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 31] 18살 막노동꾼 신의(神醫), 진폐증 광부 치료

“지하 수백 미터씩 파 들어간 갱내에는 먹고 살길이 없어 일자리를 찾아온 우리 조선인들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에서 그 날 그 날의 끼니거리를 위해 짐승처럼 일하고 있었다. 남의 이목이 집중되면 위험해지므로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운룡은 다시 묘향산 삼포광산까지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운룡은 삼포광산에서 석탄을 캐거나 불 끄는 작업반에서 소방 일도 하면서 받는 임금으로 양식을 조달했다. 그러다가 막장까지 들어가 석탄을 캐는 일을 맡았다.”(본문 가운데)

운룡은 묘향산 산판에서 나무를 베어 철도목을 깎아내는 일이나 백두산 계곡에서 사금(砂金)을 채취하는 일, 금광이나 무연탄 광산에서 채광하는 일 등 그때 그때 형편과 사정에 따라 닥치는 대로 막노동으로 양식을 구하고 때에 따라서는 동지와 어울려 일본군대를 습격하는 등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피신의 나날을 이어갔다.

운룡은 1926년 어느 날 평안북도 북신현면 묘향산 기슭에서 다시 죽염을 제조하였다. 백두산, 낭림산, 묘향산 일대의 우리 백성은 초근목피로 하루를 살아가는 비참한 처지라 한약방에서 갖가지 약초를 사다가 불쌍한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환자마다 병이 다 다르니 도망자 신세에 무슨 수로 때마다 처방할 수 있으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죽염이라면 썩지도 않고 두고두고 약으로 사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 죽염의 거악생신, 해독청혈소염작용으로 어떤 종류의 질병에건 다 효능이 있는 만병통치였으니 독립투사 운룡이 가난한 동포를 위해 만들어줄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약품이었다.

약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육체가 주는 질병을 운명처럼 여기고 아무런 항거도 못한 채 말 못하는 무력한 짐승처럼 끙끙 신음소리만 내며 고통을 맞고만 있던 온갖 질병의 환자들, 만성위장병 환자, 신장염 환자, 담낭염 환자, 기관지염 환자, 심장병 환자들, 가지가지 병명도 모르는 산골 오지의 환자들이 인연따라 운룡이 나눠 주는 죽염의 덕을 보기도 하고 침을 맞기도 하고 처방을 받기도 하였다.

1926(丙寅)년 한겨울 음력 11월 25일 운룡의 기이한 능력을 알아보고 평생 애지중지하던 할아버지 김면섭 공이 향년 75세로 별세하였다. 그때 할아버지는 외아들인 운룡의 아버지 김경삼(慶參)에게 간곡한 유언을 남겼다.

“장차 일본이 망하고 조선이 독립을 하게 되면 나라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그때 너는 반드시 셋째 아이(운룡)가 하자는 대로 하여 집안 권속들이 편안하게 존속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진폐증 광부 치료

그러구러 1926년도 저물고 운룡은 1927년 동장진 수력전기 6호 갱에서 일하게 되었다.

신라 왕손 언양군의 후손으로 명의로 소문난 유의(儒醫) 집안에 신동으로 태어나 가족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좋은 집과 풍부한 재물로 부족한 것 없이 부귀하게 살다가 집을 떠나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막노동까지 하는 귀인 운룡의 곤궁한 도망자 처지는 하늘이 내려다봐도 통탄스러운 일이었다.

하늘은 지구를 아끼어 가장 좋은 땅에 인류 역사에 다시 없을 대천재를 내어놓았으나 그 땅은 이미 이민족에 의해 뺏긴 처지이고 대천재는 하늘로부터 지니고 온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하루살이 막노동꾼으로 숨어 다녀야 하는 신세였다.

질소비료공장이나 무연탄이나 석회탄광 지하갱은 유독 가스나 유독 분진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안에서 오래 일하게 되면 독성 물질이 폐로 들어가 폐세포를 변질시켜 굳어버리게 하는 진폐증에 걸리기 쉽다. 진폐증은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병으로 어떤 약으로도 살리기 어렵다.

동장진 수력전기 6호갱에서 일하던 동료 노무자가 이 죽음의 진폐증에 걸려 생사를 헤메게 되자 운룡이 유근피楡根皮와 백개자白芥子[炒], 행인杏仁[炒]을 한데 두고 달여서 달인 약물에 죽염竹鹽을 복용케 하니 환자는 식욕도 차차 나아지고 숨쉬는 호흡이 편해지고 잠도 잘 잤다. 완치는 뜸밖에 없었으므로 쑥뜸을 뜨도록 권하였고, 그의 가족들은 운룡의 권고에 따라 환자에게 쑥뜸을 떠주었다.

죽염과 약물을 계속 복용하면서 1개월간 중완혈과 관원혈에 5분 이상 타는 쑥뜸을 계속하였다. 운룡은 시작만 해주고 그 후에는 가족에 의하여 계속하게 하니 완치되는 기간 중에 사경에 이른 적이 여러 번이었다. 이는 몸을 보할 수 없으므로 인해 원기 부족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6개월만에 생명을 구하고, 1년만에 완치되었다.

구법灸法으로 진폐증을 다스림에 있어서 청형淸血이 완전하면 간과 심장에서 혈액이 순환하여 정상이 된다. 그러면 기관지와 폐에서의 호흡도 정상이 되고 호흡이 정상이 되면 공기중에서 기관지와 폐를 살리는 진액이 화化하니 수진水津이다. 수진은 호흡기 장애물인 누진累塵을 청소하여 회복케 하니 폐와 기관지는 강하여지고 따라서 비위脾胃도 튼튼하여져 식욕과 소화력이 정상을 회복하므로 완전 건강체를 이룬다.

황해도 봉산군에 석탄광산으로 봉산탄광과 사리원탄광이 있었다. 사리원 탄광은 일제에 의해 채굴이 시작된 이래 연간 5만톤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한반도 내 굴지의 갈탄광이었다. 지하 수백 미터씩 파 들어간 갱내에는 먹고 살길이 없어 일자리를 찾아온 우리 조선인들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에서 그 날 그 날의 끼니거리를 위해 짐승처럼 일하고 있었다.

남의 이목이 집중되면 위험해지므로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운룡은 다시 묘향산 삼포광산까지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운룡은 삼포광산에서 석탄을 캐거나 불 끄는 작업반에서 소방 일도 하면서 받는 임금으로 양식을 조달했다. 그러다가 막장까지 들어가 석탄을 캐는 일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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