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북한급변시 시진핑의 중국 어떻게 나올까?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2000년대 초 국방부 차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상대는 부총참모장 슝광카이(웅광해, 熊光楷)였다. 중국은 통합군체제이기 때문에 총참모부 비중이 크다. 중국 국방부에는 우리의 차관에 정확히 상당하는 직책이 없는데 4명의 부총참모장 중 외사 업무를 담당하는 슝광카이가 비근하다고 하여 우리 국방부차관을 상대하였다.

중국군의 통수권은 중앙군사위 주석에 있다. 볼세비키가 혁명을 주도한 소련과 달리 인민해방군이 대일항전과 국공내전에서 활약하여 중국인민공화국을 건설한 중국에서는 “권력은 총에서 나온다”는 원칙이 철저히 관철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이 최고실권자다. 등소평은 1981년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인민해방군을 사열하여 중국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을 과시하였다.

등소평이 장쩌민에 권력을 넘기면서도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자리도 중앙군사위 주석이었다. 시진핑이 당총서기, 국가주석에 이어 중앙군사위 주석까지도 거머쥐었는데 이는 시진핑이 모택동, 등소평과 같은 위상에 올랐음을 과시한다. 시진핑은 장쩌민, 후진타오까지 지켜져 왔던 10년의 임기를 연장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장쩌민이 군부를 반부패 명분으로 가혹하게 정리하고 있는 것도 이 구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중국 방문 중 시안·베이징·상하이를 방문하였는데 이로써 중국의 과거·현재·미래를 다 보았다. 시안은 당의 장안인데 현종이 현장대사(玄?大師)를 기리기 위해 만든 대안탑(大雁塔)을 볼 수 있었다. 시안에서 시안 군구 부정치위원의 접대를 받았는데 놀라운 것이 군구 지휘부의 규모였다. 사령원 밑에 부사령원이 4명, 참모장 밑에 부참모장이 4명, 사령원과 동격인 정치위원 밑에 부정치위원이 4명이었다. 여기에도 참모장 밑에 부참모장이 4명이었다. 정년은 65세인데 직책만 맡지 않을 뿐 전용차, 운전병, 부관은 그대로 따르고 간호장교까지 붙여주었다.

우리를 맞았던 부총참모장 슝광카이는 야전군인이 아니라 정보장교였다. 중국 군부의 젊은 장교의 전형으로 보였다. 그의 언동을 보니 과거 일본 관동군의 이시하라 간지가 떠올랐다. 세상이 높고 넓은 줄 모르고 날뛰는 부류였다.

정치장교들과 만찬을 가졌다. 중국장교는 영어에 능하지 못하니 필담으로 진행했다. 시안공항에서 시안군구로 오는 길에 위수가 흐르는 것이 보였는데 고등학교 때 배운 두보의 시구가 생각나서 한마디 하였는데 대꾸를 못하는 것이 아닌가? 정치위원이라 웬만큼 문자속이 있는 줄 알았더니 깜깜이었다. 문화혁명 이후 중국의 전통문물이 단절되어 공자의 석전제(釋奠祭) 행사를 우리 성균관에 와서 배운다는 것이 무슨 말인 줄을 알 만하였다.

후에 베트남에 갔더니 1979년 중국군을 패퇴시킨 데 대한 자신감이 높았다. 중국과 베트남이 역사적으로 오래 동안 견원지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쟁에 한번 패한 군대는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북한 급변사태 시 중국이 북한 침공에 조심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남북군사회담에서 북한군을 접촉한 경험으로는 북한군이 중국군에 대해서 열등감 같은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북한군이 전면 해체된다고 하여 중국군이 북한에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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