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 아들의 커닝을 왜 잡았느냐”…교관 질책한 교수부장과 원칙 지킨 육사교장

황건 성형외과 전문의·이화여대 초빙교수와 이상기 아시아엔 발행인은 2026년 6월 6~8일 충북 영동의 한 펜션에서 육군사관학교 15기 출신 민병돈 예비역 중장(전 육사교장)을 만나 군인의 명예와 지휘관의 책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글은 당시 공동 인터뷰에서 민 장군이 직접 경험하거나 가까이서 지켜본 군의 여러 장면을 이상기 발행인이 정리한 것이다. 60여 년 전의 기억에 의존한 구술인 만큼 일부 인명과 직책, 시기 및 정황에는 착오가 있을 수 있다. <편집자>
1964년 무렵 민병돈 장군은 육군사관학교 외국어과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의 옆자리에는 성균관대 출신으로 프랑스어 실력이 뛰어난 교관이 있었다. 당시 육군사관학교는 학사관리가 엄격했다. 수업이 끝나면 거의 매일 시험을 치를 정도였다고 한다. 어느 날 프랑스어 시험 도중 한 생도가 부정행위를 하다가 적발됐다.
문제는 그 생도의 아버지가 현역 장군이었다는 점이다. “그 반에는 장군 아들이 대여섯 명이나 있었어요. 전체 생도가 스무 명 남짓이었으니 적지 않은 숫자였지요.” 민 장군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부정행위가 적발된 생도는 육사의 명예제도에 따라 명예위원회에 회부됐다. 육사에서 부정행위는 단순히 시험 점수의 문제가 아니었다. 장교가 될 사람에게 정직과 명예는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었다. 명예위원회가 퇴교 결정을 내리면 장군의 아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육군본부에 근무하던 생도의 아버지는 아들을 구제하기 위해 움직였다. 당시 육사 교수부장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교수부장은 준장 계급의 장군이었다.
민 장군의 기억에 따르면 이한림 육사교장에게도 부탁이 들어갔다. 그러나 이 교장은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명예위원회에서 결정한 일은 교장이라고 해도 뒤집을 수 없습니다.” 이 교장은 명예위원회의 결정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켰다. 교장이라도 생도들의 명예제도를 임의로 흔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들의 구명을 부탁한 장군은 이번에는 교수부장에게 압력을 가했다. 교수부장 역시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육군본부 장군의 요구를 거절하기도 어려웠고, 그렇다고 명예위원회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뒤집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교수부장은 교수들을 큰 강의실에 모이게 했다. 다만 부정행위를 직접 적발한 프랑스어 교관에게는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남은 교수들 앞에서 장시간 훈시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민병돈 장군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들었던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장군의 아들이 생도로 들어와 있는데, 커닝을 했다고 왜 그것을 잡았느냐.” 부정행위를 한 생도가 아니라 이를 적발한 교관을 문제 삼는 말이었다.
민 장군은 그때의 황당함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육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부정행위를 적발한 교관이 오히려 질책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민 장군은 군에서 흔히 쓰던 표현 하나를 꺼냈다. ‘똥별.’ 장군의 계급을 책임이 아니라 특권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민 장군은 군대에서 장군의 별이 갖는 의미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별은 부하들에게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인 동시에, 스스로 그 기준을 지켜야 할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군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부정행위를 눈감아 달라는 요구는 육사의 명예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민 장군의 기억 속에서 이한림 교장은 그런 요구에 흔들리지 않은 지휘관으로 남아 있다. 교장이라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명예위원회의 결정에 개입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의 한계를 지키는 것이 육사의 원칙을 지키는 길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반면 교수부장의 태도는 달랐다. 부정행위를 적발한 교관을 보호하기보다 교수들을 모아 놓고 왜 장군의 아들을 적발했느냐고 질책했다. 같은 장군이라도 계급을 대하는 자세는 이렇게 달랐다.
군인의 명예는 전쟁터에서만 시험받는 것이 아니다. 시험장에서 부정행위를 적발했을 때, 상급자의 부당한 요구를 받았을 때, 자신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잘못했을 때에도 시험대에 오른다. 민 장군이 들려준 이 일화는 지휘관의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60여 년 전 육사에서 일어난 일을 들으며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장군의 별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잘못을 덮어 주기 위한 권한인가, 아니면 누구보다 엄격하게 원칙을 지키겠다는 책임의 표시인가.
민병돈 장군이 오래전 교실에서 목격한 장면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