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이탈리아 보나노미 기자, 영국 소설가들 발자취 추적하다
매년 이맘때만 되면 때아닌 설렘 속에 ‘맘살’을 앓는 이가 있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가는 중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신문사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이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소설 지망생이 특히 더 그렇습니다. <매거진N> 독자께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매거진N 8월호 스페셜리포트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셰익스피어의 고국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소설, 아라비안 나이트로 대표되는 아랍세계의 소설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또 ‘소설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잊혀져온, 혹은 잃어버린 소설에 대한 꿈을 다시 꾸어봅니다.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은 어떤 게 있으며, 그들은 왜 대부분 실패의 길을 갔는지 등을 함께 들여다 봅니다.<편집자>
[아시아엔=알레산드라 보나노미 <아시아엔> 기자] 영국 근대소설은 일반적으로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1719)와 <몰 플랜더스>(1722)를 시작점으로 본다. 더불어 존 번연의 <천로역정>(1678)과 애프라 벤의 <오루노코> 또한 거론되고, 토마스 맬러리의 <아서의 죽음>, 심지어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테일스의 서시>까지도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외의 18세기 주요 영국소설가들로는 새뮤얼 리처드슨(1689?1761), 헨리 필딩(1707?1754), 로렌스 스턴(1713?1768), 올리버 골드스미스(1728?1774), 토비아스 스몰렛(1721?1771), 그리고 프랜시스 버니(1752?1840) 등이 있다. 소설이 문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것은 영국 중산층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
‘낭만주의 소설’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18세기 후반부터 1837년 빅토리아시대 시작까지 이어진 낭만주의시대에 집필된 작품을 가리킨다. 하지만 몇몇 문제들로 인해서 월터 스콧, 나다니엘 호손 그리고 조지 메러디스와 같은 소설가들은 전통적인 낭만주의 작법으로 소설을 집필했다. 더불어 여기에 나오는 대부분의 표현들은 로맨틱한 사랑에 초점을 맞춰 인기 있던 ‘펄프 픽션 장르’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낭만주의 시기는 윌리엄 블레이크, 윌리엄 워즈워스,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조지 바이런, 퍼시 셸리 그리고 존 키츠와 특히 관련이 있으며 유명한 소설가인 제인 오스틴과 월터 스콧 또한 19세기 초반에 작품을 출판했다.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등서 여성들의 고된 삶 드러내
제인 오스틴(1775-1817)의 작품은 18세기 후반의 문학 감성을 비평하며 19세기 사실주의 기법과의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그녀의 줄거리는 기본적으로 코미디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사회경제적 지위의 안정을 위해서 여성이 결혼에 의존하는 면을 강조하여 보여준다. 오스틴은 대체로 재산 상속을 못 받고, 일을 못하며 희망이라고는 오직 결혼한 남자에게 의지하는 것밖에 없는 여성들의 고된 삶을 다뤘다.
그녀는 당시 여성의 어려움뿐 아니라 남성이기에 요구되는 모습, 즉 그들이 만들어가야만 하는 경력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그녀는 위트와 유머를 곁들여서 이야기를 풀어내며 권선징악에 따라 결말을 맺는다. 생전에는 긍정평가를 별로 못 얻었으나 1869년 그녀의 조카가 <제인 오스틴 자서전>을 펴내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비로소 1940년에 이르러 주류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20세기 후반엔 ‘오스틴장학금’이 등장하고 두터운 팬클럽이 생겼다. 오스틴의 작품으로는 <오만과 편견>(1813), <이성과 감성>(1811), <맨스필드 공원>, <설득>, <엠마> 등이 있다.
19세기 초반 월터 스콧경(1771?1832) 또한 주류작가로 활동했다. 스콧은 <웨이벌리>(1814), <골동품수집가>(1816), 그리고 <미들로디안의 심장>(1818)을 집필했다. 소설 <웨이벌리>를 통해 ‘역사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하지만 오스틴이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며 TV드라마와 영화 주제로도 만들어지는 반면, 스콧은 비교적 덜 알려진 편이다.
영국에서 소설이 문학장르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은 빅토리아시대(1837-1901)부터다. 더불어 19세기에 여성 작가들은 남자 이름을 가명으로 쓰지 않고도 성공 가도를 달렸다. 19세기 초반 대부분의 소설은 3편으로 나뉘어 출판됐다.
영국 문학에서 1832년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
그러나 찰스 디킨스의 피크위크출판사가 1836년 4월부터 1837년 11월까지 매월 20부를 찍어내면서 월별 출판사업이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독자의 관심을 꾸준히 끌기 위해 에피소드마다 충격적인 반전이나 새로운 캐릭터를 집어넣으며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험난한 일이었다.
1832년 영국의 선거법 개정은 사회·정치적인 격변을 가져왔다. 이에 따라 ‘사회소설’ 혹은 ‘사회문제 소설’이라고 불리는 장르의 소설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예로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1837-38)가 있다. 작가는 생동감 있게 1830년대 런던의 삶과 가난한 이들의 일생을 그려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모든 계층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게 했다.
매리 앤 이반스(조지 엘리엇)(1819-80)의 첫번째 소설인 <애덤 비드>는 1859년 출판되었다. 그는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빅토리아시대에 대한 깊은 지식을 통해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20세기 초 영국의 주류작가로는 제임스 조이스(1882?1941), 헨리 제임스(1843?1916), 조지프 콘래드(1857?1924)가 있다. 또 다른 1920년대의 뛰어난 근대주의 작가로는 영향력 있는 페미니스트이자 ‘의식의 흐름’ 기법을 개발한 버지니아 울프 (1882-1941)가 있다. 그녀는 <댈러웨이 부인>(1925), <등대로>(1927), 그리고 <파도>(1931)를 집필했다. 그녀의 에세이 모음집인 <자기만의 방>(1929)에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 여자는 반드시 본인 소유의 돈과 방이 있어야 한다”는 유명한 ‘격언’이 포함되어 있다.
1930년에서 1940년대 영국 주류작가로는 전체주의에 대한 풍자를 다룬 <1984>(1949)와 <동물농장>(1945)을 펴낸 조지 오웰(1903-50)이 대표적이다. <1984>는 윈스턴 스미스의 삶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그는 ‘당’(黨)의 하위 멤버인데, 편재하는 당의 시선과 불길한 당의 리더 ‘빅브라더’의 존재를 불만스럽게 느낀다. 빅브라더는 사람들 삶의 모든 면을 통제하며, 정치적인 반란을 완벽히 막기 위해 ‘새로운 언어’까지 창조한다. 또한 반란에 대한 생각 자체를 막기 위해서 “생각하는 것조차 범죄”(생각범죄)라는 해괴한 개념을 만들었다.
조지 오웰 대표작 <1984>? 제목의 기원은 아직도 ‘오리무중’
당은 사람들이 무엇을 읽고,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모두 통제하며, 불복종할 경우 협박하고 101번 방에 끌고가 끔찍한 형벌을 내린다. 오웰은 대중매체, 정부 감시기구 등을 통해 인간을 완벽하게 조작·통제할 수 있는 기제들을 폭로해낸다.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치명적인 생각범죄인 일기를 꾸준히 작성함으로써 조용한 반란을 시작한다. 스미스는 연인 줄리아와 함께 자유와 정의를 위한 예정된 싸움을 시작한다.
이 소설의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이며 두려운 주제는 전체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의 완전한 통제가 가능하다는 암시일 터다. 만약 세상이 한 명, 혹은 몇몇의 독재자 아래 통제된다면, 미래는 쉽게 뒤틀릴 것이고, 모든 움직임과 단어 심지어 숨결까지도 죽음에 대한 공포 없이는 감히 반대할 수도 없는 전능한 권력에 의해서 통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조지 오웰의 집필 동기다.
<1984>는 현대의 탈(脫)진실 시대를 예견하며 독자들을 긴장으로 몰아간다. 잘못된 정보와 거짓뉴스가 인터넷에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전파되는 시대. 러시아는 미국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며 서구민주주의를 교란시키고 있다. 기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쏟아지는 거짓들과 추측들을 걸러내기 위해서 분투해야 한다. 중국은 정부가 앞장서 13억 국민들의 국가신뢰도를 측정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도입할 정도다.
중국 국민들의 일상생활은 낱낱이, 지속적으로 관찰·감시되고 있다. 어떤 친구와 사귀는지, 세금은 언제 내는지 등등이 모두 관찰 대상이 되고 있다. 감시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과 저장공간은 이제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상상한 훨씬 이상이다.
오늘 현재 소설 <1984>의 제목이 어떻게 유래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어떤 이들은 오웰이 1884년에 설립된 페이비언협회의 100주년을 시사했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잭 런던의 소설 <강철군화>(1984년에 집권하려는 정치적 움직임) 혹은 오웰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의 이야기 <노팅힐의 나폴레옹>의 배경이 1984년이라는 점에 영향을 받았다고도 한다.
어찌 되었든, 이제 ‘Orwellian’ 즉 ‘오웰적인’이라는 말은 억압적이거나 전체적인 체제를 칭하고 있다. 윈스턴 스미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1940년 영국 작가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는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꾸준히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번역 조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