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가을 노트’ 문정희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낙엽이 한잎, 두잎 쌓이며 마침내 겨울은 온다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 한 말
못다 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 잎 두 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담아 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