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원의 시선] 말 폭력시대에 ‘말 무덤’…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말무덤 입간판 <사진 윤일원> 

말·말·말! 말의 시대다. 인류 문명은 개인 간 폭력을 국가로 넘기면서 개인 간에는 말만 남겨두게 되니, 고운 말은 사라지고 말의 폭력 시대가 되었다.

유력 정치인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쌍욕이 있다. <나무위키>를 보면 얼굴이 화끈거려 차마 끝까지 읽을 수도 없고, 글로조차 옮길 수 없다. 애들이 성을 내면 그런 간혹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청소년기에 불같이 화가 나면 가끔 개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어른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그런 욕설을 한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다. 

‘조만대장경(조국+팔만대장경)’도 말에 관한 한 두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직위다. 나라의 모든 현안에 입바른 소리를 안 한 곳이 없어 젊은이의 존경 대상이었는데, 정작 본인의 행동은 그와 딴판이었다. 내로남불이 아니라 조로남불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런 세태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동네가 있다. 나의 고향 마을 옆 동네에 순우리말로 ‘한대’, 한자로 대죽이라는 마을이다. 동네 이름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용궁 현을 기준으로 끄트머리 동네라는 뜻과 큰 대나무가 있는 대죽이다. 나는 한 대가 한자로 옮겨지는 과정에 한(밖–>크다)+대(곳–>대(竹)로 변했다고 본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말무덤 비

그곳에 말 무덤이 있다. 말(馬)이 아니라, 말(言)이다. 마을에 온갖 잗다란 소리가 씨앗이 되어 날마다 싸움박질이 일어나니, 동네 어른이 온갖 쓰레기 같은 말, 남 흉보는 말, 시기 질투하는 말, 험담하는 말을 모아 무덤으로 만들어 놓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나니 동네에서 싸움이 사라졌다고 한다.

당당히 자신의 이름으로 이 시대의 대서사시를 쓰고 있는 사람이 있다. 손흥민 선수다. “지금은 손흥민 시대에 살고 있다”라고 자부할 만큼 국민한테 존중받는다. 이유는 단 하나, 그라운드에서 번아웃 될 때까지 뛰어 이룬 골이기 때문이다. 거짓이 단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겸손까지 하니 어떤 말을 해도 다 존중 받는다.

“사실 남이 그렇게 좋은 성과를 얻으면 정말 배 아파할 수도 있고, 질투할 수도 있는데, 정말 진심으로 좋아해 주고, 정말 응원해 주는 모습이 너무나도 좋았고 너무 기뻤어요.”

EPL 시즌 득점왕이 될 때 한 말로 전 세계 축구 천재들이 몰려오는 살얼음판 같은 곳에서 생존할 수 있던 비결은 의외로 상생을 위한 서로의 격려 때문이라 한다.

2025년 정월 초, 전국 곳곳에 그 흔한 기념비도 많은 나라에서 언어의 폭력 끝판왕들이 모여 사는 여의도 의사당 정원에 말 무덤(言塚)을 하나 만들어, ‘폭력적 언어의 죽음이 된 곳’의 경배로 하루 일과를 시작함이 마땅하리로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말무덤 비

윤일원

'부자는 사회주의를 꿈꾼다' 저자, 트러스트랩 대표, 전 국방부 사이버대응전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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