 최장수 장관으로 기록됐다. 재임 기간만큼 눈여겨볼 것은 그 시간을 채운 방식이다. 2003년 동아일보 인터뷰에는 낙동강·금강·영산강 수계 특별법을 추진하는 과정이 나온다. 지역마다 다른 이해를 조정하기 위해 그는 현장을 돌며 300여 차례 간담회를 가졌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 수많은 대화가 들어 있었다.

환경부 장관 시절이던 2003년 1월 환경미화원 초청 오찬 간담회 자리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물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상류와 하류, 물을 이용하는 사람과 보호를 위해 부담을 지는 사람의 처지가 다르다. 장관이 해야 할 일은 그 차이를 확인하고 각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동강댐 건설계획의 백지화도 그의 재임 중 이뤄졌다. 환경 보전과 개발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정부의 판단으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당시 보도는 동강댐 문제와 물관리 대책 등을 그의 주요 업무로 평가했다.

그가 말하는 ‘경청’을 이런 경험과 함께 읽는다. 의견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데는 시간이 들고, 때로는 불편함도 따른다. 김명자는 행정의 현장에서 그 일을 반복했다. 그가 강조하는 공감과 관계의 힘에는 그런 시간이 담겨 있다.

그는 KAIST 이사장 이임 당시 이사회에서 “여러분의 과분한 덕담에 얼굴을 가릴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최우수 부처의 성과,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그의 재임 중 환경부는 법적 근거에 따른 정부부처 업무평가에서 2001년과 2002년 연속 최우수 부처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 글의 초고를 읽은 김명자는 당시 이임사를 떠올리며 내게 이렇게 전했다.
“굳이 덧붙이자면 법적 근거에 의한 정부부처 업무 평가에서 2001-2002년 연속 최우수 부처로 대통령 표창을 받게 해줘서 고맙다고 이임사에서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성과를 설명하면서 함께 일한 직원들에게 감사했던 일을 떠올렸다. 장관으로서 부처를 이끌었으나, 이임하는 자리에서는 그 표창을 받게 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 기억이 남아 있었다. 일의 결과는 평가 기록에 남는다. 그 결과를 누구의 공으로 기억하는지는 사람의 말에 남는다. 김명자의 회고에는 환경부의 성과와 그 성과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감사가 함께 있었다.

따뜻한 마음과 냉철한 이성, 국회로 넓힌 활동

경청을 중시했다고 해서 조직 운영의 기준까지 느슨했던 것은 아니다. 퇴임 직후 인터뷰에서 그는 인사의 기준으로 업무와 성과를 설명했고, 사람을 평가할 때 성실함과 정직함을 중시한다고 밝혔다. 당시 환경부 관계자들도 외부 청탁에 흔들리지 않는 인사 운영을 높이 평가했다. 그가 국회의원 시절 내걸었다는 ‘합리성과 감성의 거버넌스 리더십’은 이 두 측면을 함께 담는다. 근거를 따지고 일을 추진하는 능력, 상대의 처지와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함께 갖추려는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시절

2004년 제17대 국회에 들어간 그는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했다. 훗날 서울대총동창회 인터뷰에서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기대되는 분야를 넘어 활동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국방위원회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군인복지와 국방 연구개발, 병영문화 개선도 그의 의정활동에 포함됐다.

새로운 조직에 들어갈 때마다 그는 그 조직의 일을 배워야 했다. 대학의 연구와 교육, 행정부의 정책 집행, 국회의 입법은 서로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여러 자리를 거쳤다는 이력 뒤에는 그 차이에 적응하고 책임을 감당한 과정이 있다.

‘여성 최초’의 기록, 후배들에게 넓어진 길

김명자에게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러 번 붙었다. 2016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50년 역사상 첫 여성 회장으로 선출됐고, 2023년에는 KAIST 첫 여성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효성 이사회 의장 선임도 기업 이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넓힌 사례로 주목받았다. 이 기록들은 개인의 성취이자 후배들이 나아갈 길을 넓힌 발자취다. 그는 후배들에게 “어느 자리에 가든 그 일을 잘할 역량을 갖추라”고 당부한다. 자리에 오른 뒤 무엇을 해냈는가, 맡은 일을 위해 얼마나 준비했는가. 자신에게 물어온 질문을 후배들에게도 건네는 말이다.

KAIST 이사장 이임 당시 이사회에서 받은 덕담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과분한 덕담에 얼굴을 가릴 정도였고요.” 오랫동안 공적인 자리에 서온 사람도 동료들의 따뜻한 평가 앞에서는 쑥스러워했다. 그는 그날 받은 말을 ‘과분한 덕담’으로 기억했다.

카이스트 이사장 시절의 김명자 전 장관

“바르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일상의 언어에 담긴 태도

내가 그를 읽는 또 하나의 자료는 그와 주고받은 메시지다. 공식 연설과 인터뷰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태도가 짧은 답에 남아 있다. 2025년 7월 13일 생신 축하 인사를 보내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축하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주신 말씀 깊이 새기며 바르게 살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바르게 살도록’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이미 여러 분야에서 활동해온 원로였지만, 축하에 대한 답으로 앞으로의 노력을 말했다.
같은 날 나는 아시아엔 신드어판과 러시아어판 출범 소식을 전했다. 언어마다 다른 문장 배열과 운영상의 어려움, 해외 기자들과 서울 본부 동료들이 함께 준비해온 과정을 설명했다. “축하드립니다!” 답은 짧았지만, 함께 애쓴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격려였다.

2025년 가을, 아시아엔 창간 14주년을 앞두고 그는 축하와 함께 후원을 보탰다. 감사 인사를 전하자 “너무 약소합니다. ㅎㅎ”라고 답했다. 발행인으로서 그 마음이 고마웠고, 자신의 도움을 낮춰 말하는 겸손도 기억에 남았다. 그는 학술행사 안내와 강연 자료, 칼럼도 보내왔다. 2025년 12월에는 AI 거품론을 다룬 자신의 중앙시평을 공유했다. 생신과 명절 인사 사이로 과학과 사회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내게 그는 안부를 나누는 선배이자 새로운 문제를 함께 생각하게 하는 지식인이었다.

후배의 초청에 답하는 선배, 이어지는 인연

2026년 7월 생신 인사 끝에 나는 이런 부탁을 덧붙였다. “원로도 지식인도 존재하는지 사라졌는지 안타까운 대한민국, 선배님께서 소중한 역할 해주십시오. 응원하겠습니다.” 오랜 경험을 오늘의 문제를 푸는 데 보태주시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기술이 빠르게 바뀌고 사회적 갈등이 깊어질수록 다양한 조직과 갈등의 현장을 거친 사람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9월 27일에는 <왜 다시 아시아인가?> 북토크 초청 메시지를 보냈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한국에 온 언론인과 교수, 사업가,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그날 저녁 답이 왔다. “네 축하드립니다. 참석토록 하겠습니다.” 나는 “귀한 걸음 감사합니다. 한 말씀 청해 듣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9월 29일 프레스센터 북토크에 참석했다. 귀한 걸음을 해주셨는데도 말씀을 충분히 청해 듣지 못했다. 뒤늦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도 아쉽고 송구한 마음이 남았다.

오래 전 서울대 동창회 회의에서 만났던 기억도 떠오른다. 여러 자리에서 인연을 이어오는 동안 그는 후배의 일을 살피고 격려했다. 짧은 축하 인사에서도 그 마음이 자연스레 느껴진다.

AI 시대의 인간다움, 질문과 판단과 공감

최근 아시아경제 인터뷰에서 김명자는 AI 시대에 질문하고 판단하고 공감하고 협력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계산과 기억, 문제 풀이의 상당 부분을 기술이 수행하게 될수록 인간에게 요구되는 능력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교육에 관한 그의 말도 그 지점을 향한다. AI를 활용하는 방법과 함께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좋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검증하려면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 기술을 쓰는 능력과 판단의 토대를 함께 준비하자는 주문이다.

그가 세대 갈등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공감의 중요성이 나타난다. 전쟁과 산업화, 민주화를 거친 세대와 오늘의 청년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 가치관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청년의 취업과 주거, 결혼의 어려움을 마음 아파했다. 자신의 세대가 이룬 것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가 감당하는 문제를 살폈다.

김명자의 삶에는 과학을 공부하고 가르친 시간, 정책을 만들고 이해관계를 조정한 시간, 후배의 활동에 축하와 격려를 보낸 시간이 함께 있다. 그의 인간다움에 관한 질문을 읽을 때 나는 그 시간들을 떠올린다. AI가 주름살을 지웠다는 그의 농담을 다시 생각한다. 기술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호기심과 자기 모습을 두고 웃을 수 있는 여유가 그 짧은 문장에 들어 있었다. 생신 축하에 “바르게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한 마음도, 후배의 초청에 참석하겠다고 답한 마음도 함께 떠오른다.

김명자 장관이 2002년 2월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2002년도 환경부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 오른쪽 진념 경제부총리. 그는 환경부가 연속 최우수 부처로 선정됐을 때도 직원들에게 공을 돌리고 감사해 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남은 시간 더 귀하게 쓰겠습니다”

이 글의 초고를 보내자 김명자는 이렇게 답했다. “너무도 감동스러운 글입니다. 가슴이 뭉클하네요. 제가 이런 과분한 말씀을 들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깊이 새기면서 남은 시간 더 귀하게 쓰겠습니다.” 그는 이어 환경부 이임사와 KAIST 이임 당시의 기억을 덧붙였다. 환경부가 연속 최우수 부처로 선정됐을 때 직원들에게 감사했던 일, KAIST 이사회에서 동료들의 덕담을 듣고 얼굴을 가렸던 일이었다.

나는 그의 답을 읽으며 생신 때 받은 메시지를 다시 떠올렸다. “바르게 살도록” 노력하겠다는 말과 “남은 시간 더 귀하게 쓰겠다”는 말 사이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묻는 마음이 있었다. 긴 이력을 돌아보는 자리에서도 그의 시선은 앞으로 할 일에 닿아 있었다.

김명자…자리와 명성 너머의 사람

사람을 읽을 때 높은 자리와 오래된 명성만 살피면 그 사람을 다 알기 어렵다. 일을 맡았을 때 누구의 말을 들었는지, 성과를 거뒀을 때 누구에게 공을 돌렸는지, 칭찬을 받았을 때 무엇이라 답했는지도 살펴야 한다.
김명자는 장관으로 일하며 이해가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부처가 대통령 표창을 받자 이임사에서 직원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생신 축하에는 바르게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고, 자신의 생애를 돌아본 글에는 남은 시간을 더 귀하게 쓰겠다고 했다. 서로 다른 때에 나온 말들이 일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어진다.

과학을 공부한 그는 근거를 살폈고, 행정의 현장에서는 사람의 말을 들었다. 이제 AI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판단과 공감,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학자의 질문과 장관의 경험, 선배의 마음이 그의 말 안에 함께 있다.

나는 그에게 앞으로도 그 질문을 계속해주시길 청하고 싶다. 새로운 기술 앞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다른 세대의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AI가 지운 주름 너머에는, 그 질문을 오래 품어온 김명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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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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