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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현대중국은 주은래 밑그림에 등소평이 다듬고 색깔 입힌 것”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덩샤오핑(鄧小平)은 믿음이자 희망이었다. 덩은 저우의 기대에 보답했다. 오늘 중국의 실체와 미래는 저우가 그렸던 밑그림을 덩이 다듬고 빛깔을 얹힌 것이다. <신중국사>(新中國史, China A New History)의 저자 페어뱅크(John King Fairbank)는저우언라이의 중립성과 뛰어난 분별력을 높이 평가했다. 저우언라이는 위대한 능력을 지닌 매력적인 인물이다. 언제나 중립적인 위치를 지켰으며, 조직의 단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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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중국 개혁개방 40년②] “주은래 죽음은 모택동 시대의 종말 예고”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중화인민공화국 건설을 이끌던, 중국혁명 전설의 주인공 세 사람이 시간을 다투어 이승을 뜨고 말았다. 하나의 시대를 마감하는 요란한 진동이었다. 진동은 지각변동으로 이어졌다. 그해 10월 6일, 이른 바 ‘4인방’으로 불리던 장칭(江靑) 등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예상하기 어려웠던 반전(反轉)이었다. 저우언라이의 황포군관학교 시절 이래 평생의 전우였던 예젠잉(葉劍英)이 4인방 타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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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중국 개혁개방 40년①] 1976년 주은래·주덕·모택동 사망과 등소평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광장에는 수만명의 인파가 붐비고 있었다. 저우언라이에게는 무덤이 없다. 여기가 바로 그의 무덤이었다. 얼마나 웅장한 무덤인가? 인산인해라 했다. 1976년 1월 8일 저우언라이의 숨이 멎었다. 시간은 아침 9시 57분, 그의 나이 78세였다. 기록은 그의 마지막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해준다. 숨 거두기 하루 전 날인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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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택동은 산, 주은래는 물, 등소평은 길”···이중 전 숭실대 총장 “반세기 한우물 판 3인방”
[아시아엔=이중 전 숭실대 총장, 연변과기대 부총장 역임, <오늘의 중국에서 올제의 한국을 본다>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하다> 등 저자] 중국 현대사 인물 3인을 나는 이렇게 부른다. “모택동은 산이요, 주은래는 물이며, 등소평은 길이다.” 모택동은 어찌하여 산인가? 또 주은래는 왜 물이고, 등소평은 왜 또 길인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길을 만든 것이 오늘의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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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李中의 觀點, 중국 엿보기]⑨ 인재양성의 문 열어젖히다
덩샤오핑, 대학입시 부활 결단…당정 중추세력 키워 조금은 구닥다리 얘기가 되겠지만, 지난해 3월25일자 ‘블로그(博客) 위클리’에 실렸던 한 기사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자. 1977년 겨울, 그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아직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대학 문이 열렸다. 마침내 대학의 커다란 문이 이들 학생들을 맞아들였다. 역사는 새로운 한 페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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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李中의 觀點, 중국 엿보기]⑧ ‘산 넘고 물 건너 길 만든’ 중국
“모택동은 산, 주은래는 물, 등소평은 길” 중국 국무원 안에 민족사무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다. 50여 중국 내 소수민족 사업을 관장하는 기구다. 책임자인 주임은 장관급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조선족인 이덕수(李德洙) 씨가 주임을 맡았었다. 그가 민족사무위 주임직을 내려놓고 얼마 뒤 고향인 연길(延吉)을 찾았다. 이 주임은 일찍이 연변자치주 주장(州長)을 지낸 바 있다. 오찬을 나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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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李中의 觀點, 중국 엿보기]⑦ 중국, 태산 위 마천루 올랐나
방공식별구역 일방적 선포…미국과 새 판 짜자는 속내 “중국 외교가 세계 규칙의 추종자(追從者)에서 세계 규칙의 제정자(制定者)로 변하고 있다” 참 대단한 발언이다. 중국다운 발상이다. 2012년 12월 중국 공산당 정치국 제3차 전체학습회의에서 총서기 시진핑이 한 말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시진핑은 미국, 중국 관계를 마천루(摩天樓)에 빗댔다. 두 나라만이 하늘 꼭대기에 올라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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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中의 觀點, 중국 엿보기]⑥ 중국 소수민족 정책 단호한 이유
새방파 “신장지역 불안정은 베이징 안위와 직결”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엔 빛과 그늘이 항상 존재한다. 세계는 지나치게 거대강국이 된 중국 내 소수민족의 향배에 민감하다. 옛 소련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중국공산당의 버티기 작전이 끝내 승리할 것인가, 두 가지 전망이 공존한다. 역사는 흘러가고 여울을 지으며 결국은 어떤 도착점에 이르고 만다. 하지만 그 결론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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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中의 觀點, 중국 엿보기]⑤ ‘차이나 드림’은 해양강국
국가해양국 확대개편 “해양경제가 성장 핵심 포인트” 1949년 12월 마오쩌둥이 모스크바를 찾았다. 스탈린 대원수의 70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마오쩌둥으로서는 생애 첫 해외 나들이였다. 대표단 구성은 조촐했다. 측근 비서진인 천보다(陳伯達), 왕둥싱(汪東興), 예쯔롱(葉子龍)과 주로 통·번역을 맡았던 스저(師哲). 소련의 위성국 수반들이 모스크바로 몰려들었다. 스탈린의 위상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소련보다 덩치가 큰 나라를 공산국가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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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中의 觀點, 중국 엿보기] ④한·중 역사 새 장 열 ‘최치원 코드’
멀어진 중화문명 다시 돌아볼 때 중국 땅은 나라 잃은 한국인들에게 안성맞춤의 망명지(亡命地)였다. 강 하나, 바다 하나 건너면 바로 만주요 중원이었다. 1921년 1월1일 상하이 임시정부 신년하례회에 40대 중반의 신사가 나타났다. 미국 하와이에서 밀항해온 이승만 박사였다. 대통령 자격이었다. 이날의 기념사진엔 안창호, 김구, 여운형, 조소앙, 신익희 등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이승만과 비서 임병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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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李中의 觀點, 중국 엿보기] ③한중수교 막후 핵심 ‘류야저우’
현역장군 겸 작가?류야저우(劉亞洲), ‘문화혁명’ 비사 파헤쳐 류야저우(劉亞洲). 한국에서 유명한 이름은 아니다. 알 만한 사람은 중국의 작가이자 장군인 그를 익히 알고 있지만, 대체로 낯설다. 그 이름이 최근 그의 부인으로 말미암아 각광을 받았다. 류야저우의 현직은 중국 국방대학교 정치위원, 현역 공군 상장(上將; 한국의 중장)이다. 시진핑 집권 초입, 군 개혁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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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中의 觀點, 중국 엿보기] ②중국, 한 단계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
일당체제-개방경제 ‘덩샤오핑 이원론’에 머물러 덩샤오핑의 이원론(二元論). 이를 협공하는 좌우(左右) 강경파들. 무슨 철학논쟁이 아니다. 아니, 철학논쟁일 수도 있겠다. 세상에 흔히 알려진 중국공산당의 권력투쟁은 늘 이런 이론투쟁과 안팎을 이뤄왔다. 이원론의 주된 골자는 경제개혁에서 부르주아 자유화를 추진하면서 정치에선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 정치는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하되, 경제는 개방을 지향해시장경제를 과감하게 도입한다. 이런 중국공산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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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中의 觀點, 중국 엿보기] ① 2인자의 역할과 운명
27년간 중국 현대사의 한 축 떠받친 저우런라이 “조타수는 조류를 이용해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저우언라이(周恩來)의 말이다.이 말엔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조타수는 저우언라이 자신이고, 조류는 마오쩌둥(毛澤東), 배는 중국혁명 또는 중화인민공화국 즉 공산 중국이다. 저우언라이에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만년 2인자’이다. 그에 대해서는 여러 말이 있다. 그는 1949년 10일1일을 기점으로 197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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