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30년 전 법정의 비상계엄 논쟁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앞으로 헌법재판소와 법정에서 치열하게 다투어 질 것같다. 1980년5월17일 전두환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그리고 16년 후 그의 비상계엄확대는 내란 행위가 되어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나는 그 법정에서 검사와 전두환의 참모이며 이론가인 허화평씨의 치열한 논쟁을 보았다. 그리고 당시 신현확 국무총리의 증언을 들었다. 공소장은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내란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검사가 허화평 피고인에게 물었다.
“비상계엄의 요건은 전시 또는 그에 준하는 사변이나 적의 포위공격이 있을 때 발령하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피고인은 1980년 5월17일 당시 상황을 전시에 준하는 사변으로 보았습니까?”
죄수복을 입은 허화평 피고인이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비상계엄의 요건을 누가 판단하느냐는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국민 여론이 그 요건을 심사하고 당시는 대통령이 상황을 판단하는 주체가 아니었겠습니까? 어느 경우나 정권의 주체와 반대세력은 상황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야당은 위기가 없는 것으로 봤습니다. 반면 대통령은 위기가 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그 위기라는 게 구체적으로 뭐였죠?” 검사가 다시 물었다.
“당시 야당과 재야 세력은 대통령과 총리의 퇴진을 일방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정부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는 경우 5월22일을 기해 전국에서 데모를 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그 최후통첩에는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위기로 보았습니다.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전국적으로 소요를 일으킨다는 데 그게 어떻게 위기가 아닙니까? 그게 비상계엄 확대의 이유입니다. 당시 정치적으로 복잡한 상황을 너무 그렇게 단순한 잣대로 재면 안됩니다.”
그 재판에서 신현확 국무총리가 증인으로 소환되어 법정에 출석했다. 신현확 총리는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를 권력의 비정상적 전개로 보고 총리직을 사임했다. 그에게 이번에는 노태우 대통령의 변호사가 물었다.
“당시 전국적인 비상계엄이 내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당시 시국 상황이 계엄요건은 충족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가 되면 계엄사령관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체제가 되는 겁니다. 총리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일종의 내각 불신임안이 되는 거죠. 그래서 사임을 하고 나왔습니다. 저는 16년전의 사건을 다루는 이 법정이 매우 이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 사건은 우리나라 역사에 중요한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될 겁니다. 이 법정에서 심리해서 재판을 끝내면 이 사건은 법적인 관점에서 종결될 겁니다. 그러나 그 결정은 앞으로 오랜 세월을 두고 미치는 영향과 파장이 크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과정과 결론을 되돌아볼 때 모든 국민이 긍지를 가지고 화합할 수 있도록 그런 매듭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나는 죄수복을 입고 있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정을 통해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나름대로 국가의 위기를 극복했다는 확신과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노태우 대통령 역시 국민이 뽑아줬다는 강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바뀐 정권의 시각에서 과거 정권의 정통성을 시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세월이 흐르고 2024년 12월3일 다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국정을 마비시키려는 반민주세력을 향한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했다. 야권은 계엄요건이 맞지않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내란행위라고 했다. 국회에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대통령이 법의 심판대 위에 올랐다. 여론조사가 발표되는 걸 보면 국민들의 생각도 갈리고 있다.
앞으로 법정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된 배경과 동기 그것이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것인지를 심리할 것이다.
30년 전 전두환의 내란죄를 심판하는 법정에서 나는 사람들이 같은 국민이면서 물과 기름같이 섞이지 못하고 서로 증오하는 걸 봤다. 법이라는 틀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판사도 봤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본질은 인화성 짙은 증오가 폭발한 건 아닐까. 서로 상대방을 악마로 간주하고 제압하려는 과정에서 찔리고 찌른 행위는 아닐까. 형식적인 사법부의 선고로 혼란한 시대가 매듭지어질 수 있을까.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