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십대 중반 대통령의 두뇌역할을 하는 조직에서 잠시 일했던 적이 있다. 정부기구인 것 같기도 하고 비밀조직인 것 같기도 하고 그 정체가 묘했다. 하여튼 그 조직이 하는 일은 굵직 굵직했다. 나는 그 조직의 법률팀에서 내각제 개헌을 검토했다. 옆방에는 수시로 북한을 오가는 사람이 있었다. 판문각의 북측 주차장에 자기 차를 대놓고 개성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에 갔다가 돌아왔다. 그는 나에게 우리나라가 앞으로 남북연방제로 나가는 게 맞다고 했다. 북에서 전화가 오면 대신 받아서 그 취지를 자기에게 전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사무실에는 북과 통하는 전화가 구석에 있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대통령의 두뇌 속을 훔쳐 볼 수 있었다는 말에 신빙성을 얻기 위해서다.
나는 조직에서 대통령의 적나라한 명령들을 받는 걸 보면서 권력자의 적나라한 심리상태를 간접적으로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대통령이 되면 자신이 용이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선민의식이라고 할까. 모든 권력이 자기에게 있고 나라를 장악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민정수석비서관을 했던 사람이 내게 이런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대통령의 동생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소리가 대통령 비서실장의 귀에 들어갔어요. 비서실장이 민정수석인 나를 불러서 하는 말이 당신이 정권의 실세니까 대통령에게 가서 동생 문제를 직접 보고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대통령에게 가서 얘기를 하니까 ‘씨x’이라는 쌍욕을 화면서 불같이 화를 내더라구요. ‘대통령이란 자리가 동생도 봐주지 못하냐?’라고 하는 거예요.”
대통령의 가족이나 친척은 성역이었다. 문제가 있는 놈들까지 대통령의 가족에게 딱 달라붙어 자신을 보호했다.
대통령은 불쑥불쑥 치받는 야당이나 언론을 혐오했다. 권력 내부의 시각에서 그들은 북한보다 미운 반국가세력이었다. 한 테이블에 앉아 쓴소리도 들어주는 모습을 가끔씩 연출했다. 그게 정치인 것 같았다. 노련한 정치인이 아니라면 비상계엄이란 칼을 휘두르고 싶을 것 같았다. 권력에 대한 집착, 권력 상실에 대한 불안감이 강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내란죄로 구속이 되고 재판을 받았다. 방청석에 앉아 나는 그 재판 광경을 놓치지 않고 다 봤다. 아부하던 부하들이 권력을 잃은 대통령을 물어뜯었다. 언론도 하이에나 떼의 일부로 보였다.
그들이 힘이 있을 때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법적 해석을 했었다. 법원도 광주에서 시위를 한 사람들은 폭도라고 규정했다. 그들이 힘을 잃자 해석이 달라졌다. 법원의 판결문은 이렇게 썼다.
‘전두환 일당이 국회를 봉쇄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며 주요 정치인들을 구속하고 비상계엄을 확대한 행위는 국헌문란에 해당한다.’
법원은 광주항쟁에 대한 의견도 이렇게 바꾸었다. ‘국민이 집단을 이루어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할 경우 그런 국민의 결집은 헌법기관으로 보호해야 할 것이다. 광주시민의 시위는 헌법수호를 이룬 결집이었고 그걸 제지한 군의 행위는 국헌문란에 해당한다.’
정치상황과 힘의 이동에 따라 달라지는 사법부의 판결을 나는 다 믿을 수 없었다. 광주에서 총을 가진 무장 시위대가 있었다. 그들과 싸운 군인들이 국헌문란을 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전두환 노태우의 내란을 심판하는 법정에서 나는 어른 한 명을 발견했다. 국무총리를 하던 분이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가 총을 들고 비상계엄을 선포하자고 국무위원들을 겁박할 때 정면으로 맞받아치고 그걸 막았었다.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할 때 사직하는 것으로 자신의 반대입장을 표명했었다. 그가 신군부에서 탄생한 두 대통령의 내란죄의 증인으로 나왔다. 예상외로 그는 법정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될 겁니다. 이 법정에서 심리해서 심판을 끝내면 이 사건은 법적 관점에서 종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정은 앞으로 오랜 세월을 두고 미치는 영향과 파장이 크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국민이 긍지를 가지고 화합할 수 있도록 그런 매듭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는 정치보복이 아닌 화합을 말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전 국민이 매일 보고 있다. 지금의 시대적 요청은 무엇일까. 윤석열 대통령의 나머지 소명은 무엇일까.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국민들을 화합시켜야 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