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생물학자 끄로뽀뜨낀의 ‘상호부조론’과 금강하구 철새떼

가창오리떼 <사진 허정균>


국내 최대 철새도래지 서천의 철새들은 서로 공존 상생하건만…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비롯된 진화론이 1864년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에 의해 처음으로 인간 사회에 왜곡 적용돼 ‘사회진화론’의 이론적 토대가 되는 역할을 했다. 사회적 생존경쟁의 원리를 함축시킨 사회-철학 용어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 진화주의(社會進化主義, Social Darwinism)’는 그 후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제국주의의 약소국 침략의 논거가 되기도 했으며 인종차별주의나 파시즘, 나치즘을 옹호하는 근거와 심지어 근래의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약육강식 논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물학에서 비롯된 이같은 사회진화론에 반기를 든 학자가 러시아의 끄로뽀트낀(1842~1921)이다. 그는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 지리학자이자 생물학자, 아나키스트 혁명가이다. 16세 때 근위학교에 들어가 3년 후에 아무르강 지구에 주둔하는 코사크 연대의 사관이 되었다.

1867년 25세 때, 그는 군대를 그만두고, 지리학 연구를 더욱 깊히 하기 위해 뼤쪠르부르그의 수학원(數學院)에 입학, 이 무렵부터 신진 지리학자로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 그의 탐험여행, 시베리아에서 북만주, 핀란드에서 스웨덴에 이르는 여행체험이 후에 그의 사회이론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들 여행을 통해 목격한 일반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태가 그를 혁명가의 길을 걷게 했다. 이 시절 시베리아에서 관찰한 철새들의 이종간의 상호부조가 그를 깨닫게 했다 한다.

“시베리아의 수 많은 호수 가운데 한곳을 예로 들어보자. 그 호숫가에는 적어도 서로 다른 수십종에 속하는 물새들이 서식하는데 이들 모두가 무척이나 평화롭게 서로 보호해주면서 살고 있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

그는 1874년 당국에 체포되어 악명높은 뾰트르 파벨 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지만 왕립지리학회 등의 탄원으로 석방되었다.

1902년 끄로뽀트낀은 ‘상호부조론’(원제: 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한국어 번역서 ‘만물은 서로 돕는다’)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사회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생존경쟁’보다 ‘상호부조’가 인류와 동물세계의 진화를 추동하는 강력한 요인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협력과 연대에 기초한 ‘상호부조’야말로 인류의 문명과 동물의 세계를 이끌어온 힘이라는 점을 동물학, 역사학, 인류학의 해박한 지식으로 입증하고 있다.

이 책은 1888년 영국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가 <19세기>라는 잡지에 ‘인간사회에서의 생존경쟁’을 발표한 것을 보고 집필을 시작했다 한다. 그는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1890~1896년 같은 잡지에 상호부조에 관한 논문들을 잇달아 실어 헉슬리를 논박했다. 이 논문들을 모아 1902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상호부조론>이다.

19세기 이래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한 헉슬리와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 강자의 약자 지배를 정당화해 제국주의 침략을 옹호하는 정치철학으로 이용된 반면, 끄로뽀드낀의 ‘상호부조론’은 피압박 개인과 민족의 해방을 위한 정치철학의 바탕이 됐다.

금강 하구에 자리잡은 서천군에는 가창오리 수십만 마리를 제외하고도 겨울에 17만 마리의 철새들이 찾아오는 국내 최대 철새 도래지다. 이들을 관찰할 때 끄로뽀뜨낀의 <상호부조론>을 상기하면 더욱 의미있는 탐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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