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기원’ 이어 ‘한국현대사’ 낸 브루스 커밍스의 강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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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국헌 <대한민국 건국사> 저자,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86년 <한국전쟁의 기원>을 발간한 브루스 커밍스만큼 한국전쟁의 연구에 있어 한국학계에 큰 충격을 준 외국학자는 없을 것이다. 그는 공산권이 붕괴한 후 입수한 자료들을 반영하여 소련의 역할에 대해 상당한 수정을 가했지만, “한국전쟁은 기본적으로 내전이었다”는 수정주의적 해석에 대해서 수긍하지 않는 학자도 많다. 그러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실증주의적 연구방법론에서 그를 넘어서는 한국학자는 드물다.
커밍스는 최근 <한국현대사>를 저술했다. 훑어보니 커밍스는 분명 ‘성실한 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관심은 고대사로부터 현대사에 이른다. 그가 한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수준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객관적·통시적으로 한국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는 점은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몇 가지 한국학자가 가지기 어려운 강점이 있다.
그의 강점은 한국에서 학자로 살아가려면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관계’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인문사회과학에서 ‘관계’는 학문의 성향도 제한하게 된다. 강단사학자들은 학파를 떠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이병도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다. 이 학자들은 재야사학자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 낙랑군이 중국 요서에 있었다고 하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일축한다. 그 논란은 지금도 재연되고 있다. 혹시 개인적으로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는 있으나 학설로 인정하지 않는다. 일제 시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한 이병도를 전부 긍정하지는 않더라도 그만큼 많은 원전을 접한 학자는 없다고 옹호한다. 서울대에서는 이 구도를 떠나서는 논문을 쓰기 어렵다고 본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는 강만길이나 리영희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들이 공산권에 관한 자료가 극도로 제한될 때 새로운 시각을 제기한 점은 인정된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대단한 것은 아니며 더구나 이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커밍스는 이러한 한국학자들과 같은 제한을 받을 필요가 없다. 커밍스의 ‘한국사’는 이러한 점에서 신선하다. 몇 가지 문제도 보이나 외국인에게 이것은 감안할 수 있다. 다만 군사분야는 대폭 보완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군에 복무한 군인으로 김석원 장군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으나 이 정도로는 모자란다.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자료가 모자라다보니 그러한 자료를 취합한 커밍스의 책이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한에도 불구하고 관심분야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려는 커밍스의 성실성(integrity)은 인정할 만하다. 한국의 학자들은 웬만하면 대가로 행세하는 경우가 많다. 커밍스도 한국현대사에 대해 권위자로 행세해도 될 만하다. 이러한 오만은 일부 진보경향의 학자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커밍스는 여기에 중독되지 않은 듯하다.
커밍스는 외국인으로서 한국사에 관한 지식에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전제하면서 꾸준히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열정과 겸손을 잃지 않는 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