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안현순 작곡발표회’…”제주에 대한 앎의 깊이, 삶의 진정성이 오롯이”


“70년 전 기억을 위로하는 일, 다시 화해와 상생의 빛을 찾아내는 일을 음악이..”

거기에 제주가 있었다. 청잣빛으로 일렁이는 바다, 부서지는 포말 사이로 유영하듯 가슴 파고드는 숨비소리, 유채꽃 흐드러진 산방산, 하늘 가득 품은 봄 향기가 따사롭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제주가 선율에 실렸다.

안현순 작곡발표회, 설렘과 낭만이 촘촘하게 시간을 메웠다.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은 제주사랑의 마음들로 가득 찼다. 발표회 제목이 그렇다. ‘제주·愛’, 제주의 자연과 사람, 역사, 그리고 사랑을 음악으로 담아낸다는 것, 문외한인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환상이 현실로 되는 공간이었다. 작곡가의 제주에 대한 앎의 깊이, 삶의 진정성이 오롯이 담겼다.

김순이 시인의 ‘제주의 수선화’가 발표회의 문을 열었다. 삭풍에 맞서며 스러지듯 견뎌 내는 수선화, 제주 여인의 표상이다. 선율이 흐르는 순간 장내의 공기가 멈췄다. 숨 막히는 순간에 어머니가 떠올랐다. 아~ 우리 어머니, 애잔했던 누이의 슬픔도 내 마음을 훑어 냈다.

고영숙 시인의 ‘섬의 연가’, 바이올린과 첼로의 앙상블이 70년 전 제주 섬의 기억을 되살렸다. 아픈 기억은 지울 수 없다. 그러나 그 기억을 위로하는 일, 다시 화해와 상생의 빛을 찾아내는 일을 음악이 할 수 있다는 배움이 컸다.

제주를 사랑했던 사진작가 故 김영갑을 기억 속에서 다시 소환해 낸 이청리 시인의 ‘그 섬에 고운 님이 있었네’, 고정국 시인의 ‘길’, 고성기 시인의 ‘내 마음의 바다’, 피아노 3중주를 위한 소나타로 연주된 ‘공생’이나 작곡가가 작사한 ‘우리 어멍’은 곡을 구성하는 반주와 리듬, 심지어 사운드 적 구성까지 포함하는 작곡의 개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고훈식 시인의 ‘아영고영’, “이녁 각시 고마운 줄 알민 그땐 제라허게 늙은 거여”, 제주어로 된 시가 노래가 됐다. 나는 테너 송영규의 ‘유채꽃 신부’에 감동했는데, 내 평생 친구는 ‘아영고영’이 더 좋았던 것 같다.

공연장을 빠져나오면서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아직 젊어”, 아직 각시 고마운 줄 모른다는 이야기다.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다.

작곡가 안현순을 나는 잘 몰랐다. 페북의 친구로 인사했다. 그녀는 늘 꿈을 꾼다는 것을 알았다. 제주에 선율을 싣는 꿈이다. 그래서 음악으로 제주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일, 그녀는 사람과 역사, 과거와 미래를 악보에 적으면서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울림을 만들어내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하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발표회장을 찾은 청중들의 면면이다. 두 시간 언저리, 그 소중한 시간을 만나기 위해 제주지역의 정치인, 문화예술인, 언론인, 공직자 등 다양했다. 객석은 꽉 찼다.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선 지역의 문화예술 현장에 가끔씩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 소멸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문화예술의 향유 기회가 적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다시 생각했다. 그것은 핑계였다. 단지 주변에 널려있는 문화예술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적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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