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걱정과 비판 담긴 김성동의 ‘의고체’ 문장
문장을 쓸 때 일부러 예스런
문체와 분위기를 이끌어오는 방법을
의고체(擬古體, pseudo classic)라고 한다.
우리 현대문학사에서는 일찍이 1930년대
이병기, 정지용, 이태준 등이
그런 고전적 스타일을 중시하였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모두 문학지 <문장(文章)>에서
추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니
이는 <문장>지 발간취지와도 관련되었을 터이다.
조선시대 양반 선비 지식인들이 주고받던
편짓글 문투를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거기에 서린 격조, 품위, 고전적 중량감을
재생시키는 방향성이 있었다.
민족의식이나 민족감각의 되살림의 뜻이
필시 거기엔 숨어있었으리라.
위의 문인들 외에도 정인보, 홍명희, 이광수, 안확 등
당대 최고지식인들은 이런 의고체를 즐겼다.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들이
이런 문체의 편지를 생활에서 실천하셨으나
그 어른들 돌아가시니 의고체는 거의 절멸이다.
작가 김성동(金聖東)의 편짓글은
지금 사라진 의고체를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는
아주 드물고 귀중한 편짓글이다.
짐짓 무게감이 느껴지는 의고체 문장 속에서
시대에 대한 걱정과 비판,
우리가 장차 나아가야할 방향성 따위를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80년대는 민중문학의 전성기였다.
입만 열면 오로지 민중이 먼저였는데
행동보다 관념적 이론이 늘 앞장 서는
이런 흐름을 작가는 좌익 맹동주의,
혹은 좌익소아병으로 규정한다.
이 규정 속에는 호된 비판과 질책이 들어있다.
어떻게든 넓고 길게 바라보며 창작에 임하라는
그런 매서운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해방 직후 좌파문학의 흐름이나
월북 후 비운의 삶을 마감했던
좌파 시인 임화(林和, 1908~1953)의 경우에서
그러한 타산지석의 참고를 읽어내기를 촉구한다.
그로부터 세월은 한참이나 흘러갔는데
이젠 그런 것이 사라졌는지
냉철하게 반성하고 점검해 볼 일이다.
東洵 仁兄
마음으로만 궁금하던 차에
仁兄의 혜함(惠函)을 받고 보니
여간 반가웁지 않습니다.
식소사번(食少事煩)한 나날이다 보니
편지 한 장 쓰지를 못하였지요.
건강이 그만하시다는 이야기는
풍문으로 가끔 듣고 안심하고 있습니다.
정치판도 그렇지만 문단의 동향 또한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과도기적 현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순결성이 절제되지 않은
이데올로기적 편향과
이데올로기적 편향으로부터 드러나는 진보주의는
결국 관념적 과격성에 다름 아니지요.
이른바 좌익 맹동주의(盲動主義),
또는 좌익소아병(左翼小兒病) 말씀입니다.
필요한 것은 언제나
한 사람의 맑스와 한 사람의 레닌일 터입니다.
문단으로만 국한시켜 전환기를 보더라도
일제하의 카프와 팔일오 직후의 문학인들의 움직임은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던져준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진보적인 문인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임화(林和)의 개인사적 삶의 궤적을
엄혹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요.
관활임장(觀闊臨長)이어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면구스러워 미루어 들고 있던 잡문집
보내드리오니 소납(笑納)하소서.
여불비례(餘不備禮)
1987년 9월 12일
각(覺) 배(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