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혀끝의 경계…언어는 다리인가, 칼인가

혀끝의 몇 음절이 생사를 가르던 거리. 관동대지진 당시 발음으로 조선인을 가려내려 했던 폭력을 형상화한 AI 삽화.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를 저지른다”는 유언비어가 삽시간에 퍼졌고, 자경단은 거리에서 사람들을 세워 신분을 확인했다.

그들이 사람을 가려내는 데 쓴 것은 발음이었다. 특정한 말을 따라 해보라는 것이었다.

“십오엔 오십센(十五円五十銭).”

지역과 기록에 따라 다른 말을 시켰다고도 전해진다. 혀끝에서 흘러나오는 몇 음절로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를 가려내려 했던 것이다. 발음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았고, 그 의심은 폭력과 살해로 이어졌다. 말은 더 이상 생각을 전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생사를 가르는 경계가 되었다.

억양과 발음, 어휘와 말끝에는 화자가 살아온 지역과 공동체의 흔적이 담긴다. 이런 특징은 출신을 짐작하게 하는 언어적 표지가 된다. 그 차이를 이용해 사람을 어느 집단에 속하는지 가려내는 시험을 ‘시볼렛’이라고 부른다.

누구나 고향의 흔적을 품고 말한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첫마디와 골목에서 익힌 억양은 오랫동안 몸속에 남는다. 같은 사투리를 듣고 반가워하고, 낯선 땅에서 고향말을 만나면 금세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오래된 다리다.

그러나 두려움과 편견이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면 언어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말은 의심의 증거가 되고, 억양은 낙인의 표지가 된다. 사람은 살아온 삶이 아니라 혀끝에서 흘러나온 몇 음절로 평가받는다.

문득 오래전 접했던 <마이 페어 레이디>가 떠오른다. 원작인 조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에서 음성학자 히긴스 교수는 꽃 파는 소녀 엘리자의 말투를 듣고 출신과 계층을 짐작한다. 그리고 발음을 바꾸어 그녀를 상류사회에 통할 사람으로 만들려 한다.

엘리자가 익힌 말투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준다. 하지만 그 과정은 사람의 가치를 말투로 판단하는 사회의 편견도 드러낸다. 달라진 발음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설명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관동대지진 당시에는 그 판단이 목숨을 빼앗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언어는 생사를 가르는 칼이 되었다. 몇 음절을 어떻게 발음하느냐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발음을 듣고 타인의 생사를 결정하려 했던 사람들의 태도였다.

역사는 지나간 사건의 기록이면서 반복을 경고하는 기억이다. 시대는 달라져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의 말에서 출신을 짐작하고, 억양에서 정체성을 읽는다. 그것만으로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언어적 차이가 사람을 이해하는 단서를 넘어 차별과 배제의 근거가 되는 순간, 역사는 다시 위험해진다.

문명은 서로 다른 말을 알아들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야만은 서로 다른 말을 쓴다는 이유로 사람을 심판하는 순간 시작된다.

혀는 사람을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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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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